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경향 2014.05.17 >
정해진 관습과 문화 속에서 자란 우리는 살아가는 방식, 관념, 가치관에 대해 추호의 의심이 없다. 설사 그 안에 자가당착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누구나 당연한 일이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석학들에게 '한국인을 둘러싼 주요 이슈'에 대한 냉정한 시각을 빌렸다. 애정과 관심이 있어 해줄 수 있는 말,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리의 참모습.
1 애국심인가, '국뽕'인가
베르너 사세
"두유 노 강남 스타일?" 내한한 외국 스타들이라면 누구나 받는 질문 공격. 이런 모습을 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라며 비꼬아 '국뽕'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아슬아슬한 경계. 독일 출신 한국학 박사인 베르너 사세에게 물었다.
왜 우리는 '강남 스타일'에 집착했나?
지면 표기를 위해 나이를 물었더니 푸른 눈의 그는 "나는 뱀띠다"라고 대답했다. 건넨 명함에도 '사세' 이름 옆에 '思世'라는 이름의 한자 표기가 돼 있다. 베르너 사세(73) 교수는 오롯이 한국인이 되기를 자처한 사람으로 '세상을 생각한다'라는 그의 이름처럼 시류를 보는 통찰력이 남다르다. 한국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 때론 뼈저린 충고도 잊지 않는 그다.
"우리가 '강남 스타일'에 집착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한국인은 자국의 역사나 문화에 매우 불안정한 무의식을 갖고 있어요. 일제강점기 전인 19세기 말부터 외세의 간섭을 받아 위기의 시대를 보내왔으니까요. 그러니까 진정한 내 나라 문화를 즐기고 외국인에게 알릴 수 있는 시간은 길어도 두 세대밖에 되지 않아요. 그나마 첫 세대는 먹고살기에도 바쁜 실정이었고요. 그래서 한국인들은 기회만 되면 외국인들에게 '김치 좋아해요?', '유나킴 알아요?'라고 스스로를 확인하고 싶은 거죠."
그는 같은 이유로 한국인의 역사관 중 외국인이 들었을 때 과장된 표현이 종종 있다고 지적한다. 꼭 그런 표현이 아니여도 한국에는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문화가 많은데, 쉽게 말해 긁어 부스럼인 경우가 있다고.
"'반만년 역사'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요? 외국인이 들었을 때는 좀 의아한 거예요.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이면 신석기시대거든요. 한국 역사가 없던 시절이고, 단군신화는 역사가 아닌 신화예요. 그럼 언제부터가 한국의 문화와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사시대를 뺀 2천 년 전이라고 봐야겠죠."
우리 고유의 문화를 너무 강조해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사실을 회피하는 것도 올바른 역사의식은 아니다. 유럽 여러 나라의 문화는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시작됐는데 그 어떤 나라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역사적 자료를 보면 한국 문화의 뿌리는 중국 북방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몽골의 영향도 많이 받았죠. 예를 들어 '설렁탕'은 몽골에서 들어왔다는 학설이 있어요. 몽골어로 고기를 맹물에 끓이는 조리법을 'Sulen'이라고 하거든요. 갈비도 '아랫배'를 뜻하는 몽골어 'Qarbing'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고요."
몽골은 칭기즈칸 시대부터 약 1백50년 동안 아시아 전체를 지배해왔다. 한국에도 관련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한들 이상한 일이 아니다.
타 문화도 존중해야 건강한 애국!
사세 교수는 고유문화라는 것에 그리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 기원이 외국이라 할지라도 조금씩 우리 것에 맞춰 가공되면 그것은 우리 문화가 되는 것이다.
"김치는 한국의 고유문화지만 그 재료인 배추는 중국, 고추는 남아메리카에서 일본을 거쳐 여기까지 왔죠. 우리 입맛에 맞게 재료들이 섞여 김치가 된 거예요. 문화란 그런 것이죠. 일본의 '기무치'에 대해서도 '뺏겼다'라고 분노하는 한국인들이 있는데, 김치와 기무치는 발효란 개념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음식이거든요. 일본인 입맛에 맞춘 기무치는 한국에서 건너온 일본의 문화인 거죠."
문화는 교류하면 할수록 더욱 풍성해진다. 인류가 진화할 수 있었던 원인이며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세 교수는 한식 세계화에 대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한식을 세계인의 입맛에 맞춰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잖아요. 일본의 스시는 외국인이 처음 접했을 때 절대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이었어요. 그야말로 요리를 안 한 생고기 상태니까. 그러나 일본은 꾸준히 스시 그대로를 외국인에게 알렸어요. 그리고 50년 만에 세계적인 웰빙 음식으로 인정받았죠. '외국인들은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맵지 않게 만듭시다' 그건 한국 음식이 아닌 걸요."
