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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신 카스트 시대

세상보기---------/조리혹은부조리

by 자청비 2009. 6. 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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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학벌 대물림, 카스트 시대 도래

[대한민국 新카스트 시대] ①계층구조 고착, 경제 역동성 상실

 


[머니투데이]

 

 

-계층구조 고착되면 경제 역동성 상실
-상위계층 진입쉽게 정책적 노력 필요

 

중학생 자녀를 둔 세 엄마가 둘러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A씨. "애 성적이 떨어져 걱정이야. 그래서 왜 그 유명한 족집게 선생 있잖아? 그 선생 있는 학원으로 옮기려고…." 듣고 있던 B씨가 한 마디 던진다. "여기서 안되면 빨리 미국 보내. 거기 명문 기숙사학교 보내면 아이비리그 대학도 갈 수 있다더라. 왜 좁게 한국만 바라보고 사니?"

 

별 말이 없던 C씨,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다독인다. "너도 이번 성적 별로 안 좋더라? 그래도 주눅들지 말고. 남자 애가 담대하게 커야지 그깟 성적에 너무 쫀쫀하게 그러면 되니? 네 앞으로 건물 하나 있잖아. 먹고 살 걱정이야 하겠니?"

 

한때 시중에 돌던 우스갯소리다. A씨는 별다른 재산이 없는 사무직·전문직 가정의 엄마로 자녀교육에 '올인'한다. 한국사회에서 돈이 없을 때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B씨는 대기업 임원, 고소득 전문직, 벤처기업 사장 등을 남편으로 둔 엄마로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모든 길은 해외유학으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C씨는 큰 사업체를 갖고 있거나 알짜 부동산 부자로 결국은 돈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웃으라고 하는 얘기지만 부모의 부와 직업, 교육이 그대로 자녀세대에게 대물림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에서 일어나 빠르고 역동적으로 성장하던 한국사회가 정체 상태에 빠졌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부모가 초등학교조차 졸업 못해도, 부모가 일자무식에 가난뱅이여도 자녀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성공신화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이 정체되고 사회구조가 안정화되면서 계층간 벽이 올라가고 있다. 맨 꼭대기 계층에서 아래로 떨어지기도 쉽지 않지만 아래로부터 위로 상승은 훨씬 더 어려운 계층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 인도의 신분제도였던 카스트처럼 한국사회에서도 경제적 자본(돈), 문화적 자본(교육), 사회적 자본(인맥)이 대물림되는 신카스트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현대판 바보 온달, 현대판 신데렐라는 찾기 힘들다. 월급쟁이 남편을 둔 평범한 중산층 엄마들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친다. 한국사회는 이제 고 정주영 회장처럼 쌀집 점원으로 시작해 대기업을 세울 수 있는 고속성장의 시대도 아니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전 회장처럼 대학을 중퇴하고도 아이디어와 신념으로 성공을 거두는 유연한 사회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고착화된 계층사회는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웨딩섹션은 철저하게 엘리트 계층만을 다루는 지면이다. 신문은 지면에 실리는 인물의 4가지 사항을 강조한다. 출신대학, 대학원 학위, 사회경력, 그리고 부모의 직업이다. 바로 이 4가지가 오늘날 미국의 상류계급을 특징짓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데이비드 브룩스의 저서 `보보스'에 나오는 구절이다. 같은 계층끼리 결혼은 한국에서도 낯선 현상이 아니다. 한국의 유명 결혼정보업체가 명품 신랑과 신부를 엮어주겠다며 신문에 싣는 광고들은 미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한국에서도 재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위 1%의 결혼을 담당한다는 한 결혼업체는 `골프 치는 사돈은 필수' '가족재산 36억원의 변호사로 배우자 제1조건은 나와 비슷한 수준의 집안' 등 광고문구도 지극히 자극적이다. 업체 관계자는 "대부분은 본인과 비슷하거나 본인보다 나은 조건의 상대방을 원한다"며 "회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밀착관리한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광화문 금융회사에서 비서로 근무하는 한 여자회원은 남자의 직업 외에 남자 측 아버지 직업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여성은 "요즘 강남의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 해도 3억~5억원은 필요한데 전문직 신랑이라도 시댁 도움 없이 그만한 재산을 모을 수 있겠냐"며 "시댁의 경제사정이 좋으면 같은 조건의 남자라도 더 나아보인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결혼, 교육은 신데렐라처럼 재투성이 아가씨를 멋진 공주로 바꿔줄 수 있는 신분 상승의 대표적인 통로였지만 재투성이 아가씨가 멋진 공주로 변할 수 있는 마법은 점점 더 만나기 어려워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평강공주를 만나 번듯하게 성공하는 바보 온달도 현대 한국사회에선 불가능한 전설이 돼가고 있다.

