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츠는 1955년 10월 28일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저명한 변호사였던 아버지와 워싱턴대 재단 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밑에서 게이츠는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모는 다소 엄격하게 게이츠를 길렀다. 넉넉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하루 용돈은 25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게이츠 아버지는 특히 아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했다. 게이츠가 보고 싶다고 말한 책은 당장 사다줄 정도였다.
"마을 도서관에 있는 책을 전부 읽겠다"고 말할 정도로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인 게이츠는 친구들과는 누가 책을 더 많이 있나 경쟁하기를 즐겼다. 이후 게이츠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어린 시절의 독서에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게이츠의 컴퓨터 실력은 이미 학교에선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교사들조차 컴퓨터에 관한 의문이 생기면 게이츠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게이츠의 남다른 컴퓨터 실력을 눈여겨보고 있던 교장은 게이츠를 불러 학생들의 시간표를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 제안에 신이 난 게이츠는 예쁜 여학생들만 듣는 반을 편성하고 남학생 중에는 자신만 유일하게 그 수업을 듣도록 시간표를 짜는 등 컴퓨터 실력을 십분 발휘해 유쾌한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시절 게이츠는 해킹을 시도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여느 컴퓨터 신동과 다를 바 없는 좌충우돌의 모습을 보였다. 컴퓨터에 대한 게이츠의 이 같은 애착은 이후 베이직 프로그램과 MS-도스 제작의 밑거름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고교시절 게이츠가 가장 즐겨봤던 책은 다름 아닌 경제잡지 '포천'(fortune)이었다. 게이츠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포천을 읽는 학생은 나 말고 2~3명에 불과했다"며 "포천은 경영감각을 키우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대학의 많은 경영학과 교수들은 학습 능력이 가장 뛰어난 CEO로 단연 게이츠를 꼽는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욕과 왕성한 독서열 때문이다. 경영학 서적은 잘 읽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게이츠가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알프레드 슬론 전 GM 회장이 쓴 ‘GM과 함께 한 나날들’(My Year with General Motors)이란 경영관련 서적이다.
이후 하버드에 진학한 게이츠는 대학시절 학업에 열중하기 보단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관심사였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열중했다. 또 그는 잡기에도 능숙해 각종 스포츠를 즐기기도 했고, 특히 포커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현 MS CEO인 발머는 게이츠의 대학시절 포커 친구였다. 게이츠는 뛰어난 포커기술을 통해 대인관계를 넓히고 MS 창립을 위한 사업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 1975년 스무살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 1975년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할 당시 게이츠의 나이는 스무살에 불과했다. 당시 고교친구 폴 알렌과 함께 지분 50대 50으로 MS를 창업했다. 스티브 발머는 학업을 끝마치고 MS에 합류했다.
게이츠는 나이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얼굴 때문에 곤혹스런 일을 자주 치러야 했다. 사장실에 들어가려다가 새로 고용한 비서에게 제지당하기도 하고, 사업차 만나는 업계 관계자들로 부터 무시당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게이츠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로 알고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게이츠는 직접 나서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서 법정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시애틀의 유명 변호사인 아버지를 배경으로 둔 게이츠는 직접 부딪혀 가며 싸우기보단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 스피드광 게이츠, 속도위반 단골 적발 게이츠는 소문난 스피드광이다. 특히 MS 초창기 시절 게이츠는 자신의 보물 1호였던 고급 스포츠카 포르쉐를 타고 고속도로에서 엑셀을 밟아대며 한껏 속도를 즐겼다.
당시 MS는 현재의 시애틀이 아닌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라는 소도시에 위치해 있어서 게이츠는 출장을 위해 공항에 갈일이 잦았다.
그런데 게이츠에게는 비행기 이륙을 불과 20~30분 남겨놓고 회사에서 출발하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게이츠는 이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무수히 많은 속도위반 딱지를 뗐다. 물론 게이츠는 개의치 않았다.
하루는 또 비행기 이륙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역시 엄청난 스피드로 도로를 질주하던 게이츠는 속도 위반은 물론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하고 그대로 공항으로 달리는 바람에 결국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얌전한 게이츠의 얼굴로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 모습이다.
