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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은 공포를 먹고 산다

또다른공간-------/잡동사니모음

by 자청비 2010. 8. 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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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은 공포를 먹고산다

[한겨레  매거진 esc]

80년대 학교·군대괴담부터 MB정부의 괴담 논쟁까지

 

 

최근 충북 청주에서는 '엠피쓰리(MP3)를 귀에 꽂고 길을 가는 여학생을 납치·성폭행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는 괴담이 나돌아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이 괴담의 내용은, 엠피쓰리를 귀에 꽂고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혼자 길을 걸어가는 중·고교 여학생을 3~4명으로 구성된 범인들이 차량으로 납치해 제3의 장소에 끌고가 성폭행을 한 뒤 납치 장소에 다시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범죄 수법부터 피해 학생의 수까지 구체적인 이야기로 발전되다보니 수사당국까지 나섰으나 결국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밤이 되면 우리 학교 동상이 움직인다"부터 "우리나라의 화폐에 유괴살해당한 아이의 이름과 몸뚱이가 새겨져 있다"까지. 이처럼 당대를 배경으로 하는 설화와 괴담을 도시전설 또는 현대전설이라 부른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고 포장되거나,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흔한 '귀신 이야기'와는 다르다.서양의 도시전설을 수집하고 연구해온 유타 대학의 잰 해럴드 룬반드 교수는 자신의 대표작 < 사라진 히치하이커 > 에서 '강력한 호소력이 있는 단순한 이야기일 것. 실재한다는 신념에 근거할 것. 의미 있는 메시지 또는 도덕성을 암시해야 할 것' 등 세 가지를 도시전설의 요건으로 꼽았다. 그 세 번째 요건에 해당하는 '메시지'는 일반적으로 당시의 사회상과 당대 대중들이 품고 있는 무의식적인 공포와 맞닿아 있다. 한국의 현대사와 함께 부유했던 그 숱한 가담항설 속에서, 우리들이 진정 대면하기 꺼려했던 공포의 실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80년대까지 한국 사회에서 횡행했던 도시전설들 중 가장 대표적인 레퍼토리는 학교와 관련된 괴담들이었다. "밤에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변기에서 손이 올라와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라고 묻는다." "학교에 숨겨진 비밀 100가지를 모두 알면 죽는다." 등등. 이제는 고전 설화처럼 잊혀가는 이 이야기들이 당시에는 모두 있을 법한 내용으로 포장되어 떠돌곤 했다.

 

학교 괴담과 함께 특정 집단에서 꾸준히 유통된 이야기는 바로 군대 괴담. 어느 부대의 위병소나 탄약고에 꼭 존재한다는 귀신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학교 괴담과 군대 괴담의 공통점은 바로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라는 것. 일본 지바현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의 쓰네미쓰 도루 교수는 저서 < 일본의 도시괴담 > 에서 "도시전설들은 근대화 이후 도시 집중이 이루어지고 농촌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형성된 폐쇄적인 문화의 흔적들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무렵까지 우리나라 도시전설들의 상당수가 그 뿌리를 일본에 두고 있다. 화장실에서 손이 올라와 빨간 종이와 파란 종이를 내민다거나, 밤이 되면 교정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움직인다거나(1940년대 이전 일본에서 유행했던 니노미야 긴지로-도쿠가와 막부 시절 농촌운동가-동상 괴담이 원형), 택시 뒷좌석에 태운 음침한 여자 손님이 도착지에서 사라진다는 내용의 괴담 등. 중앙대학교 민속학과의 김종대 교수는 이 괴담들이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유입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 출처가 어디든, 괴담이 널리 유행하며 생명력을 얻는 것은 그 공포가 당시의 사회상과 공명한 까닭. 특히 70~80년대 한국의 어두웠던 정치현실은 학교·군대처럼 폐쇄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 괴담들이 횡행하는 온상이 되었다. 이렇듯 시대상을 반영한 도시전설에는 "가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안무 손동작은 간첩들에게 지령을 전하는 수신호"라거나 "군대에서 지급되는 건빵과 국에는 정력감퇴제가 들어 있다"는 속설들도 포함된다.

