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묵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손’ 있다”
“합조단 과학자 언론 보도됐다고 군 조사 받아…취재원들 두려워해”
미디어오늘
▶ 지난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합조단 안에서는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은 국내 과학계에 금기의 영역이 돼 있는 듯 했다. 하물며 대학생들까지도 말하기를 꺼려했다."
지난 17일 진통 끝에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란은 끝났나' 편을 제작한 강윤기 PD와 심인보 기자. 그들이 보기에 천안함의 '의문'과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은 바로 합조단 안에서 과학적 분석과 진상 규명을 가로막은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었다. 의혹과 논란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는 것 또한 학부생들마저 방송 참여를 주저할 수밖에 만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압력'의 반작용 때문일 것이다.
<추적60분>은 이번 방송을 위한 취재과정에서 몇가지 결정적인 사실을 찾아냈다. 천안함 사고 현장에 더 가까운 백령도 남쪽 초소의 존재, 천안함 유턴지점이 군이 발표한 최초의 사고지점이라는 것, 그리고 군 당국이 천안함 어뢰 피폭의 결정적 물증으로 제시한 백색가루(군 주장 '흡착물질')가 폭발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분석 결과 등이 그렇다. 그러나 강 PD와 심 기자 두 사람이 이번 취재에서 찾아낸 가장 결정적인 '사실'이라고 한다면 바로 천안함의 진상 규명을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와 그 압력이 얼마나 강력한 '금기의 선'을 그어 놓고 있는지 하는 점일 것이다.
18일 KBS 신관에서 미디어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은 가장 먼저 '합조단 내에서 심각한 정보 통제와 왜곡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합조단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던 지난 5월 천안함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알루미늄 파편과 황산염의 존재.
당시 언론들은 이에 대해 상이한 보도를 내놓았다. "ADD(국방과학연구소)는 황산염의 경우 폭발과 무관하다고 했으나 국방부는 묵살했다"(경향신문)는 보도가 있었는가 하면 "황산염은 서방에서 쓰지 않는 특이한 화약성분"(동아일보 등)라는 보도도 나왔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한겨레21과 <추적60분>에서 확인한 ‘비결정질 알루미늄황산염 수화물’ 성분이 그 때 이미 합조단에서도 확인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황산염'의 존재는 어느 순간 언론 보도에서 삽시간에 사라졌다. 강 PD와 심 기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ADD 과학자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얘기했으나 내부에서 토론할 분위가 못됐고, 이런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조사까지 받기도 했다. 그 후에는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군 당국이 천안함 선체와 어뢰, 파편 등에서 수거한 어뢰 폭발의 증거인 이른바 '흡착물'이 폭발과는 무관하거나 거리가 먼 '황산염' 성분인 것을 알고도 이를 묵살했다는 결정적 정황인 셈이다. 두 사람은 이에 관한 합조단 관계자들의 '발언'을 이번 방송에 내보냈다.
