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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엄마 VS 강북 엄마

세상보기---------/현대사회 흐름

by 자청비 2007. 7. 1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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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의 드라마비평]

 

강남 엄마 VS 강북 엄마

 

 

'교육'은 역시 뜨거운 감자였다.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중학교 2학년 자녀의 입시 준비에 모든 것을 내던진 '학습 매니저' 엄마들의 눈물겨운 분투기를 다룬 SBS 월화 미니시리즈 <강남엄마 따라잡기>(김현희 극본, 홍창욱 연출)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때마침 고교내신등급 문제를 두고 교육부와 사립대학 간에 벌어진 신경전도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 교육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강남의 '최강중학교'를 배경으로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학창 시절과 정반대의 입장에 처한 고교 동창생 '현민주(하희라 분)'와 '윤수미(임성민 분)'의 미묘한 신경전 속에 펼쳐진다. 고졸 학력의 현민주는 남편을 잃고 혼자 됐지만, 공부 잘 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낙으로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성실하게 꾸려나가는 강북 엄마의 대표선수다. 하지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아들 '최진우(맹세창 분)'가 영어경시대회에서 강남 학생들에게 밀려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오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강남으로 이사하면서 강남 엄마 따라잡기에 몰두한다.

 

반면에 윤수미는 어렵지 않은 가정환경 덕분에 대학교육까지 무난히 마치고 일찌감치 강남으로 이사해서 자녀 교육에 전념하는 강남 엄마 대표선수다. 영어경시대회에서 우연찮게 고교 졸업 이후 처음 만난 현민주의 자존심을 뭉개면서 강남 교육의 우수성을 역설한다. 은행 PB센터 팀장으로 일하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녀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자녀 교육에만 전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기도 다른 남자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을 정도로 이중적인 생활을 한다. 이처럼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현민주와 윤수미를 통해 붕괴 직전의 공교육 현장과 기형적인 사교육 현실을 대조시키면서 "아버지의 경제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이 자녀를 일류대에 보낸다는 왜곡된 한국 교육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교육 현실 풍자는 '돈'을 통해 노골적으로 이루어진다. 안타깝게도(?) 1점 차이로 서울대 법대를 떨어지고 국문과에 입학하여 재학 시절 신춘문예에 당선한 시인 '서상원(유준상)'이 최강중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취직하기 위해 이사장에게 아부하는 장면은 우리의 왜곡된 교육 현실을 비꼰다. 그리고 졸부와 재혼하여 돈 문제만큼은 아쉬울 것이 없는 '이미경(정선경 분)'이 전처 소생의 아들 '도준옹(이민호 분)'을 최강중학교에 전학시키기 위해 교감에게 돈 봉투를 건네는 장면도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우리 교육 현실의 치부를 노골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이 같은 풍자에도 불구하고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강남 엄마처럼 자녀 교육을 해야 한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현실 논리를 역설하는 아이러니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드라마는 동시대의 규범과 사상을 반영하는 문화적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면서 "오늘, 한국의 위기의 주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기획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한,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우리 교육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모색은커녕 왜곡된 사교육 시장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다가 막힌 자녀를 지도하는 강남 엄마들의 대처 방안을 만화적으로 구성하여 보여주고, 백수건달인 줄 알았던 하숙생 서상원이 진우 담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현민주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다 버린 성인잡지를 사다가 바치며, 전학 첫 날 최진우가 수학시간에 등수로 불리는 학생들과 수학 배틀을 벌이는 다소 과장된 장면들을 보면서 웃음보다 참담한 느낌이 앞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쾌한 웃음과 함께 교육 현실을 반성하게 해주어야 할 풍자적인 장면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혹시라도 풍자를 빙자하여 붕괴 직전의 공교육을 대체할 방법으로 사교육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탈법과 불법이 무슨 문제냐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을 확장시키는 드라마가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육 정책은 '백년지대계'가 아니라 '조삼모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아무리 실제 현실이 심각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교육'의 광풍에 사로잡힌 강남 교육 문제를 공론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론화되는 순간, '비(非) 강남' 사람들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로 공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교육의 끔찍한 현실이 '드라마'라는 프레임에 걸리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된다. 시청률에 정비례하여 드라마의 사회적 파장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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