 

이같이 고착화돼가는 계층구조, 돈과 교육과 인맥으로 대물림되는 신카스트를 깨지 않는 한 한국경제의 역동성과 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태어날 때부터 조건이 정해져 평생 바뀌기 어려운 사회라면 변화를 위한 노력마저 좌절시키며 꿈과 희망을 빼앗는다. 상승할 수 있다는 희망과 상승하려는 욕구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다시 뛰기 위해서라도 아래로부터 위로 진입이 쉬워지도록 신카스트 구조를 무너뜨리려는 정책적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2007년 빌 게이츠 전 MS 회장이 34년 만에 하버드대학을 졸업하면서 한 연설은 카스트구조가 뿌리내려가는 지금 한국사회에 던지는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진보는 기술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를 통해서든, 양질의 공교육을 통해서든, 훌륭한 보건서비스에 의해서든 불평등을 줄이는 일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빈부격차→정책기반 약화→경제 걸림돌
[대한민국 新카스트 시대]② 경제적인 富로 갈리는 계층


-전후 두세대 지나며 새 신분질서 형성
-"자수성가 힘들다" 중산층의 위기
-올 1분기 소득 5분위 배율 8.68배 '최고'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20대 태반이 백수인 '이태백' 세대에게 `자수성가'는 공감하기 어렵다. 부모의 자산과 소득이 떠받쳐주지 않으면 하류층에서 상류층으로 상승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분 상승이 사실상 막히면서 한국은 점차 신카스트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신카스트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갈려 평생 그 신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도의 고질적 계층구조 `카스트'에 빗댄 말이다.

 

현대 한국사회의 카스트는 종교와 직업에 따라 신분이 바뀌던 인도의 카스트와 달리 경제적인 부로 계층이 갈린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폐허에선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출발선이 비슷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세대가 지나면서 새로운 신분질서가 굳어지고 있다. 자산이 충분하지 못하면 중산층이라 해도 실직과 동시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서울대 입학생에 대한 실태조사는 이같은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아버지는 절대 다수인 81.5%가 대졸 이상이었다. 대졸 53.3%, 대학원 졸업 28.2%며 고졸은 16%에 불과했다. 어머니도 절반이 훨씬 넘는 65.8%가 대졸 이상 학력이었다. 고졸은 이의 절반 수준인 32.2%에 그쳤다. 서울대 입학생은 아버지 직업도 고소득 직종이 많았다. 법조인, 의사, 교수 등 전문직이 20.8%, 사장과 대기업 간부 등 경영관리직이 16.4%로 전체의 37.2%를 차지했다. 반면 숙련기술직은 5.5%, 농·축·수산업과 비숙련노동은 각각 1.3%에 불과했다. 이들 직업과 판매·서비스업 14.7%를 합해도 22.8%로 전문직과 경영관리직을 합한 37.2%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적었다.

 

일본 최고의 국립 명문대인 도쿄대도 서울대와 상황이 다르지 않다. 도쿄대는 이미 1970년대 재학생 부모의 소득이 도쿄시내 다른 사립대생 부모의 소득을 넘어섰다. 사립대보다 저렴한 학비로 가난하지만 똑똑한 젊은이들에게 배움과 성공의 활로를 터줘야할 국립대가 오히려 부유한 집 자식들의 신분 유지 코스가 되면서 신카스트 확대 재생산의 정점에 서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신분 상승의 길이었던 `공부'도 부모가 돈이 있어야 가능한 시대다. 단순히 사교육 탓만은 아니다. 복잡하고 고도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수십년 동안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공교육만으로 최고의 인재가 되기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가난한 집 자식들의 최고 신분 상승 통로였던 사법고시가 돈이 많이 드는 로스쿨로 대체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화·융합화된 사회구조에서 사시만으로 법조인을 선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원인이었다.

