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
알파걸'의 시대다. 신문지상에서 정치와 경제를 비롯하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남성들을 능가하며 최고의 입지를 굳힌 여성의 이야기는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기사가 되었다.
학교 현장은 더 하다. 대부분 학교에서 내신 1등은 단연 여학생 몫이다. 전교 1~10등 안에 '남학생'이 끼면 희귀한 일이 될 정도다. '알파걸'의 등장 배경은 뭘까?
학교 현장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 원인은 △가정 환경 변화 △남성과 여성 간 태생적 차이 △여학생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 평가 방식 등을 꼽을 수 있다.
남아선호사상을 넘어선 남녀평등사회 구현과 핵가족화가 알파걸 출현의 기반을 제공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점차 감소해 1970년에 4.53명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와서 2000년 1.47명, 2005년 1.08명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오늘날 한 가정의 자녀 수는 기껏해야 1~2명이다.
이러한 출산율 저하는 자녀의 성(性)이 부모의 사랑이나 교육 기회를 차별적으로 제공할 모태의 상실을 상징한다. 부모는 자녀의 성을 따지지 않고 동등한 양육과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가정 내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지위변화 내지 역할 바꾸기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핵가족화와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부분이 크지만 맞벌이 부부 증가는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을 변화시킨 주요인이다.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사는 전업이 아니라 분담이 되었으며 여성의 경제력이 커짐에 따라 가정에서 지위와 발언권이 커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경제력이 주체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력은 지위와 역할 상승이라는 열매를 가져왔고, 자기 일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딸들은 여성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배우고, 그들에게는 당당하고 활동적인 여성상이 각인될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 상(像)도 시대 변화와 더불어 변모되고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어머니와 더불어 양육의 한 주체로서 역할이 강조되고, 자녀에게 성역할 모델로서 아버지 위치가 강조되고 있다. 아버지는 학습과 유희에 있어서 '이성 친구'며, 성장 과정에서는 남성성을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역할 모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뇌발달 과정과 뇌구조 차이, 그리고 성향 차이도 '알파걸' 출현의 이유다.
부산대 소아청소년과 남상욱 교수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뇌 발달이 빠르고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두 살 정도 여자가 남자보다 빠르며 발달 완료 시기도 일찍 온다. 특히 학습과 관련된 두정엽은 여자아이 발달 속도가 남자아이보다 2년 정도 앞선다고 한다.
또한 남자의 뇌는 행동에 직접 관련이 되는 부위만 활동해 한 가지에 집중하면 그외 기능을 하는 뇌는 모두 쉬는 반면 여자의 뇌는 직접 관련된 부분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활동해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뇌가 동시에 움직인다.
여성은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를 요구하는 현대사회 경향에 부합하는 뇌구조를 가진 것이다. 여기에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의 차이 또한 중요한 원인이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일반적으로 12% 정도 큰 뇌량을 가지고 있는데 이로써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언어능력과 직관력이 더 발달한다는 것이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학교평가에 있어 가장 주요한 요소 중 하나가 언어능력과 직관력이다.
여학생의 약진은 관계지향적인 여성의 성향도 크게 작용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신분석가인 낸시 초도로에 의하면 어머니의 양육방식 차이에 의해 남아는 목표지향적인 성향을 띠는 반면, 여아는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결정을 주로 내리는 관계지향적인 성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갈등, 경쟁, 승패 중심에서 벗어나 협력과 유대를 포함하는 포용적 리더십을 요구하는 요즈음 집단사회에 부합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제반 조건들이 남학생보다 여학생에게 다소 유리하다. 그 대표적인 예로 평가를 들 수 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는 크게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구분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여학생의 집중력과 섬세함, 차분함을 요구하고 있다.
지필평가는 대다수 교과에서 언어능력(이해와 분석, 응용과 종합 능력)이 최우선적인 평가 대상이다. 또한 수행평가는 차분하고 섬세한 준비 과정이 필요한데 이 역시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이다. 반면 남학생은 생리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넘치는 에너지를 몸 밖으로 배출해 내고자 많은 생각들을 끊임없이 행동으로 옮기려 하여 여학생처럼 책상에 가만히 앉아 차분히 공부하기가 어렵다. 주의력결핍장애(ADHD)가 여아보다 남아에게서 많이 발생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중학교에서 남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장벽이 바로 인터넷 게임 중독이다. 인터넷 게임 중독은 정보통신 발달이 불러온 대표적인 병폐의 하나로 특히 청소년기 남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싶은 권력 의지가 강하며 현실에서 만족되지 않는 성취욕을 게임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경향이 강하다.
