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라디오 스타 김기덕
“전문적으로 잘 놀았다”
<헤럴드경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 나른한 오후, 김기덕의 '안녕하세요'가 세 번 울려 퍼졌다. 고데기로 돌돌 만 머리에 빨간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큰 언니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밥 딜런의 노래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다시 재봉틀 앞에, 책상 머리에, 택시 운전석에 몸을 붙이면 라디오는 고단한 삶 위에 이국에 대한 동경와 낭만을 흘려보냈다.
▶탤런트, 가수 못지 않았던 인기
팝은 자유였고 낭만이었다. 김기덕은 팍팍한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팝의 전달자였다. 73년 '두시의 데이트'의 DJ를 맡아 팝 음악 프로그램과 인연을 맺은 그는 '골든디스크'를 진행하는 지금까지도 DJ 겸 PD로 활약하고 있다. 94년엔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진행자로 세계 기네스북에 올랐다.
"영상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당시엔 팝송이 젊은이들의 유일한 출구였어요. 젊은이의 80%가 팝송을 들었고, 음악방송의 대다수가 팝 전문 프로그램이었죠."
DJ들의 인기도 하늘을 찔렀다. 음악다방의 디스크자키에게 꽃다발이 날아들었던 시절, 공중파 음악 방송을 진행했던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탤런트나 가수 못지 않았어요.(웃음) 종이학, 일기장, 티셔츠 등을 스튜디오로 보내왔죠. 당시엔 편지나 엽서에 그림을 그려 사연을 보내곤 했어요. 지금은 엽서가 너무 희귀해서 신기할 정도지만."
해외 음반이 유통되지 않았던 70~80년대, 희귀 음반을 구하는 일로 늘 애를 먹었다. "당시엔 '백판'이라고 원판을 복제해 주석을 입혀 찍어낸 복제판을 썼어요. 판 겉면이 하얗다고 해서 백판이라고 불렀죠. 그런 백판마저도 미군부대를 통해 알음알음 구해야했어요. 종종 외국 나가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곤 했는데, 음반이 수입금지 목록에 있어 세관에서 걸리곤 했죠."
▶'반평생 잘 놀았던 사람'
김기덕은 DJ들 사이에서도 실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DJ가 곡을 소개하고 음반을 맞춰 곡을 틀었던 과거엔 엉뚱한 실수가 빈번하게 터져나왔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매직'입니다"라며 음반을 돌렸는데, 생뚱맞은 곡이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진짜 '매직'입니다"라며 다시 음반을 돌렸는데도 하얗게 질린 작가들은 소리없는 아우성을 쳤다. 5번이나 정정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매직'이 전파를 탔던 그때, 청취자들은 그저 웃음으로 화답했다.
마이크가 켜진 상태에서 "이 XX야"라는 욕을 해서 전국에 팝송 대신 욕설이 퍼져나갔던 일도 있었다. "원래 치밀하지 못한 성격"이라는 그는 "그게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이요, 너그러움이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꿈은 '도사'다. 장자와 노자 등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은 라디오 진행에도 여지없이 묻어났다. 팝송과 동양철학의 접목에 청취자들은 묘한 매력을 느꼈다. "지금이라면 미친놈이라고 하겠죠. 하지만 그땐 그게 통했어요. DJ의 카리스마와 개성이 중요했던 시절이었고, 청취자들은 그걸 기꺼이 들어줬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고집스레 틀었고, 음악에 대한 철학을 설토했다.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그의 말미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특이한 게 용납이 되지 않는 시대, 무난한 게 최고인 시대잖아요. 조금이라도 강한 발언을 하면 순식간에 악플이 꼬리를 물고요. 예전같은 라디오스타가 등장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죠."
팝에 관한 그의 해박한 지식, 쉬운 풀이법은 익히 알려진 터다. 하지만 김기덕은 "많이 알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뜻밖의 비결을 털어놨다. "너무 많이 알면 오히려 대중과 괴리가 생겨요. 알아도 모르는 척, 덩달아 궁금한 척하는거죠. 36년 간 매일 두 시간씩 팝 음악 DJ로 살면서 이것저것 조금씩 읽어왔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만요."
김기덕은 자신을 가리켜 "운도 좋고, 복도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단 한 번도 경쟁매체에 뒤져본 적 없고, 아나운서를 거쳐 라디오PD, 부장, 라디오본부장 국장까지 역임했다. 지난해 MBC를 정년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프리랜서로 PD 겸 DJ일을 계속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도 늘 새로운 시도를 하되, 아등바등 방송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게 그의 신조다. 10분여짜리 대곡을 틀어놓고 스튜디오에서 잠도 자고 밥을 먹기도 했다. 대본을 줘도 대충 ?어만 볼 뿐, "갑자기 대본을 읽으려하면 말을 더듬는다"며 웃는다.
그래도 그의 방송이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한비야의 말마따나 '전문적으로 잘 놀았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제게 일이 아니라 놀이에요. 마음껏 다양한 시도를 했고, 저만의 개성과 인격을 풀어왔죠. 너무 자유롭게 잘 놀았구나…. 요즘에야 그런 생각을 합니다."
< 서경주 MBC 라디오본부장이 본 김기덕 >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마이크를 놓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는 프로그램이 정상에 있을 때도 안주하지 않았다. 유행의 변화에 맞춰 늘 새로운 것을 모색한다. 첫 방송 후 36년이 흐른 지금도 젊은이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들을 수 있는 방송을 만들 수 있는 진정한 디스크자키다.
▶라디오는 ○○○다=라디오는 '정'이다. 맥루한의 말처럼 '핫'한, 따뜻한 매체다. 한번 정을 주면 진행자도, 청취자도 오래 간다.
▶온에어 전 버릇은=예전엔 잠을 잤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다.(웃음) 요즘은 작가들과 선곡과 관련해 대화를 한다.
▶기억에 남는 선물=팬들이 보내준 일기장과 종이학.
▶기억에 남는 사건=올리비아 뉴튼 존의 '매직'을 5번이나 연달아 정정해야 했다.
▶첫 방송의 기억=덤덤했다.
DJ 김기덕의 잊을 수 없는 추억
01. Rod Steward - Sailing
02. Debby Boone - You Light Up My Life
03. Harry Nilsson - Without you
04. Lulu - To Sir with Love
05. Leo Sayer - When I needed Me
06. Anne Murray - You needed Me
07. Lobo - I'd love you to want Me
08. Dan Fogelerg - Longer
09. Olivia Newton John - Have You never been Mellow
10. Don McLean - American Pie
11. Bread - Aubrey
12. Crystal Gayle - Don't You make my Brown eyes blue
13. Kenny Rodgers - Lucille
14. Cliff Richard - We don't talk anymore
15. Carly Simon - You're so vain
16. American - Horse with no name
17. Jose Feliciano - Rain
18. Paul Anka - Times of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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