 

문제는 과거엔 고시촌에 틀어박혀 혼자 열심히 공부해도 사시를 통해 법조인이 돼 상류층에 진입할 수 있었지만 이젠 3년간 학비만 6000만원이 드는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농촌 출신 상고 졸업생이 법조인이 되는 성공스토리는 더이상 불가능해졌다. 또 다른 고소득 직업인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대 등록금은 다른 학과보다 훨씬 비싸다. 실험이나 실습이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교재와 기구 등도 적지 않아 부수비용도 많이 든다.

 

가난한 집 자식이 천재적인 머리로 공부를 잘해 의대에 들어갔다 해도 졸업하려면 적지 않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신분상승이 거의 불가능한 가운데 빈부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올 1분기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8.68배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배율이 커질수록 소득격차가 크다는 의미다. 지난해 하반기에 몰아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용직보다 일용직, 임시직,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더 많이 빼앗아갔다.

 

자산격차도 심각하게 벌어져 있다. 2007년 옛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토지 소유 현황에 따르면 2006년말 상위 1%의 땅부자가 민간 소유 토지의 절반 이상인 57%를 차지했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 결과 1996년에 68.5%였던 중산층은 2006년 58.5%로 줄었고 빈곤층은 같은 기간 11.3%에서 17.9%로 늘었다.

 

카스트가 심각한 이유는 상승은 극히 어려운 반면 중간에서 밑으로 떨어지기는 너무 쉽다는 점이다. 특히 자산이 없는 월급쟁이들은 직장만 잃으면 얼마 못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취약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같은 구조에선 사회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좌우대립이나 노사문제도 따지고 들어가면 중산층 신화가 무너지고 빈곤층이 증가하는 경제적 격차 확대가 근본 원인이다.

 

주 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중산층이 붕괴되면 사회불안과 계층간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며 "저소득층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정부와 정치권을 불신하면 정책의 지지기반이 약화돼 국정운영이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계층간 격차 확대로 인한 사회혼란상은 경제성장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경제적 격차 해소를 위한 전국가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경준 KDI 연구위원은 "분배 이슈로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성장을 위한 사회적 동력이 부족하게 된다"며 "중산층을 복원하고 빈곤층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新카스트' 등장, 외환위기가 주범

[대한민국 新카스트 시대] ③ 양극화·저성장·미흡한 사회 안전망이 원인

 

-고용불안으로 중산층 대거 몰락
-일자리 창출·사회안전망이 대안


한국사회에 계층간 격차가 뚜렷한 신카스트가 등장한 원인은 양극화와 저성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열악한 사회적 안전망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소득 양극화와 자산격차 심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6년 8월에 발간한 `소득 양극화 현황과 원인'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양극화는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대란을 겪으며 심화됐다.

 

1984년부터 외환위기 전까지 소득양극화지수인 울프슨(Wolfson)지수와 ER지수는 경제성장에 힘입어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1998년에는 전년 대비 각각 7.7%와 10.5% 상승했다. 이 두 지수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다시 하락하거나 별 변동이 없다가 카드대란이 일어난 2003년 이후 오름세로 돌아섰다. 외환위기 때는 구조조정에 따른 감원으로, 카드대란 때는 카드빚으로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대거 전락하며 양극화가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자산불평등은 부동산이 주요 원인이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저서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에서 부동산 투기가 부의 수준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밝혔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집 있는 자와 집 없는 자의 자산불평등이 가중됐다는 분석이다. 집값이 뛰면서 월급만으로 집을 사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도 자산불평등을 부추기고 있다.

 

저성장사회 진입과 이에 따른 일자리 감소도 신카스트 형성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득양극화지수가 하락세를 보인 1980년대 중반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는 수출드라이브정책과 3저(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호황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았다. 고성장으로 일자리가 빠르게 늘었고 임금상승률도 높았다.

 

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취직해 매년 올라가는 월급으로 자산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고성장에서 저성장기조로 돌아섰다. 경제성장률이 정체되니 일자리가 늘지 않아 취업난이 심화됐다.

 

구조조정이 상시화되면서 비정규직과 조기퇴직자가 늘었고 한번 실직한 근로자의 재취업이 어려워지는 등 노동시장은 구조적인 변화를 맞았다. 고용불안으로 근로자의 자산형성이 치명타를 입으며 중산층의 빈곤층 전락이 가속화됐다.