덧붙여 여학생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 결과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남녀 간 학업 수준차의 한 요인으로 보인다. 낮은 평가 결과를 받았을 때 정신적으로 더 성숙한 여학생들은 결과에 대한 수치심을 또래 남학생들보다 훨씬 더 느끼기 때문에 학업에 더욱 의욕적으로 임한다는 점이다. 여학생에게 성적은 그 과정과 결과를 분석하는 통계 자료로서 위치를 점하지만 일부 남학생에게 성적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성적표를 친구들과 바꿔 보는 남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 < 용 어 >
알파걸(α-Girl) : 알파걸은 그리스어의 첫째 자모인 알파(α)에서 따온 용어. 미국 하버드대학교 댄 킨들러 교수는 알파걸을 '학업과 운동, 인간관계와 리더십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남성을 능가해 질주하는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알파걸들은 높은 성취욕과 자신감을 가진 여학생(혹은 여성)들이다. 이러한 '엘리트 소녀들'의 약진에 따라 Gold Miss(안정적인 직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구매력을 갖춘 20~30대 싱글여성), Lipstick Leadership(남성들과의 경쟁을 뚫고 최고지도자 위치에 선 여성들의 리더십), β-Boy(모든 면에서 언제나 여성들에게 뒤처지며 상대적 열등감에 시달리는 남성) 등의 개념이 더불어 나타나고 있다.
■비틀어보기<조선닷컴>
이혼남에게 매달리는 알파걸, 이유있다
"엄마, 밀린 전기세 좀…" "엄마, 다음달 백수랑 결혼해" 절반은 과잉보호 부모 탓
#1. "에휴, 헛똑똑이라니까 헛똑똑이! 의사 딸이라고 남들은 좋겠다고 하지만, 내 속사정 누가 알겠누." 서른 다섯 살 노처녀 의사 딸을 둔 주부 황모(61)씨는 오늘도 혼자서 넋두리다. 아침에 딸한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화근이었다.
"엄마, 한전에서 전기세 밀려서 전기 끊는다고 전화 왔었어. 엄마가 알아서 해결해줘. 오늘 환자 많아서 바쁘거든." 공부 잘하는 딸을 뒀단 자부심으로 목에 빳빳이 힘주고 다녔던 황씨지만 이젠 걱정이 많다. "독립하겠다고 노래를 불러서 원룸 얻어줬더니 세금도 제때 못 내요.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뒤치다꺼리 해줘야 하는지…."
#2. 대학강사 딸을 둔 50대 김모씨도 속앓이가 심하다. '잘난' 딸이 이혼남과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기가 막히는데, 상견례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너무 빨리 재혼한다고 해서 우리도 썩 내키지는 않는데, 워낙 그 댁 딸이 우리 애를 좋아한다고 해서…." 알고 보니 '대접' 못 받으며 더 매달린 쪽은 자기 딸이었다. 김씨는 "애가 차갑고 도도해서 결혼 못 하면 어쩌나 했는데 완전히 속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알파걸(운동·학업·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자보다 우월한 여성 혹은 여자 아이)' 딸 때문에 속앓이하는 엄마가 늘고 있다. 그런 딸들이 일이나 자기계발에선 능력 있지만, 연애·재테크 같은 일상 속 '실전'에는 젬병이기 때문이다.
일엔 '알파걸', 연애엔 '오메가걸'
전문가들은 "알파걸 가운데 연애에 삐걱거리는 '오메가걸(그리스 문자의 마지막 'ω'를 합성한 신조어, 알파걸의 반대 의미)'이 많은 건 우연이 아니다"고 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알파걸에게는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며 "남자에게 이성적인 끌림을 줘야 한다는 강박이 엉뚱하게 신파조로 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 능력이 있는 알파걸이 남자를 고르는 기준은 금전적인 능력이 아니라 지적·정서적인 성숙도"라며 "자기보다 성숙한 나이 많은 남자에게 끌리기 쉽기 때문에 '부적절한 관계'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분석했다.
경쟁에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평강공주 심리'를 자극하기도 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박진생 원장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경쟁심을 유발하는 배우자를 싫어해 사회적 통념상 여자보다 '급'이 낮은 직업이나, 백수와 결혼하는 알파걸도 종종 있다"고 했다.
알파맘, 친정엄마엔 애물단지
결혼한 알파걸, 즉 '알파맘'의 헛똑똑이 현상도 주목할 부분이다. 육아·살림 같은 엄마·주부로서의 덕목을 친정엄마에게 전가하는 경우다. "딸아이가 바쁘다는 핑계로 세금, 통장 관리까지 나한테 다 의지해요." 외손녀를 봐주고 있는 정모(59)씨는 "안쓰럽다가도 주부로서는 빵점인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서양의 알파걸은 일찍 독립하기 때문에 업무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똑순이'다. 한국에선 그 독립과정이 없어서 일상에서 무능한 알파걸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진생 원장은 "부모로부터 떠나는 사회화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30대 주부들이 꽤 있다"며 "절반은 부모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알파걸 딸, 과잉보호는 금물
알파걸의 원래 의미는 모든 방면에서 자기 관리에 철저한 여성. 하지만 한국에선 알파걸의 방점이 '좋은 직업'에 찍혀 있어 알파걸의 의미가 왜곡됐다는 지적이다. 황상민 교수는 "부모들이 공부 잘하는 딸을 만들기 위해 성·금전 등 실생활에 필요한 요소를 세속적인 걸로 치부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했다. 황 교수는 "부모가 딸을 알파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헛똑똑이로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박진생 원장은 "딸을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고,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이 헛똑똑이를 방지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