강 PD는 이에 대해 "분명한 왜곡이 이뤄진 것"이라고 단언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합조단의 결론을 그들이 폭발재(폭발에 의해 발생한 물질)라고 믿고 있는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는 결론을 내는 쪽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알루미늄 실험, 부식실험도 했던 자연공학 전공 모 대학의 학부생들과 약속을 두 번이나 잡아 만났지만 돌연 '애쓰시는 것 감사하다'더니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그들은 '쥐20 낙서판을 봐라', '취직할 때 불이익 생기면 어쩌느냐'는 이유를 대더라.(심인보 기자)"
◀ 지난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국내 전문가들이 천안함 논쟁에 뛰어들지 않으려 한 것도 이런 불이익을 걱정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그런 면에서 이번에 시료 분석을 해 준 정기영 안동대 교수는 용기있는 분이다.(강윤기 PD)"
두 사람은 취재 과정 내내 군 내부뿐만 아니라, 그 바깥에서도 ‘천안함 문제’는 관련 전문가들이 아예 관여 자체를 꺼리는 '금기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절감해야 했다. 군 당국이 한겨레21의 보도나 <추적60분>의 방송으로 '흡착물'의 과학적 근거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있는데도 막무가내로 이 물질을 여전히 '어뢰 폭발의 증거'라고 우기고 있는 것 역시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군이 천안함 어뢰 피폭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한 물질의 성분분석을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이는 '과학자와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식의 한가한 해명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특히 '함미와 어뢰가 같은 장소에 있었고, 함수에도 이 백색물질이 있었으니 폭발'이라는 게 군의 주장인데, 그렇다면 보고서는 왜 냈나. 그 성분이 무엇이냐를 두고 6개월 가까이 논쟁을 벌여온 것 아닌가. 군 당국이 스스로의 주장을 부정하는 꼴이다.(강 PD)"
강 PD는 이 점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군 당국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인정할 것은 분명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합조단에도 분명한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해서는 그 어떤 의혹도 해소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 PD와 심 기자 두 사람은 군 당국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흡착물질'의 경우 모의수중폭발 재실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왜 합조단이 보고서에 사실과 다르게 기술했는지 그 과정도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번 방송이 국방부의 천안함 보고서에 대한 검증을 통해 보고서 내용의 핵심 내용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등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원인의 실체적 진상에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아쉬움도 드러냈다. "여타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었고, 언론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 지난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심 기자는 실체적 진상 규명과 관련해 "만약 (북한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는) 정부발표가 거짓말이라면 미국 언론에 의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처럼 과학적 검증을 통한 취재만로는 밝힐 수 없다. 정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며 "관련 정보의 유출 가능성은 국내 보다 미국이 더 높을 것"이라고 보았다. 천안함 문제를 다룬 이번 <추적6O분>은 방송 당일 '이중편성'이 되는 등 한 때 불방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제작진 윗선에서 방송 내용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내용을 조정해 방송됐지만, 방송 내용의 큰 줄기에는 별다른 가감이 없었다. 하지만 방송이 나올 때까지는 지금 같은 KBS에서 '천안함 문제'가 과연 온전히 다뤄질 수 있을까 하는 외부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추적60분>은 KBS의 기자들과 PD들에겐 중요한 전기가 될 것 같다.
"그동안 제작 현장에서 윗선과 간부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나름대로 제작자율성 지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무엇보다 취재를 통해 확인된 내용(팩트)들이 있어 방송이 지켜질 수 있었다고 본다.(심 기자)"
"KBS 안에서도 이번 방송은 단순히 특정 프로그램 하나를 방송하느냐, 못하느냐 그런 차원을 넘어 (기자와 PD들의 자존심이 걸린) 저널리즘의 문제로 보고 많은 격려를 해줬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적어도 우리가 취재한 확실한 팩트가 있는데 팩트까지 부정당하거나 방송이 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강 PD)
[인터뷰전문]
"군이 추가 검증 응해야 진실 밝혀진다"
"과학적 검증 통한 취재 한계, 정보 더 공개돼야"
다음은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을 제작한 강윤기 PD·심인보 기자와 지난 18일 저녁 KBS 신관에서 한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 강윤기 KBS <추적 60분> PD.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강윤기 PD) "천안함 사건 직후엔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고 생각했는데, 3월 말쯤 '국민의 마음을 모읍시다'라는 특집 프로그램에서 사고의 원인을 제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방송 자체를 반대하다 어쩔 수 없이 제작에 참여해 공부를 하다 보니 이상했다. 그리고 '추적 60분'에서 지난 5월에 천안함 의혹을 다뤘다. 당시는 미스터리한 것 위주로 방송했고, 이후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합조단의 최종결과 보고서를 보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워낙 조심스럽고, 어려운데다 여러 난관이 예상돼 '추적'팀에 합류한 심인보 기자와 함께 제작준비를 했다."