 

90년대 이후의 도시전설들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과 함께 시작된 90년대에는 강력범죄와 관련된 괴담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고생 봉고차 납치괴담'과 '김민지 괴담'(2면 참조) 등이 대표적인 사례. 다소 초자연적인 소재들을 포괄하던 이전 세대의 도시전설들과 달리 사실적인 개연성이나 설득력을 띠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 여고생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도중에 탄 어떤 할머니가 그 여고생이 앉은 자리 앞에 와서 선다. 여고생이 자리를 양보하려 하자, 할머니는 몇 번이나 괜찮다면서 사양한다.몇 정거장이 지나고 갑자기 그 할머니가 여고생에게 '노인이 바로 앞에 있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앉아 있다'는 둥 막말을 퍼부어 대며, 여고생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너 따라와 이년아"라고 말하면서 여고생에게 버스에서 내릴 것을 종용했다. 억울함을 느낀 여고생이 시비를 가리려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자, 잠자코 있던 버스기사가 조용히 뒷문을 닫으면서 "학생 가지 말고 그냥 있어"라고 말한다.버스기사의 백미러에는 아까부터 따라오던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고, 그 할머니는 버스에서 내려서 그 봉고차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여고생 봉고차 납치괴담

 

2000년대 이후 부쩍 증가한 것은 중국과 관련된 범죄 괴담. '중국으로 신혼여행을 간 부부가 괴한들에게 납치당했다가 깨어나 보니 장기적출 수술을 당한 후였다'는 내용의 '중국 신혼여행 괴담'과, 최근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마른 해산물 괴담'(2면 참조) 등은 불량식품 등 중국발 위협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다매체 시대와 함께 도시전설들이 유통되는 경로도 전과 달라졌다. 뮤직비디오나 영화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식의 현대적인 판타지들이 부쩍 늘었으며, 출처를 알 수 없었던 과거의 괴담들과 달리 영향력 있는 연예인들의 경험담 등이 손쉽게 도시전설의 지위를 획득해 유통되기도 한다. 어느 개그맨이 방송에서 언급한 후 유명해진 '자유로 귀신 괴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자유로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자정을 막 넘긴 시간이었다. 운전을 하던 중, 저 멀리 어떤 여자가 보였다. 사고라도 났는지 길가에 서 있었는데, 어두워서 잘은 안 보였지만 상당히 큰 키였다. 그리고 밤에 저런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다니, 이상했다. 무척 피곤했지만 차가 고장났나 싶어 도와주려고 차를 세웠다. "무슨 일이죠?" 내려진 창문에 얹은 손이 무척 말랐다. 말이 없던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느린 동작으로 상체를 숙이더니 창문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그런데 정말 기괴한 모습이었다. 내가 선글라스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의 눈이 있던 자리를 채우고 있는 커다란 구멍이었다. 자유로 귀신 괴담

 

새 정부 출범 이후의 괴담 논쟁들

이러한 도시전설들과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 괴담들도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사태와 함께 불거졌던 '광우병 괴담'이니 올해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천안함 괴담'들이 그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부쩍 늘어난 이런 괴담들은 모두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규명되지 않은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나름의 근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에 유행했던 도시전설들과 차별점을 가진다. 명확하지 않은 국가 의사결정 구조가 숱한 속설들을 낳고, 그 속설들과 관련된 어떠한 견해도 손쉽게 '괴담'이나 '음모론'으로 일축되고 마는 악순환.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소통 불능에 대한 대중의 공포심이다. 요컨대, 괴담이나 도시전설이라는 '현상'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내용에 담긴 사회 무의식적인 두려움이다.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의 모양새와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민심이 천심이다'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다.

 

도시전설·괴담 라이브러리

때때로 오싹하다. 하지만 명쾌하다. 우리가 궁금했던 괴담의 사실 여부와, 상식으로 여겼던 도시전설의 정체를 밝혀주는 인터넷 사이트 및 방송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스놉스닷컴(snopes.com)

| 하루 30만명이 방문하는 세계 최고의 도시전설 수집·검증 사이트(영문). 공포, 과학, 의료에서 음악, 영화까지 총 43개 대분류로 구성되어 있다.

 

위키피디아(wikipedia.org)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영문판 중 '어번 레전드'(urban legend) 항목과 한국어판의 '도시전설' 항목에서도 알려진 도시전설들의 유래와 진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호기심 해결사(MythBusters)

| 케이블 방송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 할리우드 특수효과 전문가인 제이미 하이네먼과 애덤 새비지가 항간에 떠도는 도시전설들을 과학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달 착륙 사진은 조작일까?'를 비롯한 블록버스터급 명제부터 '금붕어의 기억력은 3초일까?' 등의 소소한 상식까지 폭넓게 다룬다. 2010년 현재 8시즌 방영중.

그 외 당대에 유행하는 도시전설과 괴담을 만날 수 있는 웹사이트로는 '웹진 괴물딴지'(ddangi.com)와 '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thering.co.kr) 등이 있다. 이들 사이트들은 추적이나 검증보다 괴담 수집 자체가 주된 목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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