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영상>은 기자 사회를 어떻게 '도발'했나
청와대 '사전 브리핑' 풍자한 <돌발영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되다
<프레시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삼성 '떡값인사' 명단 폭로가 뜻밖에 기자들의 관행적 보도 행태를 까발리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의 '사전 브리핑'을 풍자한 YTN의 <돌발영상>이 그 중심에 있다.
누리꾼들은 해당 동영상을 블로그로 퍼나르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YTN 보도국은 해당 동영상을 삭제하고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YTN에 '징계'를 결정하는 등 '관행'을 내세우는 태도로 대응하면서 기자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전 브리핑' 당일, 아무도 문제의식 없었다
발단은 정치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사전 브리핑'에서 시작됐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지난 5일 사제단의 금품 수수 인사 명단 발표에 앞서 미리 '근거 없다'고 자르는 논평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이 대변인은 "지금 예고된 바에 따르면 4시에 회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편의'를 위해 엠바고(보도시점 제한)를 걸고 멘트를 할 테니 발표가 이뤄지면 쓰는 것으로 양해해 주겠느냐"고 묻고 이에 기자들이 "네"라는 대답으로 동의를 표하자 "자체조사 결과 거론된 분들이 떡값을 받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논평을 내놨다.
이어 이 대변인은 '몇 명을 며칠 간 조사했느냐'는 등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런저런 거명될 사람들 이름이 들리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사제단이) 어디까지 (폭로) 할 것인지 우리도 대충은 알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지 않느냐"는 식으로 답해 사제단이 거론할 인사에 대해 청와대가 미리 확보한 정보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사전 브리핑'은 비일비재한 탓인지 이 대변인의 변칙적인 '사전브리핑'은 별 무리 없이 지나갔다.
김인국 신부가 명단 공개에 앞서 "저희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청와대에서 사제단에서 발표하기로 마음먹은 몇 분에 대해 자체 조사 결과 사실과 다르다는 논평을 냈다고 한다"고 밝히면서 "저희가 밝히지 않은 인사가 누구인지, 우리 심경을 어떻게 알아맞혔는지 모르겠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일침을 놨지만 이에 대해 크게 관심갖는 이는 없었다.
청와대 '수정' 요구에 YTN은 '삭제'
문제는 7일 YTN <돌발영상>에서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를 인용, 청와대의 '사전 브리핑'을 풍자하는 내용의 영상을 내보내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브리핑 시간을 고정해둔 채 대변인의, 혹은 언론의 편의에 따른 '사전 브리핑'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대변인과 기자들은 허가 찔린 셈.
<돌발영상>은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의 일부를 따 청와대 브리핑의 앞뒤에 "발생하지 않게 하려는 어떤 일이 발생할 일에 영향을 주진 못해요"라는 멘트를 배치해 청와대를 풍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동영상은 7일 오후 2시 40분에 방송되고, 오후 4시 40분 재방송된 뒤 YTN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 등에서 삭제됐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외압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YTN 홍상표 보도국장은 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방송기자들이 사제단 발표에 대한 청와대의 반박을 먼저 요청했고 청와대도 사제단 발표 이후에 쓴다는 전제로 엠바고를 걸고 발표한 것"이라며 "<돌발영상>은 이 엠바고를 어긴 것이므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삭제한 것"이라고 밝혔다.
홍 국장은 '외압' 의혹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수정 요구는 있었다. 하지만 (삭제 여부는) 스스로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 대변인실은 8일 "청와대와 기자들 사이의 신사협정이 깨진 것에 대해 YTN 기자를 비롯한 청와대 출입기자에 유감을 표명했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출입기자단에서 적절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다시 YTN 노조의 반발을 불렀다. 전국언론노조 YTN지부 현덕수 위원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영상 삭제 등) 정상적으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극히 드문 일이 일어났다"면서 "청와대가 관련되어 있는 문제인 데다, 보도국장이 직접 청와대의 수정 요구가 있었다고 밝힌 만큼 영상 삭제 경위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YTN은 10일 저녁 노조 소속 공정방송추진위원회와 기자협회 운영위원회 간의 연석회의를 갖고 해당 동영상이 삭제되기까지의 정황을 밝히기로 했다.