 

중앙대 신 교수는 "고용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임시직과 일용직이 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깊어졌다"며 "임시직과 일용직은 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연금과 보험, 각종 수당 등 혜택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점도 신카스트가 고착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직할 때 일정 수준의 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자는 전체의 40%로 절반도 안된다. 나머지 60%는 일자리를 잃었을 때 예금을 깨거나 자산을 팔지 않는 한 먹고 살 방도가 없다.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지만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최저생계비를 받지 못해 생계조차 어려운 빈곤층도 상당하다. 물론 이같은 계층간 경제적 격차 확대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양극화가 심화됐고 일본 역시 장기 불황을 겪으며 근로자의 임금이 줄고 비정규직이 늘면서 중산층의 자산형성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세계에서 중산층이 가장 탄탄하던 일본조차 장기 불황으로 기업의 고용능력이 저하돼 소득격차가 심화되면서 사회적 불안정성이 증대됐다"며 "성장을 통한 고용창출과 소득증대가 가능한 경제구조가 정착돼야 소득분배의 개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일자리 창출과 사회통합을 고려한 정책 구상이 필요하다"며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창업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창출과 함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고 신분상승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기 위한 교육제도 개선도 요구된다. 유경준 KDI 연구위원은 "소득분배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 재분배정책을 쓰기보다 선제적으로 악화를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저소득층의 교육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 덕에 성공한거 아녜요, 내 노력이죠"
[대한민국 新카스트 시대]④ 최상류층 브라만의 사는 법


-중학교 3학년때 주식투자로 용돈벌어
-'자산·인맥·교육' 대물림


'어려서부터 학력과 경력, 자산관리를 시작했다. 주변에 좋은 역할모델이 있다. 부모 혹은 배우자, 지인의 네트워크를 통해 더 쉽게 인맥을 형성하고 더 빠르게 핵심정보로 다가간다. 정서적 안정감과 세련된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이 글을 읽고 '바로 나잖아?'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우리 사회 최상류층이거나 앞으로 최상류층에 버금가는 높은 경제·사회적 지위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경제·사회적 최하위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상류층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소질을 찾아내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다. 수백년 명문가문의 자손인 L씨(35)는 "일가 친척 중 부모 덕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다. 다들 열심히 노력해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고 한다.

 

L씨와 남편, 그의 사촌들은 모두 하버드대·서울대·연세대 의대 등 소위 명문대학을 나와 기업을 경영하거나 의사 등 전문직에서 일한다. 부모세대는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 회장, 대학 총장을 지냈다. 사업가 K씨(36)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주식투자로 용돈을 벌었다. 사업가인 부친의 어깨 너머로 배웠다. 20대 때 부모님에게 빌린 돈 1억원과 자신의 돈 5000만원으로 부도 위기의 벤처기업을 인수했다. 이 기업을 회생시키며 그는 20억원대 자산가가 됐다. 부모님이 빌려준 돈은 1억원뿐이고 나머지는 혼자 힘으로 번 것이니 자수성가다. 미국 3대 경영학 석사과정(MBA) 중 한 곳에 다니는 Y씨(33)는 "상류층 집안 아이들이 여기 많이 오는데 어릴 때부터 주변의 성공한 어른들 사이에서 역할모델을 찾아 목표를 정하고 학력과 경력을 관리했더라"고 전했다.

 

상류층 부모는 자녀에게 '다양한 기회'를 열어준다. Y씨는 "같은 MBA라 해도 상류층 자녀는 인턴으로 가는 기업이 다르다"고 말했다. 부모의 인맥이 미국 대기업들에까지 뻗어 있는 덕분이다. 국내 상류층의 계급 유지 방식은 인도의 브라만과 비슷하다. 카스트가 법적으로 폐지된 후에도 인도의 브라만은 경제·사회적으로 최상의 지위를 누린다. 경제자본은 상속으로, 문화자본은 교육으로, 사회자본은 인맥과 혼맥으로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브라만처럼 한국의 상류층도 자산은 물론 교육과 인맥을 통해 자녀세대의 `계급'을 유지한다.