◇ MS-도스, 거대한 부를 안기다 많은 사람들이 게이츠를 '위대한 선각자'로 칭송하는 이유는 그가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조차 미미하던 시절, 수익모델로서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당시는 소형 컴퓨터가 막 시장에 소개되던 시절이라 컴퓨터 업계에서 성공을 꿈꾸는 사업가라면 하드웨어 개발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게이츠는 '하드웨어'에 집중하기보단 '소프트웨어'를 통해 회사를 성장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게이츠의 이 같은 포부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라는 사명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작고(micro) 소프트(soft)한 분야에 매진하겠다는 포부가 MS를 창립할 때부터 게이츠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MS 초창기 시절 게이츠의 명함을 받은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사명 때문에 게이츠를 아이스크림 회사 사장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게이츠는 우선 소프트웨어를 복제해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던 분위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언론을 통해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컴퓨터 사용자들은 이 같은 게이츠의 주장에 반발했지만 게이츠는 "돈을 주고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고품질의 소프트웨어가 계속 개발될 수 있다"고 맞섰다.
MS는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당시 최고의 컴퓨터 제조사였던 IBM으로부터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개발을 의뢰받게 된다. 사실 이 같은 제안은 MS에겐 모험이었다. 당시 MS의 역량이나 규모 면에서 이 같은 프로그램 개발이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이츠는 모험을 선택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MS-도스는 MS 사상 최고의 축복으로 기록되게 된다.
MS는 당시 연매출이 4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도스가 출시된 1981년 1600만 달러로 급성장하게 된다. 이후 MS는 승승장구해 1985년 1억4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뉴욕증시에 상장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게이츠도 억만장자 대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같은 MS 급성장의 배경에는 IBM이 있었다. 당시 컴퓨터시장은 제조업체마다 각각의 운영체제와 중앙처리장치(CPU)등을 사용해 호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소비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생산업체들도 개발비용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자 IBM은 모든 컴퓨터가 하나의 표준규격을 사용하자고 제안을 한다. 이 같은 제안으로 IBM에 CPU를 공급하던 인텔과 운영체제를 공급한 MS는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됐다.
IBM은 물론 게이츠에게서 도스 이용 판권을 구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게이츠는 도스 판매에 따른 로열티를 MS에 지급하라고 맞섰다. 시간에 쫓기던 IBM은 결국 게이츠의 이 같은 요구사항을 수용했고, 이 협상을 통해 게이츠와 MS는 엄청난 부를 획득하게 된다.
◇ 결혼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다
게이츠는 1994년 MS 직원이었던 멜린다와 결혼을 한다. 그는 멜린다와 사랑에 빠진 이유를 "나보다 더 퍼즐을 잘 맞추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대한 결혼식을 위해 하와이의 한 호텔을 통째로 예약하고, 근처 골프장 그린에서 이색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통해 게이츠는 일 중독자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자상한 아버지로 변모했고, 그의 삶도 한결 여유가 넘치게 됐다.
또한 게이츠는 멜린다를 통해 기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돈을 잘 버는 문제에서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문제로 관심이 전환된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의 전환은 2000년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을 설립을 통해 구체화됐다.
"친구야 지분율 바꾸자" 게이츠의 직선적 성격
[굿바이 빌게이츠③]'윈도우95'로 최고부자 길 열어… 자선사업으로 제2의 인생
◇ 도스를 버리고 윈도우 선택 1990년대 중반 '윈도우95'가 출시되면서 윈도우는 도스를 대체하는 운영체제로서 컴퓨터 사용자들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게이츠는 사실 도스가 한창이던 1983년부터 MS내 '윈도우 개발팀'을 두고 차세대 운영체제 개발에 막대한 재원을 들여왔다. 언젠가는 도스를 대체할 차세대 운영체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였다. 윈도우95가 출시되기 이전까지 여러차례 윈도우를 출시했지만 도스 체제 내에서 가동되는 응용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게이츠에게 이 같은 반응은 예상된 비판이었다. 어차피 게이츠의 목표는 윈도우 95를 향해 있었고, 이전에 출시된 윈도우는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중단단계에 불과했다.
