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만 몰랐던 리비아·천안함 의혹
외교부-언론, 국정원 첩보활동 추방 엠바고…러시아 천안함 의혹 뒤늦게 폭로
미디어오늘
정부가 해외 거주 교민과 선교사 등 자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외교 문제에 관해 투명하게 알리기보다는 국익을 내세우며 숨기려 하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주한 리비아 영사 대표부가 철수하는 등 한국-리비아 외교관계가 파열음을 빚고 있는 것과 관련해 리비아 거주 선교사 구아무개씨와 농장주 최아무개씨 체포(구속) 사건이 주된 원인인 것처럼 알려졌으나 사실은 국가정보원 요원의 현지 정보(스파이)활동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여기에는 언론의 ‘직무유기’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정부가 기자들에 이 같은 사실을 고지했으나, 기자들이 정부의 보도유예(엠바고) 요청을 수용하는 바람에 국정원 요원 추방 소식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 한국-리비아 관계 파탄이 한국 외교관의 리비아 카다피 국가원수 정보 수집때문으로 밝혀졌다. 또 한국정부가 기자단에 엠바고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새로운 논란을 낳고있다. 사진은 이상득 의원이 지난 6일 대통령 특사로 리비아를 방문했으나 당초 예정과 달리 리비아 최고위층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모습이다.
외교통상부는 최근 리비아 당국이 지난달 주 리비아 한국 대사관 소속 국정원 요원(외교관) 1명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했다고 밝힌 뒤 사태가 원만히 풀릴 때까지 엠바고(보도유예)를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기자단은 현지 정보요원의 활동보장과 한국-리비아간 협력사업 등의 유지를 고려해 보도를 미뤄달라는 외교부의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수용했다. 대신 지난 23일 MBC가 선교사 구씨와 최씨의 구속 사실만을 잇달아 보도했고, 다른 언론도 국정원 추방소식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러나 미디어오늘이 27일 확인한 결과 이미 리비아 현지 아랍계 언론에서는 한국 외교관의 첩보활동이 문제가 돼 추방되는 등 양국관계가 파열음을 빚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상태였다.
리비아 국민은 아는데 한국 국민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가 상대국 현지에서는 공공연하게 보도까지 된 사안을 국민들에게 감추고, 기자들도 정부 당국의 설명만 듣고 ‘엠바고’를 받아들임으로써 국민들만 어리둥절하게 만든 꼴이다. 이런 가운데 26일 저녁부터는 트위터 상에는 ‘두 교민 구속사실이 한국 정부의 스파이 노릇이 적발돼 보복당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기독교계(세계선교협의회) 등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뭔가를 은폐하기 위해 선교사 구씨의 구속을 불법선교 때문이라고 몰아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 현지 아랍언론 캡쳐 사진.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엠바고 요청과 관련해 “국익과 관계된 사항으로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외교관(국정원 요원) 추방 문제를 협의하는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만 연기해달라고 협조 요청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김기수 내일신문 기자는 “당국에서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기자단에 엠바고를 요청했고, 기자단은 회의 통해 설득력있다고 판단해서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기자들은 당초 엠바고를 유지하려 했으나 ‘국정원 요원 추방 사실’이 이미 현지 아랍계 언론에서 보도됐다는 소식(미디어오늘)이 알려진 27일 엠바고를 해제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 천안함 조사단의 조사 결과 통보 여부, 우리 정부의 인지 여부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겨레는 27일 ‘러시아 전문가그룹의 천안함 검토결과’를 입수해 보도했다. 이 ‘검토결과’는 “천안함은 침몰 전 수심이 얕은 곳에서 선저가 해저에 닿았으며, 이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기뢰의 안테나에 접촉해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합조단의 조사결과와 상이한 결론을 내렸다. 러시아 조사단은 또 ‘한국어뢰’에 의한 침몰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은 “러시아와 자료를 추가로 교환하고 협의한 적은 있지만 이런 내용의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통보받은 바 없다”며 “러시아 입장은 여전히 ‘검토중’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측은 그러나 “러시아 자료를 우리 정부가 통보받고도 은폐했거나, 적어도 다른 경로를 통해 이 자료를 입수하고도 모르쇠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지난 6월 파병된 ‘아프간 재건지원단’의 활동과 안전 여부 등에 대해서도 일체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신경민 "리비아 소식 엠바고? 말이 안 된다"
'리비아 진실' 은폐 지적…"기자들, 취재원 편의 아닌 엠바고 요건 따져라"
신경민 MBC 전 앵커가 최근 언론이 리비아 거주 교민과 선교인 관련 구속 전말을 정부의 보도 유예(엠바고) 요청을 수용해 보도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언론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신경민 전 앵커는 지난 28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http://twitter.com/mentshin)에 "리비아 소식을 보면 언론이 엠바고를 얼마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라며 "언론인은 회사원이지만 헌법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보여주죠. 엠바고의 실질적 형식적 요건을 따져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90년대 초·중반에 수년간 외교부를 출입했고, 이후 워싱턴 특파원을 한 바 있다. 신 전 앵커는 29일 통화에서 "리비아 언론이 보도하고 난리 치는 상황에서 엠바고를 받아주고 유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합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엠바고를 깨는 게 맞다. 처음부터 잘못된 엠바고"라고 지적했다. 그는 "리비아 언론이 보도했다면 엠바고 유지에 실익이 없어진 것"이라며 "엠바고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사정 변경이 생기면 엠바고를 유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기초"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그는 취재원이 요청하면 편의에 따라 엠바고를 수용해 온 관행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취재원은 자기들의 편의 때문에 엠바고를 해달라고 한다. 관료, 기업, 수사관이 무조건 엠바고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엠바고 요건을 모르고 취재원이 요청했다면 기자들이 취재원을 가르쳐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일례로 그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전시작전권 이양 논의를 보도한 한겨레, 경향, 내일신문이 엠바고를 깼다며 징계한 것에 대해서도 "말이 안 되는 엠바고"라고 촌평했다. 지난달 22일 이동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그달 26일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전환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자단에게 고지한 이후 일방적으로 엠바고를 선언했지만, 청와대 기자단은 이를 수용했다.
한편, 그는 트위터에 유명환 장관의 '막말'에 대해선 "개인적으론 오래 취재원으로 알고 지내 발언의 파장을 짐작할만한 분으로 아는데 뜻밖"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자에게 "돌발적으로 나왔다고 생각 안 한다"며 의도적인 '언론플레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앞서, 최근 주한 리비아 영사 대표부가 철수하는 등 한국·리비아 외교관계가 파열음을 빚고 있는 것과 관련해 리비아 거주 선교사와 농장주의 체포 사건이 주된 원인으로 알려졌으나, 미디어오늘 보도를 통해 사실은 국가정보원 요원의 현지 정보(스파이) 활동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가 사태가 원만히 풀릴 때까지 엠바고를 요청한 것을 외교부 출입 기자들이 수용한 사실도 드러나, 언론의 '직무유기' 논란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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