-6개월 만에 다시 방송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강 PD) "무엇보다 국방부 입장 자체가 계속 바뀌어왔고, 한반도 평화와 직결됐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갈렸다. 다시 한 번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과학자들은 논문을 내면 최종이라는 표현을 쓰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계속 논문이 바뀌고, 이견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있으면 계속 수정 보완해간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군은 과학적 보고서라며 ‘최종’이라는 말을 썼다. 발간된 보고서를 검증하는 것을 이번 취재의 목표로 삼았다."
-심인보 기자는 왜 참여하게 됐나.
(심인보 기자) "시사프로에서 일하는 입장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사안이었다. 취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관심을 가져왔는데, 백령도서 취재한 선배 기자들과 사석에서 얘기해보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많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더구나 천안함에 관해 그렇게 많이 쏟아지던 기사들이 어느 순간 다 사라졌다. 뒤집어서 아예 우리가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얼마나 취재했나.
(강 PD) "사건 이후 계속 관심을 가졌지만 본격적으로 취재는 2∼3개월 했다."
-17일 방송 후 안팎의 반응은.
(강 PD) "시청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다. 고맙고 즐거운 일이었다. '추적 60분'이 세간에 이렇게 회자된 적이 없었다. 탐사프로는 세간에 회자돼야 영향력과 의제설정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그동안 '추적'은 많이 부족했다. 이번 방송으로 칭찬도 받고, 욕도 먹고 있지만 어쨌든 반응은 뜨거웠다. 다 존중하고 긍정적으로 본다. 또한 트위터의 힘도 재확인했다. 트위터 팔로워가 엄청 늘었다. 이번 방송으로 나는 1000명, 심 기자는 1700명이 늘었다."
(심 기자) "예전에 트위터에 '추적에서 일하는데 PD수첩보다 못하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올렸더니 리트윗도 많이 되고, 격려도 받았다. 역으로 우리 프로가 의제설정도 제대로 못해왔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 더 두려워말고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많이들 도와줬다. KBS 새노조와 PD, 기자 동료들이 큰 힘이 됐다."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데.
(강 PD) "최근 시청률이 많이 떨어져온 추세에 비해서는 높아졌다. 이번 방송이 다양한 의미에서 KBS 방송의 터닝 포인트가 돼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시사프로가 매번 시청률이 잘나오기도 쉽지 않다. 이번의 경우 과학적 접근이 어려워 시청하다 견디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선 잘 나온 편이다."
(심 기자) "시청률 높고 낮은 것 보다 우리 프로를 신뢰하고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렇게 의제설정을 하는 보도를 자꾸 해야 충성도 높은 시청자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번 방송으로 밝힌 내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강 PD) "제한된 시간과 정보, 인력으로 나름 소기의 성과가 있지 않았나 싶다. 백령도의 남쪽 초소의 존재, 천안함의 유턴지점이 군이 수정하기 전 최초의 사고지점이라는 점은 이번에 처음 밝혀냈다. 또한 흡착물의 경우 그 성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는 더 논의할 필요가 없어졌다. 산화물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국방부가 이미 (산화물이 아닌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알루미늄산화물이라고 국민에 거짓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해명했는데.
(강 PD) "'지엽적 문제는 과학자와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식의 해명은 제대로 된 태도가 아니다. 군은 스크루 부분도 거짓말했고, 회수된 무기를 임의로 폐기했다. 매우 중요한 팩트들이다. 이런 문제는 향후 천안함 사건을 재구성할 때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는 해명하지 않았다. 함미와 어뢰가 같은 장소에 있었고, 함수에도 이 백색물질이 있었으니 폭발이라는 게 국방부 주장이다. 그러면 보고서를 왜냈나. 물질의 성분이 무엇이냐를 두고 6개월 가까이 논쟁을 벌인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자신들이 뭘 잘못됐는지 인정하고 사과해야 옳은 태도다. 우리 방송에 대해서도 과학적 자세와 열린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 결국 흡착물질이 무엇이냐를 두고 이젠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합조단에 대해 분명한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합조단이 당당하다면 모의수중 폭파 실험을 재현하는 방법밖에 없다."