 

유명 투자회사의 임원 K씨(40)가 그러한 예다. K씨는 미국 명문대학에서 학부과정과 MBA를 마친 후 지금의 투자회사에 취직해 뛰어난 개인기와 탄탄한 인맥으로 굵직한 거래들을 성사시켰다. 그의 부친은 고위 공무원 출신이며 처가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력 가문이다. 하지만 상류층 자녀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다양한 기회'는 다른 계층 자녀들에겐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아마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기업에 들어가 전문가로 일하겠죠. 월급도 많이 받을테구요. 하지만 임원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상류층 친구들과는 경험과 인맥부터 출발점이 다르니까요. 그냥 고소득 전문직이죠 뭐" 중산층 집안에서 자라 미국의 명문 MBA를 다니고 있는 Y씨의 말이다.

 

 

"더 나은 집안에 시집 가야죠"
[대한민국 新카스트 시대]⑤ 2등급 중산층 '크샤트리아'


-전문직 불구 '집안 별로'라며 결혼 퇴짜
-"결혼 잘한 친구들.. 내가 뭐가 부족해서.."

 

서울 광화문의 한 외국계 금융사 과장으로 일하는 L씨(31)는 지방 고위공무원인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누구 딸'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학교 수석을 놓친 적이 없다. L씨는 "이제 남은 건 결혼"이라며 "비슷한 가정환경과 학벌,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더 나은 조건의 사람을 만나야지 조건이 빠지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 딸이 시집은 그냥 그렇게 갔더라'는 소리를 들을 거 아니에요?"  L씨는 친구 P의 결혼을 보며 더더욱 그런 생각을 다졌다. P씨는 결혼 전에 소위 괜찮은 집안에서 맞선 제안이 솔솔치 않게 들어왔다.

 

P씨도 학벌에, 직업에 빠지는 조건이 없었지만 대기업 부사장을 지낸 아버지와 명문가 출신인 어머니 등 좋은 집안 영향이 컸다. P씨는 하지만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만난 지금의 남편과 혼인했다. 당시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부모님이 교회에서 주차봉사를 하실 정도로 소탈한 성격이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남편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혼은 현실'이란 말로 거듭 딸의 결혼을 막으려 하셨다.

 

P씨의 지금 생각은 어떨까. "지금 남편과 너무 행복하죠. 하지만 엄마가 누구는 신랑과 유학 중이고 누구는 의사랑 결혼해 강남에 대형 평수 아파트를 마련했다고 하시며 엄마 친구 딸들 얘기를 하시면 솔직히 기분은 안 좋죠. 나는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사나 뭐 그런 생각도 들고요" P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아이 교육비 때문에 회사를 더 다닐 계획이다. "솔직히 회사 그만 두면 교육비를 줄여야 하잖아요. 아이만큼은 최고의 환경에서 공부하게 해주고 싶어요. 아무래도 남편 월급만으로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버겁거든요"

 

현대 한국의 신카스트에서 2번째 계층을 차지하는 크샤트리아는 중상류층을 뜻한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꽤 좋은 대학을 졸업해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에 취직한 경우다. 하지만 자산은 별로 없어 월급만으로 생활하며 집을 마련하고 부도 쌓아가야 하는 계층이다.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 좋은 직업에 종사하며 중간 이상의 소득을 벌며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지만 크샤트리아에도 현실의 벽은 있다.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전문직에 종사하는 C씨(33)는 최근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여자친구 부모님이 자신을 집안이 별로인데다 집도 없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최고 학벌에 직장에서도 인정 받던 C씨는 이 일로 다소 충격을 받았다.

 

"혼자 힘으로 좋다는 대학을 나와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데 한계는 있더라고요. 사실 서울 아파트값 웬만하면 4억, 5억원 하잖아요. 지금 월급 받아 언제 돈 모아 집 사나 생각하면 갑갑하기도 하고요. 장남이라 부모님 노후도 책임져야 하는데 저는 월급으로 다 해결해야 하니까 좀 힘들죠"

 

법률회사에서 일하는 변호사 K씨(43)는 최근 변호사로 일하는 아내를 고심 끝에 미국 명문대로 유학 보냈다.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명문 주립대에서도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학비가 비싼 아이비리그를 선택했다. 아이 때문이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아이를 아이비리그에 보내기 위해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와이프랑 국내 최고 학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땐 세상이 다 열릴 줄 알았죠. 하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좋은 집안 출신에, 해외 명문대학 유학 출신이 수두룩한 거예요. 그런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뭔가 하나가 더 있어야죠. 그래서 아내가 유학을 가기로 했어요. 물론 아이에게도 더 좋은 기회를 주고 싶구요"

