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세상보기---------/조리혹은부조리

by 자청비 2007. 11. 7. 01:05

본문

우리는 흔히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고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이 목숨을 내건 고발로 시작돼 숱한 회유와 협박 속에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에 동조해, 진실을 감추고자 하는 세력과 길고 긴 투쟁을 통해 승리할 때 비로소 꼭꼭 숨겨졌던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번 삼성의 비자금 사건이 처음 폭로되자 아주 오래전 읽었던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렸다. 드레퓌스 사건은 국가권력이 진실을 숨기기 위해 인권을 손쉽게 유린하던 5공화국의 살벌했던 시대에 올바른 지성을 추구하는 대학생이라면 한번쯤은 읽었고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졌던 이야기다.

 

단순한 간첩사건으로 끝날 것 같던 드레퓌스 사건은 10여년간 프랑스 사회를 논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으나 결국 진실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프랑스 민주주의를 한단계 발전시켰고, 제3공화제와 근대사에 영향을 끼쳤다.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한 사회를 이끄는 정치인, 지식인과 언론이 왜 깨어 있어야 하는지, 깨어 있지 않으면 얼마나 사회가 뒤틀릴 수 있는지 느끼게 된다.-이미 우리는 유신시대와 5공화국을 거치면서 경험했다.

 

억울하게 간첩누명을 쓴 드레퓌스 대위는 피카르 중령의 진실을 향한 노력이 없었다면 프랑스 역사에서 간첩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뻔 했다. 그리고 프랑스 대문호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격문이 없었다면 진실을 향한 피카르 증령의 노력은 그냥 역사속에 파묻혀 버릴수도 있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두차례에 걸친 삼성비자금 폭로사건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이 다른 사안-신정아 학력비리 등-을 다룰 때와는 달리 지나칠 정도로 차분했다.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사실상 삼성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향후 검찰 수사나 금감원의 조사 등에 대비해 삼성이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김 변호사의 1차 폭로 땐 단순히 "임원이 개인적으로 한 것"이라고 말도 안되는 해명을 하던 삼성이 일주일만에 이뤄진 2차 폭로 이후 조목조목 그럴듯한 반박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김 변호사의 개인적 일까지 거론하면 문제가 많은 사람이며 돈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폭로한 것처럼 매도하면서 양심선언의 순수성에도 먹칠을 시도하고 있다. 이로 미뤄볼 때 삼성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전략을 수립한 것처럼 보인다. 이에 동조해 그동안 차분한 반응을 보이던 일부 언론들은 김 변호사의 회견내용보다 삼성의 반박자료를 더 비중있게 다루고 김 변호사의 폭로 동기는 삼성측 주장을 그대로 싣고 있기도 하다.

 

삼성의 비자금 관리설이나 전방위 로비설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5년 당시 MBC 모 기자의 X파일 테잎 취재를 통해 한차례 드러나기도 하는 등 이미 우리 사회에선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금감원이나 검찰은 수수방관해왔고 삼성으로선 치명적인 X파일 테잎 보도 당시에는 테잎 입수경위를 문제삼아 오히려 취재기자를 파렴치범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을 '삼성공화국' 혹은 '이건희왕국'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최고 기업이며, 세계적으로도 손을 꼽을만한 기업인 삼성이 왜 이런 소리를 들을까. 기업운영이 항상 베일에 쌓여 있고 그룹 총수 1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전근대적인 기업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 때부터 편법·탈세 등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정경유착으로 타개해나갔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군부국가에서 벗어나 민주사회로 진행되자 삼성은 국가권력을 능가하는 자본권력을 통해 더욱 교묘하게 국가 경제정책을 입맛대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최근 이명박 후보가 경제정책 공약으로 내놓은 금산분리정책 폐지는 가장 좋은 예다.

 

김 변호사의 폭로에 의하면 정계와 정부 부처를 비롯 금감원, 검찰, 언론, 학계, 사회단체 곳곳에 삼성의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지금까지 이같은 사실은 증거만 없을 뿐이었지,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상식이었다. 이렇게 로비를 하기위해서는 정상적인 기업운영을 통해서는 결코 그 막대한 자금을 감당할 수 없다. 결국 불법, 편법을 동원한 비자금을 조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부담은 결국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의 문턱에서 자꾸 주저앉는 것은 여전히 삼성과 같은 천민자본주의가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일등주의를 내세우며 사실상 국가경제를 견인하고 있다고 하지만 1인총수지배 체제하의 왜곡된 경영구조와 삼성만 독식하는 형태의 경제구조로는 국가의 전체적인 부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정경유착과 불·편법으로 국가경제를 농락하며 부를 독식하는 재벌가의 경영방식이 개혁되지 않는 한 우리 경제의 선진국 진입은 요원할 것이다.

 

삼성비자금을 폭로한 김 변호사는 지금까지 삼성으로부터 많은 협박과 회유를 받아왔지만 앞으로는 삼성의 로비대상으로 지목된 금감원, 검찰, 언론 등으로부터 더 커다란 회유와 협박에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삼성에 맞서 진실을 향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김 변호사를 우리 사회-정치인, 지식인, 언론, 시민단체 등-가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한단계 더 성숙된 사회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영구히 놓치게 될 것이다. 김 변호사가 삼성과 맞서 패할 경우 거대공룡인 삼성과 맞서 싸울 용기있는 내부 고발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 최고의 대우로 철저한 비밀주의를 유지해왔던 삼성에서 내부고발자가 나왔다는 것은 그 속이 더 이상 못봐줄 정도로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수술이 제때 이뤄지면 병이 완쾌될 수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수술이 소용이 없게 된다. 한 때 지구를 지배했던 거대한 공룡이지만 멸종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모든 것을 모두 덮고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삼성은 다시 수술시기를 놓치고 고질적인 병은 결국 삼성을 회복불능의 상태로 몰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경제는 더욱 치명상을 입게 되고, 그 부담은 결국 고스란히 국민몫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