-백색물질이 산화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일종의 증거조작이었다고 볼 수 있나.
(강 PD) "이번 취재를 통해 합조단에 참가한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분석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성분이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것에 대해 세미나도 열었지만 결국 보고서엔 그런 내용이 빠졌다. 아마도 '폭발시 알루미늄산화물이 생성된다'는 참고문헌에 맞췄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분명한 왜곡이고, 스스로 인정했다."
▶ 심인보 KBS <추적 60분> 기자.
-취재할 때 군 당국의 대응은 어땠나.
(강 PD) "의외로 성의있게 취재에 응해줬다. 인터뷰 거절도 안했고, 오히려 해당 분야별 담당자 20여 명이 나와 취재에 응해 준 것은 다행이었다. 이는 전적으로 존중한다."
-취재 때 분위기는.
(심 기자) "합조단 내에서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에 응한 것은 자신감이 있어서겠지만 지적받을 수 있는 약점에 대해 합조단 내에서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것 아닌가 싶은 인상도 받았다."
-그런 게 뭐였나.
(강 PD) "황산염수화물 최초 분석은 과학자들만 논의했고, 군측 조사단에는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압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문헌에 끼워 맞추고 집착하려는 기류가 있었던 것 같다. 제보자(방송에서의 합조단 관계자)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세미나를 갖거나 여러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 해당 과학자들이 군으로부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어떤 보도였나.
(강 PD․ 심 기자) "지난 5월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 전에 여러 언론에서 황산염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알루미늄 파편과 황산염이 수거된 것을 두고 'ADD(국방과학연구소)는 황산염의 경우 폭발과 무관하다고 했으나 국방부는 묵살했다'는 보도(경향신문)가 있었다. 또 '황산염은 서방에서 쓰지 않는 특이한 화약성분'이라는 보도(동아일보 등)도 나왔다. 해석이야 달랐어도 분명한 것은 황산염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황산염에 대한 내용은 자취를 감췄다. ADD의 과학자는 여러 가능성을 두고 얘기했으나 의사소통과정에서 토론하는 분위기가 못됐고, 언론에 보도되면 조사까지 받았다. 그래서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취재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강 PD) "천안함 문제에 언급을 꺼리는 뭔지 모를 위압적 분위기가 있었다. 수많은 전문가 에게 연락했지만 참여해 준 것은 정기영 교수뿐이었다.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지지한다고까지 얘기했던 교수도 결국은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며 고사했다. 천안함 연구모임을 갖고 있는 대학생들마저 끝내 방송참여를 포기했다."
-대학생들은 왜 그랬을까.
(심 기자) "자기들끼리 알루미늄 실험, 부식실험도 했던 자연공학 전공 모 대학의 학부생들인데, 약속을 두 번 잡고 만났지만 돌연 '애쓰시는 것 감사하다'더니 못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쥐20 낙서판을 봐라,' '취직할 때 불이익 생기면 어쩌느냐'는 이유를 댔다."
(강 PD) "전문가들이 논쟁에 뛰어들지 않으려한 이유도 불이익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정기영 교수는 전문성도 있으면서 용기있는 분이다. 걱정되는 것은 정 교수가 우리 방송으로 어느 한 편에 속하는 것처럼 비춰져 자칫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지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분위기는 바로 우리 언론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느꼈다."
-아쉬움은 없나.
(심 기자) "이번 방송은 보고서 검증으로 출발했고, 그 때문에 한계도 분명히 있다. 천안함 침몰의 실체적 진상이 아니라 지금 나온 군과 정부의 가설에 대한 허점을 취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언론 혼자만의 힘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국방부 주장이 옳든 그르든 제3자가 진상 규명에 나서야 사건의 재구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운이 좋아 나쁘지 않은 방송을 했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보는가.