 

한국사회의 크샤트리아는 숨가쁘게 살아간다. 이들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서구에서 자본주의 태동의 주역으로 지목한 프로테스탄트와 가장 유사하다. 근검한 생활태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더 나은 생활을 향해 달려간다. 자산은 없지만 중산층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아 그 덕분에 크샤트리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만큼 자녀교육에 가장 신경을 쓰는 계층도 이들이다. 상대적으로 월급은 많지만 자산이 많지 않아 자신들의 자녀 역시 크샤트리아라도 유지하려면 교육밖에 길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멈추면 빈곤층 추락 3등급 서민의 사는 법
[대한민국 新카스트 시대] ⑥ 부지런히 벌어야 현상 유지, 바이샤의 곤고한 삶]

 

-젊을 때부터 류머티즘, 변변한 직업 못 가져
-생활비는 '세탁소' 운영 부인 몫
-비정규직·중기 '고용불안'

 

서울 충정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K씨(58)는 이 동네에서 잔뼈가 굵었다. 20대에 농사 짓는 부모님을 등지고 서울에 올라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 근처 재래시장의 번성을 지켜봤고 90년대엔 재개발로 떠나는 동네사람들과 작별했다. 아직도 K씨의 동네는 재개발이 한창이다. 4대문 안의 모든 식당이 와서 장을 보던 꽤나 큰 상권이었지만 지금은 시장이름만 있을 뿐 새벽에만 잠깐 열리는 도깨비시장이 다 됐다.

 

K씨의 세탁소 바로 맞은편도 오래된 주택을 허물고 마을 복지센터 건립을 위한 터파기 공사에 들어갔다. 수입이라곤 부인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세탁소 수입이 전부다. K씨는 오래전부터 류머티즘으로 걸어다니기도 불편하다. 젊었을 때부터 아팠으니 변변하게 직업도 가져보지 못했다.  "마누라가 고맙지. 더운 여름에도 땀 흘려가며 다림질 하는게 얼마나 힘들겠어. 내 다리가 아파서 큰 병원 가보자는 걸 내가 말렸어. 돈만 더 들지 이제 와 몸 편하게 산들 무슨 낙이 있다고…"

 

강씨의 아들 3형제는 트럭 운전을 하고 성남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 많이 가르쳐 주지도 못했고 물려줄 것도 없지만 속 한번 썩이는 일 없이 바르게 커준 것이 고맙다. 장마철이면 다리가 더 아플 테지만 이번 여름에도 큰 병원에 갈 생각은 없다. 아들들에게 손 벌리기도 미안한데 그나마 몸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돈을 벌어놔야 한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정부 부처의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40대 K씨는 자녀 교육이 최우선이다. 강북 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도 내 집 마련보다 아이 교육을 위주로 모든 것을 생각한다. "피곤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이에게 영어책 읽어주고 회사에서도 수시로 아이의 학원 일정을 체크해요. 극성이라는 얘기를 듣지만 아이가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업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저랑은 좀 다르게..."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행정인턴으로 근무하는 N씨는 30대를 코앞에 뒀다. 취업난을 겪다 올봄에 겨우 정부의 행정인턴이 됐다. 친구들 중에는 유학간 친구도 있고 취업한 친구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반이 N씨처럼 비정규직이거나 실업 상태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이렇게 행정인턴이 됐으니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하죠. 하지만 연말에 행정인턴계약이 끝나면 또 뭐가 돼 있을지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이제 곧 30세인데…. 부모님이 왜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경제위기로 고용불안이 가중되면서 신카스트의 3번째 계층인 `바이샤', 서민들은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 이들은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또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현대사회의 바이샤인 서민층은 사회계층의 밑바닥인 `수드라', 즉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은 취약한 계층이다. 정부는 경제위기 속에서 이 같은 서민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근로장려세제(EITC) 도입 △한시적 생계비 지원 △행정인턴과 희망근로 프로젝트 등의 대비책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불안한 바이샤들이 건강한 중산층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무엇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중요하다. 하루빨리 경기를 회복시켜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정부가 이들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젠 목표도 희망도 없어요"
[대한민국 新카스트 시대] ⑦ 최하급 빈곤층 '수드라']


