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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은?

또다른공간-------/알아두면좋다

by 자청비 2008. 2. 1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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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에 있는 조선시대 성문

 

 

종   목   국보   1호
명   칭   서울숭례문
  (서울崇禮門)
분   류   성곽건축
수   량   1동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
시   대   조선 태조
소유자   국유
관리자   중구

 

 

 

조선왕조는 도읍지 한양의 경계를 성으로 쌓고 성문을 내었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대문(大門)을 내었고 그 사이에 작은 문(小門)을 내었다. 대문의 이름을 유교에서 사람이 지켜야할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따라 지었다.


동쪽을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은 돈의문(敦義門), 남쪽은 숭례문(崇禮門)이라 하고 북쪽은  지(智)를 정(靖)으로 고쳐 숙정문 (肅靖門)이라 하였다. 숭례문은 도성 8문 중 가장 중요한 도성의 정문일 뿐만 아니라 교통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정면도]

 

 

 숭례문은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숭례문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이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62년 숭례문 중수당시 숭례문 상량일자를 묵서(墨書)한 대들보가 세개 발견되었다. 첫째는 태조 때 창건 당시의 대들보요, 둘째는 세종 때 개수시의 대들보요, 셋째는 성종 때 개수시의 대들보이다.


창건 당시인 태조 때의 대들보에는 "홍무이십구년병자시월초지일상량(洪武二十九年丙子十月初之日上樑)"이라고 묵서되어 있으니, 홍무 29년은 태조 5년(1396)에 해당하므로 이 해 10월6일에 상량하고 2년 후인 태조 7년 2월 8일에 준공하였다. 따라서 숭례문은 태조5년에 창건하였고 2년 후에 다시 고쳐지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 4년(1422) 도성을 개축할 때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고, 세종 30년(1448)에 개축하였다. 이때 개축한 이유는 숭례문이 기울거나 퇴락하여 개축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지대가 낮아서 볼품이 없고 또 당시 유행하던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구애되어 숭례문의 지대를 높여서 남산과 인왕산의 산맥에 연결시켜 경복궁이 포국을 아늑하게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개축공사는 뒤로 미루어지다가 15년 후인 세종 29년(1447) 8월에 착공하였는데, 숭례문이 문루와 석문을 완전히 헐어내고 기지를 높게 돋우어 양쪽 산맥에 연결시킨 다음 그 위에 새로 석문을 쌓고 문루를 건축하였으므로, 보수나 중수가 아니라 완전한 개축이었다. 1962년 발견된 대들보 가운데 "정통십삼년무진삼월십칠일손시입주상량(正統十三年戊辰三月十七日巽時立柱上樑)"이라고 묵서한 것이 곧 이때의 대들보로서, 세종 30년 3월 17일에 상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32년이 지난 성종10년(1479)에 이르러 숭례문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또다시 개축하였다. "성화십오년기해사월초이일묘시입주상량成化十五年己亥四月初二日卯時立柱上樑)"이라고 묵서한 대들보에 의하여 성종 10년 4월 2일에 기둥을 세우고 상량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채수(蔡壽)와 좌승지 김승경(金升卿)등이 숭례문을 증수할 때 중국의 예에 의하여 문 밖에 옹성(甕城)도 쌓자고 하였으나, 성종이 "우리나라는 국력이 부족하여 일일이 중국을 본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적이 숭례문까지 쳐들어온다면 그 때는 이미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이니 옹성이 있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답하여 흥미롭다.

 

 

 

[하층 평면도]

 

 숭례문은 1907년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 친왕이 서울을 방문하면서 낡은 성문을 지나갈 수 없다는 이유로 좌우의 성벽을 헐고 지나갔다. 이후 급속도로 성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해방이후 서울의 발달과 함께 도로가 넓혀지면서 몸채만 길 한가운데 남아 현재의 모습과 같이 되었다.


지금은 숭례문 중앙이 문이 아니라 양옆으로 난 도로가 지난날 성문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서울 성곽이 동쪽의 남산에서 내려와 오늘날의 힐튼호텔 앞을 지나 숭례문에 연결되었고, 서쪽에서는 서소문으로부터 상공회의소 앞을 지난 성벽이 숭례문에 직접 연결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과 가축은 이 성문을 통하지 않으면 도성을 출입할 수 없었다.


숭례문 주변의 성벽이 결정적으로 훼손된 것은 광무(光武) 3년(1899) 서울 시내 전차(電車) 노선 공사와 개통으로 인하여 흥인지문과 돈의문이 주변과 함께 헐리게 되면서부터였다.


더욱이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이라는 미명하에 파괴가 가속화되었고, 특히 숭례문 남쪽으로부터 남산이 정상에 이르는 성벽은 남산광장에 일제가 소위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전연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현재는 남산광장에서 정상에 이르는 도보 길에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세종대왕의 형 양녕대군의 어필>

 

숭례문은 건평 53.79평에 옆으로 긴 2층 누각의 외관과 견고한 성문, 그리고 직선적인 처마선 등이 조선 초기 건축의 건실함을 나타내고, 새 왕조 신수도의 대문으로서 여전히 당당한 위엄을 지니고 있다. 또한, 후기에 세워진 흥인지문과는 달리 옹성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방어의 목적보다는 도성의 주입구로서 상징성이 강하다. 현존하는 한국 성문 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외관이 장중하고 내부구조가 견실하여 수도의 성문으로 당당한 면모를 지닌 조선 초기의 대표적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쌓은 석축의 중앙에 무지개 모양(아치형)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2층의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문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상층 외곽의 기둥들을 하층 외곽의 기둥열보다 안으로 들이밀어 세웠다. 석축 윗면에는 주위에 높이 1.17m의 벽돌로 된 여장(女墻)을 돌려 동·서 양쪽에 협문(夾門)을 열었고, 건물의 외주(外周) 바닥에는 판석(板石)을 깔았다. 건물 내부의 아래층 바닥은 홍예 윗면인 중앙간(中央間)만을 우물마루로 하고 나머지는 흙바닥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 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말 이해 다포집 양식을 충실히 남기고 있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崇禮門'이라는 현판은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하여 세로로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또 지붕 위·아래층이 모두 겹처마로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머리[龍頭], 그리고 용마루 양끝에는 독수리머리를 올려 최고의 격식을 갖추었다. 이 건물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성문이기 때문에 천장을 가설할 필요가 없어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종단면도]
 

내부 중앙에는 4개의 고주가 일렬로 세워져 위층 지붕틀까지 지지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문루 내부의 공간이 앞뒤로 2분되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매우 견고한 구조체계를 이루게 되어 내부의 실용성보다는 구조적 안정성을 더욱 우선했다고 볼 수 있다.

 

특기해야 할 것은 1448년에 다시 세울 때 성곽부분을 높이고 더 웅장하게 만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2층 지붕은 원래 평양 대동문 또는 개성 남대문과 같은 팔작지붕이었던 것을 후대-어느 시기인지 불명확-에 중수하면서 지금과 같은 우진각 지붕으로 개조한 것으로 1960년대초 해체 수리조사 때 확인됐다.

 

 

<출처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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