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의 셔츠가 항상 젖어있는 이유는?
[아열대 한국-날씨의 습격 ①]
대기업 절전에 사무실 찜통···업무효율↓ 절전효과도 의문
머니투데이
[편집자주] 한반도가 달궈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빠르면 2070년에는 한반도 남쪽에서 겨울이 사라진다. 최악의 폭염에 아열대 스콜성 집중호우가 나타나고, 동남아 뎅기열 모기까지 판을 친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생활의 변화를 '아열대 한국 - 날씨의 습격' 기획을 통해 짚어본다
▷ 연일 지속되는 무더위로 전력수급 위기상황이 반복되면서 예비전력이 200만㎾대를 기록해 전력등급에 '주의' 단계가 발령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거래소에서 직원들이 불을 끈채 근무를 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전기사용량 급증으로 전력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조명등 50% 소등, 냉방기 50% 가동 중지 등을 권고했고, 공공기관은 조명등 50% 소등 및 냉방기 가동을 중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 S기업 반도체 공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L씨는 오늘도 자신의 손으로 형광등과 에어컨을 껐다. 직접 안 끄면 담당 부서 직원이 와서 끄면서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전력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전기절약 캠페인에 회사가 동참하면서다. 바깥 날씨는 연일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 PC, 프린터 등 각종 사무기기가 내뿜는 열기에 사무실 온도도 30도를 오르내린다. L씨의 옆자리에 앉은 김대리의 와이셔츠는 항상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업무 효율성이 뚝뚝 떨어지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 P기업 서울사무소에 근무하는 사원 K씨는 "요즘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절전 때문에 사무실이 워낙 덥다보니 상대적으로 시원한 엘리베이터가 천국으로 느껴진다는 얘기다. K씨는 "주요 사업장인 제철소에서 전력을 많이 쓰다보니 사무실에서라도 전기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는 이해한다"며 "그래도 가끔은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다"고 했다.◇대기업 사무실은 '가마솥'한때 여름마다 '시베리아'처럼 시원해 냉방병을 피하려면 '긴팔옷'을 입고 근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던 국내 굴지 대기업들의 사무실이 올해는 '가마솥'처럼 펄펄 끓고 있다.
전력위기를 맞아 절전을 당부하는 정부의 정책에 대기업들이 적극 동참하면서 에어컨 등 냉방기 사용을 줄인 데 따른 것이다. 에어컨은 적정온도 26도를 기준으로 돌아가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기업 G사 직원 H씨는 "온도를 26도로 맞춘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온도는 더 올라갈 수 밖에 없다"며 "습도라도 높은 날이면 체감 온도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일부 기업에서는 '간편한 옷차림' 지침이 내려오긴 했다. 남자 사원들의 경우 면바지와 옷깃 달린 티셔츠까지 허용된다. 그러나 H씨에겐 먼 나라 얘기다. 그는 "외부 고객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업무 특성상 정장을 안 입을 수가 없다"며 "폭염에도 어쩔 수 없이 긴팔 와이셔츠에 슈트를 입고 다닌다"고 했다. 상당수 대기업은 저녁 6∼7시가 되면 아예 중앙에서 사무실 냉방을 차단한다. 열대야 탓에 저녁에도 여전히 더운데 그나마 약하게라도 있던 냉방까지 사라지면 야근자들이 남은 사무실은 그야말로 '지옥'으로 변한다.
◇"어둠 속 모니터에 내 시력은…"P기업에서는 저녁 7시30분 이후 에어컨 뿐 아니라 전등까지 모두 꺼진다. 야근자는 한층에 모여서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와 서류 등을 옮겨야 하는 게 번거로워 대부분 원래 사무실에 남아 모니터 빛에 의지해 일을 한다. 특히 주말에는 하루 종일 전등과 에어컨이 꺼져있다. P사 K씨는 "직원들 대부분이 주말 근무만큼은 피하고 싶어하지만, 월요일 회의 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반대로 S기업 사원 L씨의 사무실은 저녁에는 전등을 켤 수 있다. 문제는 저녁 5시 전까지 전등을 켜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에 불이 켜있으면 담당 직원들이 와서 대신 끄고 간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낮에도 어둠 속에 모니터 빛만으로 업무를 봐야 한다. L씨는 "에어컨 끄는 건 그렇다 쳐도 전등까지 못 켜게 하는 것은 심한 것 같다"며 "불 끄고 모니터 보다가 나빠지는 시력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온도 1도 오르면 업무효율 2% 떨어져…더운 사무실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정설이다. 기존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사무실 온도가 28~30도 사이일 경우 근로자들에게는 두통과 졸림, 집중력 저하 현상 등이 나타난다. 일본도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력난을 겪으면서 정부 차원에서 전등 끄기, 에어컨 사용 자제 등의 지침을 내렸다. 이에 대해 타나베 신이치 와세다대학 건축학과 교수가 정책 효과를 분석한 결과, 25도부터 1도가 오를 때마다 업무 효율성이 2%씩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타나베 교수는 "사무실 온도가 28도를 넘어서면 직원들이 개인용 선풍기 등 다른 전자 제품의 사용을 늘려 결국 절전 효과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개인용 선풍기 등은 대부분 저가 제품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지 않다.
