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감동 주는‘대통령 어록’왜 없을까?
헤럴드경제
김태원 등 연예인 어록
쉬운 표현 긴 여운 인상적
정책 교감·철학 문화 공유
청와대 격의없는 대화 필요
가수 김태원 어록이 화제다. 오디션 프로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으로, 멘토로 하는 말들이 인터넷에서 난리다. 들어보면 그럴 만하다. 학교 공부는 사절했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그다. 그런데 표현은 시적이다. 게다가 감동적이다. 귀에 쏙쏙 들어온다. 누가 그보다 인생의 길을, 가수 입문의 길을 더 쉽고 명쾌하게 안내할 수 있을까. 그는 “3등은 괜찮다. 하지만 삼류는 안 된다”면서 “대회가 끝난 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멘티들의 어깨를 두드린다. 창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음악은 발명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의 발견”이라며 명제를 던지기도 한다. 경연을 앞두고 침이 마르는 멘티에게 “긴장하는 사람은 지고 설레는 사람은 이긴다”며 토닥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연예인 어록의 원조는 김제동이다. 강호동도 한 자리 있다. 방송 멘트들이지만 가벼이 볼 게 아니다. 내공이 상당하다. 감탄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 어록으로 묶여 인터넷을 달굴 게다. 이쯤에서 궁금한 게 생긴다. 왜 대통령 어록은 없을까. 사실 없는 건 아니다. 인터넷을 쳐보면 금방 나온다. 문제는 그 어록이란 게 감동을 주는 명언 모음이 아니란 점이다. 대부분 말 실수를 비아냥대는 내용이다. 오래 남기고 기억하자는 의미는 없다. 전ㆍ현직 대통령 모두가 그렇다.
‘세종대왕은 가장 위대한 대통령(임금).’ ‘나는 정치공작의 노예(피해자)였다.’ 뭐 이런 식이다. 그나마 좀 남는 게 노무현 대통령 어록이다. ‘평지에서 굽이쳐 흐를 때가 있을지라도 강물은 결코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노사모에게)’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16대 총선 낙선 후)’ 마지막 가는 길에 던진 말은 그의 어록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의문은 계속된다. 좌우 양 옆에 인재들이 수두룩한데 왜 대통령 어록은 남은 게 없을까. 하루에도 몇 차례나 되는 행사의 모두발언이며 수없이 내놓는 대국민 연설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2주마다 정기적인 라디오 방송까지 하는데 왜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 없을까.
청와대엔 연설기록비서관이 있다. 1급이다. 부처에선 실장급이다. 넘버 3쯤 되는 고위직이다. 그 아래 6명의 행정관이 글을 쓴다. 기록만 하는 인력도 9명이나 된다. 모두 문장으로는 내로라하는 인재들이다. 이들이 서너 단계를 거쳐 만든 연설문은 또다시 부속실에서 다듬어진다. 정무적인 판단이 추가되는 과정이다. 그걸 대통령이 다시 고친다. 처음 만들어진 연설문에서 살아남는 게 절반도 안 된다. 심사숙고하겠다는 데야 말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윤기 빠지고 맛이 떨어진다. 그들은 그걸 ‘정제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단어 하나하나가 많은 파장을 불러오기 때문에 그리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궁금증은 계속된다. 그럼 외국의 대통령 어록은 왜 감동적인 게 많을까.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케네디와 링컨, 루스벨트 등 기억에 남을 만한 대통령들은 인터넷 페이지를 넘겨봐야 할 정도의 어록이 나온다. 정치를 잘했다는 건 좋은 어록을 많이 남겼다는 점과 상통한다. 국민에게 감동을 자주 많이 줬다는 의미다. 스피치라이터의 명문장은 죽은 대통령도 살린다. 르윈스키 사건으로 초주검이 된 클린턴을 살린 건 대국민 연설이었다. 미국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자신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라며 국민에게 읍소한다. “가족이 용서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리고 탄핵을 면했다.
대통령에겐 연설이 진짜 정치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데는 오히려 정책보다 그게 더 낫다. 좋은 어록은 뛰어난 스피치라이터에서 나온다. 케네디의 옆에는 테드 소렌스타인이란 명문장가가 있었다. 하지만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좋은 연설문은 쓰는 사람과 읽을 사람 간의 교감을 전제로 한다. 정책에 대한 이해가 같아야 하고 철학과 문화적 바탕까지도 공유해야 한다. 그만큼 자주 격의 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청와대는 그럴까?
"네이버가 한국 인터넷을 망치고 있다" (0) | 2011.08.12 |
---|---|
'위험한 그들'의 귀환 (0) | 2011.07.18 |
'먹고살기'가 꿈이 돼버린 똑똑한 세대 (0) | 2011.06.16 |
대한민국 보수의 구린내 (0) | 2011.06.16 |
내 종교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는 건 우상숭배 (0) | 2011.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