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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훈련소 수료식에 가다

한라의메아리-----/오늘나의하루

by 자청비 2013. 2. 1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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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훈련소 수료식에 가다

 

말로만 듣던 논산훈련소를 가게 됐다. 13일에 있는 아들의 신병훈련 수료식에 가는 길이다. '꼭 가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단한번 뿐이라서 발걸음을 뗐다. 용산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출발했다. 당일 새벽기차로 논산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아침에 서두르는 것보다 전날 내려가는 것이 편할 것 같아 전날 저녁 오후에 출발했다.

 

 

기차를 타고 잠깐 눈을 붙였다. 시골 들판을 지나고 있다. 며칠전 내린 눈이 아직 군데군데 남아 있는 겨울들판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논산역에 도착했다. 택시승강장앞에 서 있는데 어떤 남자분이 어디가느냐고 묻기에 논산훈련소가 있는 연무읍에 간다고 했다. 숙소를 거기에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제일 앞에 있던 차에 타라고 한다. 앞에 있던 차에 빈택시 불이 꺼져 있어서 손님이 타 있는 줄 알고 뒷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빈택시였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은 그 앞 택시의 기사였다. 차에 탑승하자 마자 제주에서 왔느냐고 한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자 수료식에 전날 오는 곳은 제주 뿐이란다. 하긴 그러네... 그런데 이 택시기사와 훈련소 수료식과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면서 재미있게 숙소까지 왔는데 결정적으로 택시요금이 1만4천몇백원이 나왔다. 1만5천원을 줬다. 다음지도에서 택시이동으로 검색할 땐 1만원이었고 집사람이 숙소를 사전예약할 때 1만원이면 올 수 있다고 숙소 주인에게서 들은 바 있었다. 그런데 미터기로 나온 요금이라 언짢았지만 그냥 내줬다.

 

다음날 아침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도 거른 채 수료식 장소인 입영심사대로 향했다. 여기가 훈련소 입소하는 장병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예전에 TV 연예뉴스 따위를 보면 연예인들이 입영할 때 오빠부대들이 와서 진을 친다기에 부대앞이 넓은 광장인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다. 진해 해군훈련소였거나 포항 1사단이었다면 감흥이 깊었을 터인데 별다른 감흥없이 입영심사대 정문을 들어섰다. 그리고 연병장으로 향했다.

 

아들의 외출증을 받아들고 연병장에 도착하니 막바지 예행연습이 한창이었다. 이제 갓 알에서 부화된 대한민국 병아리 군인들이다. 나의 훈련소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시절 만큼 군기가 엄해보이진 않는다. 아마 시대가 많이 변한 탓이리라. 하지만 새해 첫번째로 입소해서 한창 폭설이 내리는 등 나쁜 날씨속에 훈련을 받아서 고생은 심했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아무리 군기가 빠져도 군인은 군인이니까.

 

예행연습을 마치고 잠시 대기하던중 10시 30분이 되자 연대장이 입장했고 수료식이 시작됐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부터 시작해서 훈련수료 신고식, 연대장 훈시, 우수 훈련병에 대한 시상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리고 수료식이 끝나자 부모님들은 운동장으로 내려가 아들을 찾아 격려해주라고 한다.

 

몇몇 부모들이 아들을 찾아 허겁지겁 운동장으로 뛰어내려간다. 나는 가족을 보는 아들의 표정은 어떨까라고 생각하며 운동장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멀리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겨울 폭설속에 훈련을 받았던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 군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나와 아내, 여동생, 여친이 모두 앞에 서자 아들은 '충성' 구호와 함께 경례를 한 후 훈련수료 신고를 한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이병계급장을 꺼내 나에게 건넨다. "ㅋㅋ♬,  이건 내가 달아줘야 하는 거로구나" 그러고보니 언젠가 TV에서 이런 모습을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내를 돌아보니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모처럼 만난 아들이 안쓰러웠나보다. 나는 '고생했다'면서 아들과 악수를 나눴다. 모두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나자 아들이 잠깐만 나가서 기다려달라고 한다. 잠시후 보니 아들의 소대원들끼리 모여 소대장을 찾아 에워쌓다. 그리고 헹가래를 치려했다. 소대장은 한사코 거부하는 듯 했다. 보아하니 다른 소대는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이 소대장이 소대원들에게 나름대로 신망이 두터웠던 같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보니 훈련땐 엄해도 평상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줬다고 한다. 그래?!@#$%~ 30년전 내가 훈련소에서 신병훈련받을 때는 소대장들이 악마로 보였었는데 ….

 

대한민국 남자들의 숙명이자 로망(?)인 군대. 예비군도 제대한 지 한참된 나이 40이 될 때까지 재입대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도 군장병을 보면 옛날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군생활을 그렇게 잘 보냈다고 말하기 어렵다.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이 나의 체질에 안맞다. 운동신경도 빼어나지 못해 행동도 굼떴다. 게다가 또래보다 조금 늦게 입대했으니 군대 선임들이 싫어하는 조건만 갖춘 셈이다. 그래서 처음엔 맞기도 많이 맞고 기합도 많이 받았다. 내가 아들을 군에 보내면서 혹시라도 나의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했다.

 

아들을 데리고 밖에 나와 갈비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아들에게 거의 하지 않았던 아빠의 군대이야기도 했다. 아빠와 아들이 군대라는 공통된 화제가 생겼다.  점심식사를 한 후 숙소로 돌아와 과일과 아들의 여친이 가져온 케익을 나눠 먹으며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한 적이 언제였던가. 두어시간쯤 지나자 아내가 다시 치킨과 피자를 시켰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많아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서방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애를 많이 썼다. 하나뿐인 아들이 군대에 갔으니 오죽할까. ㅋㅋ

 

오후 4시.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됐다. 아들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가 했던 염려는 많이 사라졌다. 나름대로 훈련소 생활도 잘 적응하였고 앞으로 실무부대에 배치받아도 적극적으로 자신있게 잘 하겠다는 의지가 강해보였다. 그래! 넌 잘 할 수 있어! 부대앞에서 아들의 귀대신고를 받은 후 나는 염려를 훌훌 털고 돌아설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엔 군에간 아들 수료식에 온 가족이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온 가족과 함께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들! 군대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군대생활 열심히 하고 하루속히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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