"백화점도 덥다" 도심 속 진짜 피서지 어디?
[아열대 한국-날씨의 습격 ②] 절전규제 약해 냉방 강한 박물관, 24시간 커피숍, 심야 영화관
머니투데이 2013.08.20
# 찜통같은 토요일이었던 17일 오후 3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에 차들이 300m나 줄지어 서있다. 이 박물관에는 이날 하루에만 2만여 명이 다녀갔다. 아이 손을 잡고 온 주부들이 특히 많았다. 7살 아들과 3살 딸을 둔 주부 H씨(36·광명시)도 이날 박물관에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큰 아이가 아빠와 전시관 옆 극장에서 어린이 뮤지컬을 보는 동안 H씨는 무릎에 딸을 앉히고 박물관 3층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뮤지컬 관람료 3~5만원을 더 내야 했지만 비용 대비 대만족이었다. H씨는 "아이들 교육도 되고 친구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만날 수 있다"며 "집에서 멀지 않고, 무엇보다 시원해서 좋다"고 했다.
기록적인 폭염이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올 여름 울산의 한 무인 관측장비에서는 최고기온이 40.3도를 찍기도 했다. 여기에 전력 수급 위기는 시민들은 더욱 코너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의 '적정 온도 26도' 지침에 전통적인 도심 속 피서지였던 백화점과 은행도 더 이상 예전만큼 시원하지 않다. 이제는 박물관, 24시간 커피숍 등 도심 속 새로운 피서지에서 주말을 보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 사무실과 달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은 유물이나 작품 보존을 위해 평균 온도 24도, 습도 50~60%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2층에서 바라본 박물관 내 모습.
◇아이들 데리고 도심 속 '박물관 피서' 여름에 박물관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빵빵한' 냉방.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조정실 관계자는 "사무실은 정부 방침으로 26도 이상을 유지하지만 전시장은 다르다"며 "유물이나 작품 보존을 위해 평균 온도 24도 습도 50~60%를 항상 유지한다"고 밝혔다.파주에서 온 L씨(30)도 4살 난 아들과 함께 이날 처음으로 박물관을 찾았다. 친구의 추천으로 왔다는 L씨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고,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무료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놀랐다"며 "야외로 나가면 몸도 지치고 돈도 많이 드는데 박물관은 시원하고 적은 돈으로도 즐길 거리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박물관들도 한껏 반기는 분위기다. 서울 종로구 소재 서울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요즘 평일에는 약 5000명, 주말에는 약 6000명 정도 오는데 엄마 손 잡고 온 아이들이 약 60% 정도로 관람객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열대야 기승에 24시간 커피점 '북적'도심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커피숍도 무더위를 이길 피난처로 떠오르고 있다.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시원한 실내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무선인터넷과 깔끔한 화장실을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얼마 전 서울 홍대 앞 클럽을 찾은 K씨(26·성북구)도 새벽 4시쯤 클럽에서 나와 카페를 찾았다. 첫 차가 오기까지 카페에서 잠깐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새벽인데도 후덥지근한 바깥 공기와 달리 카페 안은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소재한 국립중앙박물관. 방학의 끝무렵 부모와 함께 박물관을 찾은 어린이 관객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K씨는 "새벽이라 카페가 텅 비었을 줄 알았는데, 평상복 차림의 사람들 7~8명이 각자 챙겨 나온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며 "대부분 혼자 온 듯 보였다"고 말했다.24시간 운영되는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A커피전문점은 여름 들어 부쩍 심야 손님이 많아졌다. 이 지점의 부지점장은 "열대야 때문에 자정 이후에도 가게가 손님으로 꽉 차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 카페는 서울 시내 22개, 전국 89개 지점을 24시간 동안 운영하고 있다.주부 J씨(54·은평구)는 "은행에서 더위를 피한다는 건 옛말이 된 지 오래"라며 "오래 머물기는 눈치가 보이는데다 절전으로 별로 시원하지도 않은 은행보다는 음료값을 내고 시원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가 더위를 피하기 좋다"고 했다.
