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방영된 MBC < PD수첩 >.
[김창룡의 미디어창] 87년 박종철 사건, 2009년 용산 참사 그리고 언론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곳은 수사기관이다. 이런 수사결과를 국민에게 바르게 전달하는 곳은 바로 언론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은폐, 거짓말을 하고 언론이 수사기관처럼 추적, 분석하여 진실을 밝히는 사회는 비정상적 사회다. 권위주의 독재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오늘 대한민국 현실에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비극이다.
물리력을 앞세운 경찰의 공권력 남용의 논란이 여전한데, 이번에는 경찰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이는 물증이 나타나 수사기관, 언론, 국민 모두를 혼란과 충격에 빠트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중도사퇴시키지않으려 했지만 이런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이해당사자였다. 경찰로부터 이번 용산참사의 진상조사 규명을 기대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었다. 사건초기부터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사이에 무전기 대화 내용이 공개됐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 수사내용이 없었다.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 사이의 무선통신에 대해 경찰은 ‘실수, 오인’ 등 궁색한 답변으로 넘어갔다. 검찰의 ‘봐주기 수사’의혹을 받은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PD수첩은 2월3일밤 철거용역업체 직원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농성철거민을 향해 소방수를 발사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동영상으로 공개된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참사 당일 용역업체 직원들은 경찰특공대를 따라 참사가 벌어진 건물로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가봐도 경찰과 용역직원들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경찰은 ‘협의도 협조도 없었다’는 식으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는 미뤄졌고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에 대한 경찰에 대한 수사는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의 역할이 지대했다. 자칫 수사기관의 일방적 수사결과 발표와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진실규명 의지조차 외면당할 뻔한 사건이었다.
▲ 지난 3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이번 용산참사에서 드러나는 경찰의 과잉진압, 은폐의혹, 거짓말 행태를 보면 20여년전 1987년 한국 역사의 흐름을 뒤바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 부도덕한 전두환 군사정권은 무자비한 강압통치를 내세워 대학생들의 시위를 살벌한 고문과 탄압으로 봉쇄하려했다.
구타와 물고문으로 박종철군을 살해한 경찰의 만행을 고발한 것도 언론이었다. 자칫 수사기관의 은폐와 묵인으로 진실이 묻힐 뻔 했으나 언론이 나서서 진실의 단초를 밝혀냈고 성난 민심은 정권타도를 외치며 길거리로 나서게 된 것이다.
당시에도 경찰은 박종철군 사망원인에 대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당시 검,경은 공권력을 앞세워 시민의 정당한 목소리를 말살했고 닥치는대로 패고 물먹이고 고문했다. 수많은 의문사가 줄을 이었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시체조차 찾지못했거나 사망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유가족들은 눈물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용산참사는 아픈 역사의 기억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공권력이 흉기화 되고 이를 덮기 위해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수사기관에서 거짓말을 동원하는 참담한 현실.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진실의 한 조각 한 조각을 찾아나서는 PD수첩.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 망정 그 흔한 사과 한마디 하지않는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누구의,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
시사프로그램이 연예오락으로 뒤덮히는 공영방송 KBS. 한미쇠고기협상의 졸속성과 광우병 위험을 심층보도했다 이 정권에 완전히 미운털이 박힌 MBC PD수첩. 왜 KBS는 방송하지 못하거나 안하는 것을 MBC는 또 했는지. PD수첩 미래가 걱정스럽다.
정권의 도구수단으로 전락한 무지한 공권력. 국민과의 소통은 접고 일방 홍보에 나선 이명박 정권의 위기는 더욱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신뢰잃은 정권이 소통조차 거부하는 상황에서 민심이반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방송사 낙하산 사장들의 애처러운 몸짓으로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새로운 시험대가 되고 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