(심 기자) "과학적 검증에 들어가기 전에 폭발원점이라는 곳에서 수거했다는 어뢰가 등장했고, 북한 것이라는 설계도도 제시됐다.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이 되지만 이렇게 강력한 증거가 있는 한 우리가 아무리 과학적 검증을 해도 어뢰 피격설을 뒤집는 것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천안함 침몰 원인은 과학적 검증만으로는 낼 수 있는 답이 아니다.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 군사정보에 대한 것이다. 그게 파악돼서 그 어뢰가 결격사유가 있는 증거로 밝혀지면, 그 땐 천안함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강 PD) "정부의 보고서에 있는 근거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입증했다고 본다."
-정부와 군이 그런 군사정보를 공개할 것 같지 않은데.
(심 기자) "만약 (북 어뢰 피격이라는) 정부 발표가 거짓말이라면 미국 언론에 의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처럼 과학적 검증을 통한 취재만로는 밝힐 수 없다. 정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보의 유출 가능성은 국내 보다 미국이 더 높다."
-우리 정부와 군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강 PD)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군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추가검증에 응해야 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을 먼저 끌어안아야 한다."
(심 기자) "중요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링(공간)이 없다. 문제제기하는 사람들도 게릴라처럼 찔끔 제기하다 말고, 그나마 언론은 기사를 안 쓴다. 그래서 문제 제기가 극단으로 가는 경향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역시 주류 방송과 신문이 제 역할을 못한 책임이 크다."
-KBS는 그동안 북의 소행, 어뢰피격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뉴스를 주로 내보냈는데, 이번 방송에 내부 이견은 없었나.
(심 기자) "이번 아이템에 대해 보도국 기자들과도 상의했다. 잘해보라고 하더라."
(강 PD) "보도나 프로그램의 방향이 다를 수 있다. 우리가 한 역할은 이런 다른 견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정부에 불편한 내용을 방송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심 기자) "우리 부서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제작자들이 윗선과 간부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나름의 제작자율성 지키려는 노력을 했다. 취재를 통한 내용과 그런 경험, 힘 등이 모여서 이번 방송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본다."
(강 PD) "많은 분들이 안팎에서 도와줬다. 내부에서도 이번 건은 단순히 하나의 프로그램을 방송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저널리즘 문제로 보고 많은 격려를 해줬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취재한 팩트가 있는데도, 그 팩트까지 부정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천안함 사건을 아예 외면하는 언론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강 PD) "우리 외에도 MBC 'PD수첩',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프로그램에선 모두 관심을 갖고 취재해 왔으니 조만간 보도하리라 예상한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비판해야 맞다. 타 매체가 어떻다고 우리가 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다만, 합리적인 의심에 따른 취재나 분석을 영향력 있는 언론들이 강력하게 시도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특종 여부를 떠나 지질학, 물리학, 화학, 조선공학 등 각종 분야의 집단 지성의 힘으로 문제 제기가 이뤄졌듯이 언론도 그래야 된다고 본다."
(심 기자) "언론이나 기자, PD라면 의아하고 누구나 취재해볼 만한 사안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참고 있다. 이번에 수거 무기 폐기처분 사실이 확인된 것도 뜻밖이었다. 간단한 확인 요구에 (군 당국이) 스스로 노출해버린 것이다. 이는 아무도 관심을 제대로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취재할 영역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말도 된다."
-속편을 내보낼 건가.
(심 기자) "당연하다."
(강 PD) "이번에 아는 것 다 털어놨다. 각 방송사에서 관심 있는 기자와 PD 10명만 모아 공동제작하면 더 멋지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더 밝혀내야할 게 있다면.
(강 PD) "흡착물질의 경우 모의수중폭발 재실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 합조단이 보고서를 사실과 다르게 기술했는지 그 과정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백령도 초병이 봤다는 백색섬광의 위치가 군이 주장하고 있는 폭발 원점과 다른 이유가 사고지점이 잘못된 것인지, 또는 폭발과 무관한 낙뢰인지 등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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