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출신 예술인을 기리는 첫 기념관, 소암기념관이 4일 문을 열었다. 제주도와 서귀포시는 이날 서귀포시 서귀동에서 '소암기념관'개관식을 열었다.
소암기념관은 서귀포 법환동 출신 서예가 소암 현중화(1907~1997)의 삶과 예술을 기리는 공간이다. 소암은 손재형, 김충현, 유희강 등과 함께 한국근현대서단을 이끈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일제시대 서예가로는 드물게 일본에서 유학한 소암은 나이 마흔아홉이던 1955년 귀국후 국전을 무대로 행초서를 전예와 육조해로 혼융해냈고 70~80대 '서귀소옹'시절엔 독자적인 행초서와 파체를 완성해낸다.
소암기념관 상설전시실에서는 생애별 소암의 글씨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소암의 유희적 서풍을 들여다볼 수 있는'취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77년부터 97년까지 20년간 창작공간으로 쓰였던 '조범산방'을 소암기념관과 연결시켜 소암의 일상과 인생 여정을 짚어볼 수 있도록 꾸며놓은 점도 기념관의 특징이다.
○소암 현중화는 누구?
서예가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1907∼1997) 선생은 제주에서 활동한 지방 작가 정도로 알려져 있다. 1950~ 60년대 국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79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근 20년 간 고향 제주를 떠나지 않고 자연과 술을 벗해 글씨만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손재형 김충현 유희강 등과 함께 한국근현대서단을 이끈 '거장'으로 평가된다. 한ㆍ중ㆍ일 현대 서예의 큰 흐름이 된 중국의 육조 해서를 일본에서 익혀 1950년대 국내에 처음 소개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이뤘다.
그는 모든 서체에 능했다. 30·40대 ‘일본시기’에 체득한 육조해를 50·60대 ‘국전시기’에 행초서로 재해석해 한국서단 ‘이채(異彩)’로 자신만의 서예세계를 열었다. 이를 토대로 70· 80대 절정기인 ‘서귀소옹시기’를 맞아 야취(野趣)와 고전미가 물씬한, 가히 ‘소암체’(행초서)를 완성했다. 소암체는 한자 한글을 한 가지 필법으로 따로 또 같이 노래하듯 구사한다. 운필·용묵·점획·결구·장법 등 조형측면에서 음양의 조화가 탁월하고, 미학적으론 비속과 환속을 넘나드는 정신세계의 경계까지 이끈다는 평가다.
말년에는 꼬냑이 없으면 붓을 들지 않을 만큼 취필을 즐겼는데, 거침없이 붓을 달린 글씨가 가히 속세를 벗어난 듯한 경지에 이르렀다. 예컨대 송강 정철의 한글가사 <장진주사(將進酒辭)>, 도연명의 <음주> 시, 술이 모자란다는 뜻의 <주부족(酒不足)> 등의 글씨는 취선(醉仙)의 것이라는 평이다.
<도잠(陶潛) 「음주(飮酒) 5」> 부분, 1992년, 30.5×22.4cm, 종이에 먹, ≪소암취서(素菴醉書)≫ 개인소장
☆ 약력
§1907년 서귀포시 법환동 출생
§1955년 일본유학서 귀국 후 제주사범대학과 서귀포중학교 등에 재직
§1957년 국전입선
§1959년 추천작가
§1966년 개인전(목포·제주·서귀포·여수·마산·부산)
§1969년 초대작가, 심사위원, 제주도문화상 수상
§1973년 제주소묵회(濟州素墨會) 창립. 후진지도
§1982년 중국 서예계 순방
§1983년 대만 국립역사박물관 초대전
§1991년 서귀포시민상(예술부문)
§1992년 예술의전당 주최 개인전
§1995년 서귀포 조범산방에 칩거
§1997년 광주광역시 주관의 의재허백련 미술상 수상
§1997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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