◇열대야 주말은 시원한 심야 영화관에서올 여름 서울의 열대아는 1994년(36회) 이후 19년 만에 가장 많았다. 불면의 열대야를 영화관에서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학원생 C씨(25·성북구)는 최근 심야 영화를 보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그는 "더워서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열대야에 영화를 보러 나오면 더위도 잊을 수 있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가면 푹 잠들 수 있다"며 "심야 영화를 보는 게 주말 저녁을 시원하게 보내는 나만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M멀티플렉스 영화관 관계자는 "상영관은 스크린과 관객들의 몸에서 나오는 열기를 고려해 기준 온도보다 조금 낮은 온도로 냉방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심야에는 낮 시간대 전력 피크타임에 비해 전력예비율에 여유가 있어 비교적 냉방을 강하게 돌릴 수 있다.또 다른 영화관 관계자는 "정확한 집계 자료는 아직 없지만 여름 들어 부쩍 심야 영화를 찾는 관객이 늘었다"며 "금·토요일 자정부터 영화 3편을 상영하는 상품의 경우 여름 들어서 매진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8세 여자아이 목숨 뺏은 '살인 해파리' 1년새 400배
[아열대 한국-날씨의 습격 ③] '살인 해파리'에 '뎅기열 모기'…외래종의 습격
머니투데이 2013.08.27
#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12일 A씨는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다 순간 불에 데인 듯한 통증을 느꼈다. 해변에 올라와 확인해보니 해파리에 쏘인 것이었다. A씨를 공격한 것은 지난해 8살 여자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맹독성 '노무라입깃해파리'였다. 제때 치료를 받아 별 탈은 없었지만 A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 우리나라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유입되기 시작한 아열대성 맹독 노무라입깃해파리와 잠수부가 나란히 물 속에 있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아열대성 해파리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나라 근해에서 볼 수 없는 종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최근 전남 신안 대흑산도 인근 앞바다를 조사한 결과, 올해 노무라입깃해파리의 개체수는 지난해 대비 400배나 늘어났다. 비단 해파리 뿐이 아니다. '달아오른' 대한민국에 아열대성 외래종들이 몰려들고 있다.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생태계를 교란하고, 경제적 피해까지 야기할 것으로 우려된다.
◇뎅기열, '동남아 풍토병'은 옛말 그동안 뎅기열은 동남아 지역에서만 걸리는 풍토병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뎅기열은 고열을 동반하는 급성 열성 질환으로 심할 경우 '뎅기 쇼크 증후군'에 걸려 사망률이 40~50%에 이른다. 올해만 태국에서 뎅기열로 70여명, 필리핀에서 19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최근 제주의대 연구팀은 제주도에 뎅기열을 매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흰줄숲모기'가 서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모기는 공항을 통해 유입된 뒤 아열대와 비슷한 제주도 날씨에 적응하며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지금까지 발견된 흰줄숲모기에서는 뎅기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좌) 등검은말벌 (우) 과수 줄기에 붙어있는 미국선녀벌레.
◇'벌 먹는 벌'…생태계 위협요즘 양봉농가들은 꿀벌을 잡아먹는 '등검은말벌'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 2003년 부산 영도에서 처음 발견돼 현재 지리산, 강원도 삼척까지 활동범위를 넓힌 등검은말벌은 토착 말벌은 물론 토종·양봉 꿀벌까지 가리지 않고 잡아 먹는다. 원래 아열대 기후에서 서식하는 종으로 동남아, 중국 남부 등에 널리 분포돼 있다.