-늘어나는 노숙인·부랑인
-노숙인, 3년째 감소하다 작년 1만4288명 증가
-"일자리 외 자존감 되찾아주기 필요해"


서울 서소문의 한 공원에서 만난 노숙자 C씨(32)는 전직 복서다. 공원에서 줄넘기를 하는 사람에게 잠시 줄을 빌려 몇번 줄을 넘겨본다. 이전처럼 날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며칠 비가 와서 냉기 가득한 잠자리가 불편한 모양이다. "아버지가 농사 지으실 때 조금씩 얻어드린 빚이 계속 불어났어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땐 배달일을 하면서 챔피언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빚 감당이 안돼 여기까지 왔네요"

 

C씨는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얼마전 공원에서 함께 지내다 자활에 성공한 형님이 공장에서 남는 물건을 가져다줬다"며 "그걸 내다팔면 얼마라도 돈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이 노숙하는 사람들이 그게 무슨 돈이 되냐며 그냥 같이 배급소에서 밥 먹는 게 더 편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젊으니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서 자활하겠다는 목표가 있다. '그래도'라는 말을 자주 하는 C씨 같은 노숙인들은 `그래도' 사회 복귀의 희망이 있다. 자존감과 일할 의지까지 잃어버리면 하는 일도 없고 정해진 거주지역도 없이, 무엇보다 목표와 희망도 없이 떠도는 부랑인이 돼버린다.

 

최근 경기침체로 노숙인과 부랑인이 다시 늘었다. 정부가 지난 4월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임두성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2005~2008년 부랑인·노숙인 현황'에 따르면 노숙인은 2005년 이후 3년째 감소하다 지난해 다시 1만4288명으로 증가했다. 부랑인도 늘어났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시설에 입소한 부랑인은 9492명으로 최근 4년새 최대치다. 부랑인 중 94%가 정신 혹은 신체적으로 질환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노숙인, 부랑인은 인도 카스트의 `수드라'(노예)나 `딜리트'(불가촉천민) 같은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버린다. 수드라처럼 남들이 기피하는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어렵게 된다. 육체노동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낫다. 부랑인들은 인도의 `딜리트', 즉 불가촉천민처럼 사회적 관심 밖으로 소외된다.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마지막 계층으로 굴러떨어진 이들을 끌어올리기가 어렵다. 장원봉 사회투자지원재단 조사연구팀장은 "노숙인이나 부랑인들에게 일자리와 주거·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반드시 자존감을 되찾도록 격려하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이 노숙인 45명을 3개월간 집중 분석한 결과 체념과 무기력 상태에 빠진 노숙인·부랑인 중 다수가 이미 아동기에 심리적 상처를 많이 받았거나 가족과 주변에서 굴욕과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 팀장은 "체념하면 알코올이나 약물중독에 빠져 정신적 장애가 올 수도 있다"며 "그런 우려가 있는 노숙인에겐 감정적 임파워먼트(Empowerment)와 함께 인간관계를 단계적으로 회복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개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삶을 살았다. `노숙인 다시 서기 지원센터'가 분석한 결과 노숙인의 30%가 고아원 출신이었다. 60%는 결손가정, 알콜중독 가정, 가정폭력 가정에서 성장했다. 노숙인 절반은 18세 이전에 취업해 돈을 벌었다.

 

우리 사회에서 최하층을 형성하는 또 다른 '수드라'인 성매매 여성들도 배경이 비슷하다. 성매매 여성 자활사업에 참여했던 한 사회복지사는 "성매매 여성들은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이 많다"고 전했다.  또 "자존감과 일할 의지를 잃은 사람들에겐 일자리를 줘도 성취도가 낮다"며 "먼저 정서적 안정을 통해 사회적 인간관계를 회복시켜주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수드라, 딜리트들이 '그래도'라며 박차오를 힘은 재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사회적 인프라와 노숙인 최씨를 이끌어주는 '형님' 같은 이웃들에게서 나온다.