청와대 기자단, "YTN 엄중 경고 및 3일간 춘추관 출입금지" 징계
한편 YTN 측의 동영상 삭제와 별도로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사로 구성된 춘추관 운영위원회는 9일 회의를 열어 YTN 측에 엄중 경고및 3일 간 취재기자의 춘추관 출입금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춘추관 운영위는 공고를 통해 "<돌발영상>이 대변인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방송한 것은 '백 브리핑' 실명 비보도 원칙과 상호 신의를 위배한 것으로 간주, YTN에 엄중 경고조치하고 3일(3.10~3.12)간 취재 기자의 춘추관 출입금지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또 기자단은 "YTN은 이에 대해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반대 입장을 피력했으나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된 청와대 기자단의 결정을 수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 측의 결정이 아니라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단의 결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과연 이동관 대변인의 브리핑이 익명 보도를 전제로 하는 '백 브리핑'이었느냐의 문제와 이번 징계의 준거가 된 기자실 '관행'의 정당성 등의 논란이 다시 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불똥은 YTN으로도 튀어 향후 <돌발영상>의 취재-제작 시스템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돌발영상> 제작팀은 조직편제 상으로는 YTN 보도국 소속이나 제작과 보도에서는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해왔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도국장이 소위 '데스킹'을 강화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돌발영상' 징계한 靑기자단, 그들은 정당한가?
[김종배의 it] 기자는 파수견인가 속기사인가?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YTN 기자를 징계했다. 출입정지 3일이다.
징계 사유는 상호 신의의 원칙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YTN이 '돌발영상'을 통해 방영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은 '백그라운드 브리핑'으로서 비실명 보도를 전제로 한 것인데도 브리핑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 취재원과 맺은 신의를 깼다는 것이다.
과연 타당한 징계일까?
얼핏 보면 그런 측면이 있다. '백그라운드 브리핑'은 공식 브리핑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자들의 취재와 이해를 돕기 위해 편하게 배경을 설명하는 브리핑이다. 그래서 비실명 보도를 전제로 한다. 이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백그라운드 브리핑'은 성립할 수 없고 기자들은 '맥락'을 취재할 수 없게 된다.
결과만 놓고 보면 '돌발영상'은 이런 묵계를 깼다. 이동관 대변인의 모습과 발언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상호 신의의 원칙을 위반해도 크게 위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이런 형식적 사유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수긍하기 어렵다.
문제가 된 브리핑엔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 로비 명단을 발표하기도 전에, 로비 내역이 어떤 것이었는지 공개하기도 전에 이동관 대변인은 "근거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논평을 내놨다.
이미 공론화가 된 사안이다. 상당수 국민이 과연 청와대가 정밀 검증을 하고 그런 논평을 내놨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이동관 대변인의 사전 논평이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 검증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바로 이것 때문이다. 상호 신의의 원칙 못잖게,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했어야 할 가치가 국민의 알권리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돌발영상'이 브리핑 현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국민은 중요한 대목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YTN의 '돌발영상'을 이렇게 성격 규정하면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징계 사유는 설득력을 잃는다. 기자와 취재원 간의 상호 신의의 원칙을 앞세워 국민의 알권리에 일조한 보도물을 징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징계 주체의 적격성도 인정하기 어렵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징계엔 전제가 깔려있다. YTN은 잘못했고 다른 출입기자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전제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누구를 징계할 수는 없다.
그럼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어떤 근거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걸까?
관행이다. 마감 시간을 감안하고 대변인의 일정을 고려해 사전 브리핑을 하는 건 관행이라고 한다. 그래서 문제의 사전 브리핑도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고 한다. 아울러 문제가 되고 있는 삼성 로비 명단도 청와대가 사전에 대략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논평을 받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럴까?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 걸까?
관행이라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빈 반론 따위는 펼 생각이 없다. 청와대가 삼성 로비 명단을 사전 파악했을 개연성도 부인하지 않는다(물론 어떻게 사전 파악했는지는 의문이지만). 하지만 이 문제는 두고두고 곱씹을 문제다.
청와대가 삼성 로비 명단을 사전 파악했다 하더라도 브리핑 여건이 완결됐던 건 아니다. 기자들이 몰랐기 때문이다. 설령 기자들도 로비 내역을 사전 파악하고 있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브리핑 시점에서는 공식 발표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설'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사전 브리핑은 반쪽짜리로 그칠 수밖에 없다. 의혹을 부인하는 쪽의 일방적 주장만 나올 뿐이지 기자들의 송곳같은 추궁성 질문은 성립할 수 없다.
사제단에서는 이종찬 민정수석이 삼성에 직접 와서 휴가비를 타가고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김용철 변호사로부터 직적 금품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근거 없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느냐고 경위를 캐물을 수 없다. 경위를 캐물을 수 없으니까 청와대 검증의 정밀성을 따질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야 "어떻게 조사했느냐"는, 지극히 평범하고 추상적인 질문 외에는 던질 수가 없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사전 브리핑이 비판 받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경위 파악, 진실 규명의 통로로 활용했어야 할 브리핑을 일방적 전달의 장으로 변질시켰다는 데 있다. 사실을 규명하고 발표를 검증하는 파수견이 아니라 받아적기에 바쁜 속기사의 모습으로 기자의 역할을 한정했다는 데 있다. <김종배/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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