등검은말벌의 등장으로 꿀벌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식물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 벌은 꽃의 수술과 암술을 교배시켜 열매를 맺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양봉협회 관계자는 "벌이 사라지면 과일이 사라지고 결국 생태계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25만종의 식물 가운데 3분의 1이 꿀벌 등으로 생식하는 충매화다.등검은말벌 외에도 과수와 인삼의 진액을 빨아먹고 결국 말려 죽이는 '미국선녀벌레', 블루베리 잎과 꽃을 먹어 농사를 망치는 '블루베리혹파리' 등 외래종 때문에 우리 농가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의 관계자는 "외국 방제약도 우리 토양에 뿌리면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외래종에 대한 맞춤형 방제약이 나오려면 3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토종들 한반도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아열대성 외래종은 득세하는 반면 토종들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추운 곳에 서식하는 북방계 곤충이 특히 그렇다. 천연기념물 제218호인 장수하늘소는 2006년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에서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자취를 감췄다. 우리나라가 남방한계선이었던 상제나비도 기후변화로 분포권이 북상하면서 거의 관찰되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수염풍뎅이, 붉은점모시나비, 노란잔산잠자리 등이 멸종됐거나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국립환경과학원 김종민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아열대 기후성 외래종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며 "다만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만약 미래에 겨울이 없어지고 아열대 기후가 된다면 생태계 교란종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개칠 것"이라고 밝혔다.
아열대 동물의 습격…"닥치는 대로 먹는다"
[아열대 한국-날씨의 습격 ④] 외래종 포식자에 생태계 파괴, 농가 피해 '비상'
머니투데이 2013.09.03.
"2020~30년이면 북극 얼음이 녹고 2050년이면 우리나라에 겨울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이상기후는 아열대 기후로 가는 전조다"(반기성 케이웨더 센터장)한반도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자연 생태계에도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아열대 외래종의 습격'이 시작된 것이다. 수년 전부터 중남미 등 아열대 또는 열대 기후에 살던 동물들이 새롭게 정착하면서 국내 토종 생태계를 파괴하고 농가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
◇'괴물쥐' 뉴트리아
뉴트리아는 아열대성 기후인 남미가 고향이다. 모피를 얻고 식용으로 쓰려고 1985년 한국으로 들여왔다. 한 때 농가들이 애지중지 키웠지만 상품성이 떨어진 후 자연에 그대로 방치됐다. 한해 3번 번식하고 생명력이 강하다. 다 자란 뉴트리아의 몸길이는 60cm 정도. 일반 쥐의 약 10배에 달해 '괴물 쥐'로도 불린다.
원래 초식성이었지만 한국에 들여오면서부터 잡식성으로 변해 벼·당근·미나리·물고기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고 있다. 최근 낙동강 주변에 그 수가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마리 당 2~3만원의 포상금까지 내걸었지만 수가 많아 포상금이 부족한 상황이다. 뉴트리아는 현재 생태계 교란 야생생물로 지정돼 환경부의 관리·규제를 받고 있다.
◇'하천의 암살자' 붉은귀거북
▷ 전라북도 부안에서 발견된 붉은귀거북.
북미와 중남미의 연못 등에 살았던 붉은귀거북은 한국에서 애완용 거북이가 인기를 끌면서 건너왔다. 2006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아열대성 붉은귀거북이 한국의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개체 수를 늘리면서 하천·호수·늪에서 수중생물을 무섭게 먹어치우고 있다.
붉은귀거북이 많이 잡히는 하천에선 토종 물고기들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다른 교란종에 비해 포획이 쉬워 개체 수를 줄여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시화호 등지에선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립환경과학원 김종민 박사는" 아열대 기후에서 들어온 외래종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 우리나라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이들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만약 미래에 겨울이 없어지고 아열대 기후가 된다면 생태계 교란종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개칠 것"이라고 밝혔다.