윈도우95가 출시되자마자 시장에선 엄청난 호평이 쏟아졌고, 뉴욕증시에서 MS는 연일 상종가를 달렸다. 도스는 이제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에 처했고, MS는 '포스트도스' 시대를 열어갈 신(新)운영체제를 발굴해낸 쾌거를 이룩했다. 또한 윈도우95의 대성공으로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의 위치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윈도우와 도스의 가장 큰 차이는 명령어 입력 방식에 있다. 도스가 텍스트를 입력해 명령을 내리는 방식이었다면, 윈도우는 아이콘을 클릭하는 방식으로 컴퓨터에 명령을 내린다. 동시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윈도우만의 강점이다. 그동안 도스는 한번에 하나의 프로그램만을 가동시킬 수 있었다.
윈도우의 출현은 PC의 대중화 선언이었다. 이제 PC는 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있고, 나아가서는 시대에 뒤쳐질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됐다.
1980년대 초 IBM과의 독점 계약으로 컴퓨터 운영체제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MS는, 이처럼 이후 내놓는 플랫폼과 기술마다 세계 컴퓨터 시장을 흔드는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다.
◇글로벌 스탠다드 MS, 독과점법 위반 위기 도스에 이은 윈도우 출시로 글로벌 스탠다드 지위에 오른 MS는 절대권력을 누렸다. 이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낳았다. 1990년대 중반 미 법무부는 윈도우 98이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MS를 제소했다.
또 윈도우에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윈도우미디어 프로그램을 끼워판 것도 위법시비가 붙었다. MS 익스플로러 시장점유율이 90%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에는 MS의 경쟁사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이 같은 끼워팔기를 행위를 EU에 제소하기도 했다. 미국 사법부는 MS의 손을 들어줬지만 EU 사법부는 MS가 독점금지명령을 어겼다며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손을 들어줬다.
게이츠는 경쟁상대를 철저히 차단해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시장내 경쟁을 인정하지 않는 독불장군!
◇워커홀릭, '생각주간'을 통한 치료 게이츠는 일 중독자다. 하루 18시간 일을 한다. 그리고 시간 낭비를 극도로 싫어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중언부언하면 즉각 "내 시간을 뺏지 말라"고 말할 정도다.
성격도 직선적이다. MS를 창립할 당시 게이츠는 고교동창 폴 알렌과 지분을 50대 50으로 나누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업무 강도나 사업 계획에 미치는 자신의 영향력 등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지분이 불공평하다고 느낀 게이츠는 알렌에게 지분을 65대 35로 변경할 것을 제안해 관철시켰다.
그의 직선적인 성격은 MS 회의 때도 드러난다. 그는 회의 도중 발머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역들 보는 앞에서 냉소적인 어투로 무안을 주기도 한다. 한 번은 회의 중 게이츠가 중역들을 공격하는데 발머가 나서 이들을 옹호하자 화를 못이기고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게이츠의 힘은 통찰과 창의성이다. 게이츠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일년 중 정기적으로 아무도 없는 별장으로 들어가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생각주간(Think Week)을 갖는다. 이 기간 중 게이츠는 누구의 간섭, 방해도 없이 혼자 밀렸던 책과 보고서를 꼼꼼히 읽는다. 고갈된 아이디어를 재충전하기 위해서다. 식사도 배달시켜 먹으면서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각주간에 대한 게이츠의 기대는 마치 휴가를 기다리는 직장인의 그것과 같아서 생각주간이 다가오기 몇 달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 자선사업으로 제 2의 인생 시작 게이츠는 27일 MS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아직 53세에 불과한 게이츠에게 '은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새출발'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게이츠는아내 멜린다와 함께 설립한 자선사업단체인 '빌 앤드 멜린다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통해 자선사업에 매진할 계획이다. 지난 30여년간 돈을 버는데 전력을 다해왔다면 남은 인생은 돈을 가치있게 쓰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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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선행사 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발머(왼쪽)와 게이츠(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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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소에도 "돈이 많다는 것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런 의미에서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타이틀은 기쁜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이전부터 사회공헌을 약속해왔고, 2000년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을 설립해 지속적으로 거액을 기부해왔다. 자신규모 261억달러에 이르는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은 교육과 말라리아 퇴치등 의료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게이츠와 1, 2 위 거부 지위를 경합하는 워런 버핏은 빌앤드멜린다 재단에 300억달러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버핏은 "게이츠의 뛰어난 능력이라면 전세계 기아와 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기부의 배경을 설명했다. 버핏이 보기엔 자기 자신보단 게이츠가 인류복지를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부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