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와 교수·학생들의 기막힌 동거
[제주CBS]
건물 내부 복도가 제비집으로 가득한 대학교가 있다. 제주대학교 법정대학 얘기다. 창문으로 들락날락 거리는 제비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 제비를 내쫓기는커녕 제비집 밑에 받침대까지 만들어 주며 보살피기 때문이다. 10여년 전부터 제주대학교 법정대학 3층에는 제비들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 건물 밖 처마 밑이 아닌 건물 안 천장 밑에 보금자리를 꾸민 것이다. 제비집은 스피커 위에도, 전등 옆에도 있다. 처음에는 제비가 집을 짓는 족족 철거됐다. 건물 내부 복도가 제비들의 오물로 가득한데다 시끄럽기까지 해 청소는 물론 연구와 강의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년 찾아오는 제비의 정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5-6년전 부터는 제비집이 보호됐다. 덕분에 3개 안팎이던 둥지는 올해 8개로 늘었다.
고영철 법정대학장의 세심한 배려도 한몫했다. 고 학장은 제비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의 연구실 옆에 있는 창문을 항상 열어둔다. 문제는 비바람이 몰아칠 때다. 물이 들어차는 것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 제비가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 학장은 연구실 옆 창문으로 비바람이 몰아칠 땐 반대편 화장실쪽 창문을 개방한다. 화장실 창문으로 물이 들어올 것 같으면 이때는 연구실쪽 창문을 열어둔다. 제비가 들락날락하는 창문이 2군데임을 감안한 조치다. 고 학장은 "비바람이 몰아치면 비가 안오는 쪽, 바람이 불지 않는쪽의 창문을 열어 놓는다"며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마음과 '희망을 물어다 주는 제비덕을 봐서 법정대학생 모두가 좋은 곳에 취업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제비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주어졌다. 둥지 바로 밑에 판자로 된 튼튼한 받침대가 설치된 것이다. 어미새가 잠시 쉴 수도 있고 새끼새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받침대는 필요하다. 또 복도 바닥이 제비들의 오물로 더렵혀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직접 받침대를 설치해준 직원 현승호(50) 씨는 "제비들의 위태위태한 모습이 안쓰러웠고, 청소하는 분들의 고충도 덜어줄 겸 해서 벌인 일이다"고 말했다.
제비가 마음껏 법정대 건물을 드나들 수 있는 건 청소를 책임지는 김임순(60, 여) 씨의 역할도 크다. 30년 넘게 제주대학교에서 주방일과 청소를 도맡아 온 김 씨는 올해부턴 법정대학에서 일하게 됐고 뜻하지 않은 제비 때문에 일거리는 훨씬 늘었다. 김 씨는 "사실 제비 오물을 치우는 것이 간단치가 않아 괴롭지만 생각해보면 제비가 머물러 있는 날이 1년중 얼마나 되겠느냐"며 "그저 제비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번은 제비들의 놀라운 동료애를 목격하기도 했다. 일주일 전쯤의 일이다. 제비 2마리가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니 빨리 와달라는 듯 보였다. 쓰레기를 치우던 김 씨는 곧장 제비들이 있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쓰러진 채 날지 못하는 제비 1마리가 발견됐다.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다 머리를 부딪힌 듯 손으로 만져도 도망가질 못했다. 김 씨는 한참을 쓰다듬고 있다가 제비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밖으로 날려 보냈다. 김 씨는 "'제비야, 박씨 하나 물고 와'하며 쳐올려 주니까 힘차게 날아 올랐다"고 전한 뒤 "그때서야 주변에서 맴돌던 제비도 함께 날아갔다"고 설명했다. 다친 동료를 위해 끝까지 곁을 지키고 있는 제비들을 보며 김 씨는 "너희들이 웬만한 인간들보다 낫구나"라는 생각을 했단다.
매년 3월 제주대학교 법정대학을 찾은 제비들, 지금은 한창 알을 품고 있다. 예민한 시기이지만 제비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암,수 제비가 한마리는 알을 품고 있고 다른 한마리는 바로 옆에서 둥지를 지킨다. 이런 광경을 보는 학생들은 신기하기만 하다. 언론홍보학과 3학년 최나영 양은 "법정대 건물이 너무 오래돼 칙칙한데 제비가 있으니까 덜 칙칙하고 좋다"며 웃은 뒤 "제비가 창문을 통해 건물안까지 들어와 제집을 찾는 것도 신기할 뿐이다"고 말했다. 제비를 내쫓기는커녕 창문을 열어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사람들, 둥지 보호를 위해 받침대까지 만들어주며 보살피는 사람들, 제비 오물이 가득차도 불평 한마디 없이 청소하며 친구가 되는 사람들, 제비에게는 제주대학교 법정대학 모든 사람들이 흥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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