◇과즙 빨아먹는 갈색날개매미충
◁ 과수 등에 피해를 입히는 갈색날개매미충이 성충이 된 모습. /사진=뉴스1
최근 수년새 갈색날개매미충이 급증하면서 과수 농가에 피해를 주고 있다. 2010년 충남·전북에서 처음으로 공식 보고된 이후 2011년 경기·전남, 2012년 충북에서도 발견됐다. 현재 25개 시·군에서 갈색날개매미충으로 관련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농업과학원 관계자는 "갈색날개매미충이 주로 복숭아·사과·배·대추·블루베리 등 과실의 단백질을 흡수해 과수원 농가에 큰 피해를 준다"고 설명했다. 충남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갈색날개매미충은 충청도 내 주요 발생 지점인 공주와 예산에서 논산·홍성·청양·아산 등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특히 주요 발생 지점의 발생 밀도가 지난해보다 1.3배 증가해 올해 더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갈색날개매미충 개체 수 증가는 올 여름철 무더위 탓이 크다. 국립농업과학원 관계자는 "마른 장마와 폭염 등으로 올 여름 습기가 적었던 것이 해충의 번식을 도왔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습기가 늘어나면 세균이나 곰팡이도 증가해 해충도 병에 잘 걸리는데, 올해는 습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래 해충, 미국선녀벌레
▷ 과수 줄기에 붙어있는 미국선녀벌레. /사진=뉴스1
경상남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올해 미국선녀벌레가 김해·밀양·진주 등 감나무에서 발견했고 꽃매미도 함양·거창·진주의 포도밭과 가죽나무에서도 확인됐다. 미국선녀벌레는 과수와 인삼의 진액을 빨아먹고 결국 말려 죽이는 해충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의 관계자는 미국선녀벌레에 대해 "외국 방제약도 우리 토양에 뿌리면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외래종에 대한 맞춤형 방제약이 나오려면 3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국립농업과학원 관계자는 미국선녀벌레와 관련, "겨울철 따뜻한 온도는 월동 기간 곤충의 알이 얼거나 손상되는 비율을 줄이고, 알이 부화하는 비율을 늘린다"고 말했다. 또 "외래종들은 동남아나 중국과의 교역량 증가로 선박이나 묘목 등을 통해 우연히 국내로 유입된다"며 "이후 습기가 적고 무더운 여름 날씨와 따뜻해진 겨울 날씨 등으로 아열대 종들이 한반도에 잘 적응하면서 개체 수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익산 한라봉','통영 망고'… 아열대 과일 상륙작전
[아열대 한국-날씨의 습격 ⑤] 한반도 평균기온 상승으로 아열대 과일 재배지 북상
◁ 롯데마트가 16일 오전 서울역점에서 비타민C가 많아 독감 예방에 으뜸인 제철맞은 '제주 올레길 한라봉(2Kg/1박스)'을 40% 가량 저렴한 1만2500원에 선보이고 있다.
'익산 한라봉', '순천 키위', '통영 망고'···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높아지면서 아열대성 과일들의 재배 지역이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1.5도 상승했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북 익산에서는 최근 한라봉을 수확해 판매를 시작했다. 제주도가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한라봉' 명칭 사용을 제한하고 나섬에 따라 대신 '하나봉'이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다. 이미 전남 나주·보성·고흥에서도 한라봉을 재배해 수확한 바 있다. 크고 동그란 모양의 교잡종 감귤인 한라봉은 당초 제주도에서만 나는 특산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기후온난화에 따라 재배지가 한반도 내륙으로까지 비약적으로 확대됐다.
그동안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 소량 생산되던 키위도 최근에는 전남 순천, 해남, 고흥, 보성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에 따르면 현재 국내 키위 재배면적은 1300ha에 달한다. 경남 통영에서는 2010년부터 아열대 과수 재배단지 1.6ha를 조성해 망고, 용과 등 아열대성 과일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홍순영 제주농업기술원 연구사는 "국산 망고의 경우 완숙해진 뒤 판매하기 때문에 수입산과 비교해 맛이 훨씬 좋고, 특이성 때문에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하던 사과의 재배지역은 겨울철 기온 상승으로 평창, 정선, 영월 등 강원도 산간 지역으로까지 북상 중이다.
경북의 사과 재배면적은 1992년 3만6355㏊에서 올해 1만8895㏊로 반토막이 났다. 반면 강원도의 사과 재배면적은 지난 2007년 114㏊에서 올해 516ha로 6년만에 350%나 급증했다.
한편 전북농업기술원은 2009년 12.4도였던 전북의 평균기온이 2030년에는 13.1도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전망에 따라 전북은 현재 아보카도, 구아바 등 열대 과일류와 아스파라거스, 오크라 등 열대 채소류들을 대상으로 적응실험을 진행 중이다. 농업기술원은 평균 기온 상승에 따라 앞으로 한반도 남부지역이 아열대 작물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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