 


'절망의 자식들'도 춤추게 하는 건 교육뿐
[대한민국 新카스트 시대] ⑧ 개천에서 '용' 만들기


-"희망은 공부밖에 없잖아요"
-아이들에게 신분상승 통로를


개천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 돌다리 건너 마을 입구엔 푸른 풀이 무성하다. 골목 안 구불구불한 흙길로 들어서니 희미하게 비누냄새가 풍긴다. 희거나 울긋불긋한 빨래가 나풀거리는 건조대, 옹기종기 낮은 키의 장독들, 고추나 상추 따위가 자라는 화분과 스티로품 상자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슬레이트 판으로 만든 벽엔 벽화가 경쾌하다. 벽화 속 빨간 말, 노랑 부리 오리, 푸른 나무들 사이로 '사람세상'이란 글자가 눈에 띈다.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은 아이답게 말갛다.

 

1980년대 초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이곳은 서울 포이동 266. 양재천 건너 높게 솟은 타워팰리스와 대비되는 풍경과 삶으로 `양극화'의 상징이 돼버린 곳이다. 지금도 이곳엔 `투쟁'이란 글자가 쓰인 깃발이 펄럭인다. 정부가 89년에 주민들의 원래 주소를 말소하고 불법점유자로 규정한 뒤 가구마다 5000만~8000만원에 달하는 `토지변상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1981년부터 정부의 자활근로대나 지역개발 정책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와 살고 있던 주민들은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어른들이 '투쟁'과 생업을 위해 집을 비운 사이 아이들은 방치된 채 있었다. 사교육은 꿈도 꿀 수 없는 이곳에서 최근 2명의 대학생이 탄생했다. 1명은 2005년 숙명여대에, 또다른 1명은 지난해 단국대에 합격했다. 숙명여대생은 미국 유학까지 갔다. 이 마을이 만들어진 지 30여년 만에 맞은 경사였다.

 

조철순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장은 "포이동 부모들은 한쪽은 투쟁하느라 다른 한쪽은 재활용이나 청소일 해서 돈 버느라 경황이 없어 아이들을 돌볼 틈이 없다"며 "그런 와중에 아이들이 대학에 척척 합격하니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또 "비뚤어진 아이들이 없다는 게 제일 고맙다"며 "'포이동 인연맺기학교' 선생님들이 애써주신 덕분"이라고 고마워했다.

 

인연맺기학교는 2005년에 만들어졌다. 이 학교 교사 김주혜씨(22·연세대 사회학)는 "투쟁하러 가보니 방치된 아이들이 있어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을 돌보기로 하고 10여명의 대학생이 모여 대안교육이냐, 제도권교육 보완이냐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31명의 대학생 교사가 매주 3일 번갈아 이곳에 '출근'하면서 15명의 아이를 가르쳤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적은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

 

김씨는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이 '이 가난에서 벗어나겠다'고 눈을 빛내며 공부할 것이란 기대는 환상"이라며 "공부하는 습관 자체가 들여져 있지 않아 무조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너희 상황은 너희 잘못이 아니지만 그래도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요. 어쨌든 여기 아이들에게 남은 희망은 공부밖에 없잖아요"

 

공부하라고 모아놨더니 묘하게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집안에만 있던 아이들이 공부방에 나오면서 친구 사귀는 법을 알게 됐다. 다른 동네 친구들도 와서 놀다갔다. 심지어 어떤 강남아이는 하룻밤 자고 갔다. 근처 구룡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다.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아무 벽 없이 어울려 노는 걸 보면서 저희도 놀랐어요. 그냥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크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른들의 편견과 선입견에 물들지만 않는다면요"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로 나가면 더 큰 편견이 이들을 기다린다. 집안, 출신지, 출신학교 등 '신카스트'의 굴레다.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부사장은 "몇년 전만 해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입사하는 지방대생들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선 지방대 출신은 아예 원서도 내지 않는다"며 "원서도 내기 전에 미리 포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지방대 출신, 가난한 집안 출신은 뽑아놓으면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강해 일을 잘한다"며 "사회적 약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권가의 '베스트 투자전략가'로 유명한 김 부사장은 지방대 출신이다. 전남대에서 학사를, 서강대에서 석사를 마친 후 대신경제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신카스트는 무엇보다 정부가 정책적 의지를 갖고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다. 그리고 가장 손쉬운 정책적 해법은 뜻있는 대학생들이 포이동 아이들에게 실천하는 교육기부처럼 사회적약자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할 순 없으니 취약계층에게 일할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가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누구든 자신만의 성공신화를 쓸 수 있다는 희망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 카스트를 지우면 개천에서도 용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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