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이 추천하는 ‘제주 답사 1번지
<트래비>
유홍준, ‘답사’를 말하다
인기만큼이나 이러저러한 소문이 무성한 그를 제주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가 짰을 것이 분명한 답사 코스를 돌아봤다. 사려니숲길을 지나 따라비오름으로. 조랑말박물관과 대정읍 일대 추사 김정희 유배지를 돌아보는 코스. 검증된 그의 안목이 알차게 뽑아낸 곳들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를 여러 번 여행한 사람들이라도 한 번쯤이나 가봤을까 말까 한 그런 곳들이었다.
따라비오름에 오르면 제주의 초자연적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유롭거나 철저하거나
유홍준 교수가 조랑말박물관에 설치된 작품 앞에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 작품은 바람을 불면 조랑말박물관 외부 스피커를 통해 발말굽 소리가 재생된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전경. 삼달분교의 옛 자리를 정감 있는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지난해 새로 개관한 조랑말박물관 내부엔 제주마에 대한 정보와 작품, 유물들이 가득하다
따라비오름에 올라 깊어 가는 겨울 정취를 만끽했다
●대중적인 '아웃사이더'
세상 누구든 '문화유산답사' 하면 유홍준을 꼽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학계에서 그는 여전히 이단아 취급을 받는다. 전문가, 학자층은 유홍준을 두고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한다', '깊이가 없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한다. 그의 해명을 들어 봤다. "정통 학자의 길은 익숙지 않아요. 말하자면 아웃사이더죠.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문화유산은 사실 내재적 가치와 진실성을 아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도자기나 회화 등 대상을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면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장르를 넘는 포괄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어요." 답사기 1권만 하더라도 직접적인 목소리를 잘 내지 않았다. "역사, 사상, 국문학 등 타 분야를 이야기해야 할 때 '송강 정철은 뭐라고 했다더라' 하는 식의 인용을 하는 편이었어요. 제 전문 분야는 아니니까요."
유홍준은 어느 교수와 나눴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언젠가 밥을 먹는데 일류대 교수 한 분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더군요. 정치학에서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대중이 반응하더라는 거에요. 그 얘기를 듣고 놀랐죠. 그의 말대로 보통 전문가들은 '대중적인 것은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대중성을 얻는 데 실패하는 거에요. 대중이 자신을 몰라주면 자기들의 수준을 못 따라와서, 무식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는 책을 쓸 때 잠정적인 독자로 전공이 다른 친구들을 염두에 둔다. 친구들이 읽지 못하는 책은 다른 사람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문화유산답사기 제7권-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을 쓴 것도 제주를 잘 몰랐던 이들에게 진짜 제주를 제대로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그의 책에는 '제주'라고 하면 사람들이 으레 떠올릴 만한 곳이 빠져 있다. "책의 서문에서도 밝혔는데 '당연히 소개할 만한 유명한 곳'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해요. 가봤자 실망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에 소개하지 못해 가장 아쉬웠던 곳이 있으니 '하가리 돌담길'이다. 제주 사람들의 속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돌담길이기 때문이다. "정말 한번 가보면 '이게 제주의 풍광이구나' 싶어요.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관광객을 극도로 꺼리는 바람에 못 썼어요."
그의 책은 6권까지 300만부가 팔렸고, 7권은 10만부가 나갔다. "강연을 가끔 나가는데 여전히 인문학은 대우를 안 해줘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아요. 출간행사, 독자행사 경우도 무료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얼마 이상 안 주면 안 온다더라', '돈독이 올랐다더라'는 오해도 받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인문학이 대우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은 좀 먼 일 같아요." 이번에 그가 모 여행사와 함께 제주여행상품, 일본문화답사상품을 기획한 것도 여태까지 획일적으로 진행돼 온 효도관광, 묻지마관광에서 탈피한 여행상품, 여행코스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뜻을 뒀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으로 제주를 배웠다'
1993년에 나온 1권과 최근 출간된 7권을 비교해 보면 같은 저자가 쓴 것이라곤 믿기 어렵다.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기행문학쪽으로도 애썼고요. 유적지로 가는 과정에 꽃이 아름다웠다거나 냇물 소리가 듣기 좋았다거나 그런 제 개인적인 감상을 얹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많이 성원해 주신 거죠." 책에 소개되고 나서 너무 유명해져 변하거나 그 바람에 문을 닫은 곳도 종종 있어 안타깝다. 유적지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몰려 황폐해지는 걸 볼 때 안타깝죠. 무엇보다 유적지 주차장은 유적지에서 멀어야 해요." 주변 환경 역시 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유홍준은 지난 2004년 문화재청장이 되면서 제주와 많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가 문화재청장이 되고 관심을 가졌던 건 추사 김정희 유배지, 고산리 신석기 유적기 정도였다. 언젠가 제주의 자연을 그려 온 강요배의 그림을 평하러 다랑쉬오름에 따라 올랐다가 그만 제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강요배는 '오름에 올라가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 했었다. 육지인의 눈에는 포착되지 않고 제주에 뿌리내린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광들을 그때 알았다. 그 일을 계기로 유홍준은 검은 화산섬, 제주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책을 보면 유난히 오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데 제주도 답사 1번지로 오름이 많은 조천을 꼽은 것도 그러한 이유다.
그는 내년에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직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한국문화사강의'와 '일본 내 한국문화유산'에 대한 집필을 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폐가가 있어 평당 6만5,000원에 구입했어요. 시골로 내려가야 하는데 성격상 완전히 먼 곳으로는 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진득하게 앉아서 글을 써야 하는데 막상 답사가 생기면 신이 나서 예정에 없던 곳으로 '게릴라답사'를 떠나니 저도 고민입니다." 날이 다시 어두워졌다. 제주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듯 그 역시 '답사'에서 그대로 빛났다.
글 강혜원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한국관광공사 www. visitkorea.or.kr, 인터파크투어 tour.interpark.com, 창비 www.changbi.com
●유홍준이 추천하는 '제주 답사 1번지'
유홍준 교수와 함께 제주도를 걸었다. 그가 소개하는 자리마다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제주'가 있었고
그곳엔 마음으로 보아야만 안겨 오는 것들로 가득했다. 올 겨울 한번쯤 발걸음을 옮겨 보아도 좋을 진정한 제주를 소개한다.
추사 김정희를 그리다 ▶추사 유배지
검고 푸른 천연림을 만나다 ▶사려니 숲길
두모악에 남겨진 제주의 혼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제주마'의 기상을 품다 ▶조랑말박물관
오름의 여왕 혹은 공주 ▶ 따라비오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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