우리 문화를 소개하려면 스스로도 그 문화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은 정작 한복을 입지 않으면서 외국인에게 아름다운 옷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모순된 행동이라고 말한다. 평소에도 한복을 입는 한복 애호가인 그는 "한국인들은 왜 한복을 입지 않냐"라고 반문한다.
"한복을 입지 않는 이유는 다들 '불편해서'라고 말해요. 전 세계를 둘러봐도 전통의상 중에 편한 옷은 없어요. 그럼 서양식 의복인 불편한 슈트는 왜 매일 입나요? 솔직히 건강에도 좋지 않은 청바지보다 한복 바지가 더 편하지 않나요?"
그는 한국 문화 중 시조에도 빠져 있다. 시조는 조용히 곱씹을수록 늘 새로운 감동이 전해져온다. 국내 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조 강의도 해왔다.
"시조에 담긴 뜻과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강의였어요. 강의가 끝나고 교수 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이 '정말 재밌었다', '시조가 좋아졌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학교에서 시조는 시험공부 중 하나일 뿐 정작 느껴볼 여유가 없었던 거죠. '한국 문화 발전을 위해 시험을 없애버려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봤죠(웃음)."
사세 교수는 한국 문화를 정부 차원에서 세계에 알리는 일보다 중요한 건 자국민이 자신들의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에 대해서 누군가는 '애국심'이라 하고. 누군가는 '국뽕'이라 치부한다. 진정한 애국심은 무엇일까?
"저는 독일인이고 독일의 깊은 철학과 문학, 음악을 사랑해요. 그렇지만 한국 문화도 좋아요.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차이는 내 나라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듯 다른 나라의 문화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와 타인의 사이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마음을 열고 먼저 손을 내미는 일. 이를 갖춘 이야말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문화 마케팅, 효과 미비하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50) 교수는 한국을 사랑하는 대표적인 지한파 미국인 인문학자다. 그는 일리노이대학교, 도쿄대학교, 조지워싱턴대학교 등 세계 명문 대학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경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 중국, 대만 등 다양한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다 결국 한국에 터를 잡은 만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특히 선비 정신이나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에 관심이 많아 2011년에는 연암 박지원의 단편소설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한국과 연을 맺게 될지 몰랐어요. 아이들이 한국 학교에 다니면서 한국 사회에 친구들이 생기고, 저도 제자들이 하나둘 늘면서 한국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사랑으로 진화했어요."
이제 그의 인생에서 한국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됐다. 그에게 '이해할 수 없는 한국'에 대해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는 어떤 상황이든 한국의 특수한 배경을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활발히 시작되고 있는 정부나 민간단체 차원의 '한국 문화 마케팅'에 대해서만큼은 회의적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반대예요. 마케팅이란 판매하는 물건에 적용되는 건데, 문화를 판매한다는 건 나름 효과는 있겠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보편적인 문화라든가 여러 인종이 모여 참여할 수 있는 문화라면 또 몰라도요."
예를 들어 1930, 40년대의 미국은 그들의 민주주의를 많은 나라에 소개했다. 그 안에는 분명 희망적이고 자유에 대한 메시지가 있었고, 당시 파시즘에 반대하는 세계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런 공동의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문화가 아닌, 한 민족의 고유문화를 광고로 알리겠다는 건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이다. 최근에 불거진 뉴욕타임스의 '불고기 광고'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릴 목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TV나 지면을 통해 정말 멋진 광고를 제작해 내보낸다고 쳐요. 하지만 그걸 보고 감명을 받아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희박할 거예요. 고가의 광고료를 생각하면 돈 낭비라고 볼 수 있죠."
적극적인 성격의 한국인들은 해외에 나가서도 자신의 문화를 외국인에게 곧잘 소개한다. 그러나 그는 자국이 느끼는 한국 문화와 세계인이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한국 문화는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문화는 다른 문화권 외국인에겐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저같이 신기한 것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 빼고는 말이죠(웃음)."
민간 교류와 맞춤형 전략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 어필할 수 있는 한국 문화와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전통 무예인 태권도는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 콘텐츠다. 이를 이용해 한국 문화에 점차 다가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통한 민간 교류는 어떨까요? 아마 '강남 스타일'보다는 한국에 대해 심도 있는 관심을 가질 기회가 될 거예요. 태권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배울 기회를 주거나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태권도'라는 호감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 내 코리아타운의 재미교포의 경우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도 중요하지만 이제 스스로 '문화 사절단'이란 인식이 필요한 때다.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데에 현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들의 역할이 가장 크다.
"제가 주미한국문화원에서 자문위원 역할을 하면서 그때 재미 교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러나 그들은 외국인에게 문화를 소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죠. 1970년대에 이민을 온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마저 있어 꽤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그저 맛있는 불고기를 먹고 채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코리아타운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또 그는 '문화적 공감'이라는 부분에서 인종별 맞춤형 문화 소개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거 한국 역사를 뒤돌아보면 차별도 많았고 어려운 시절도 많았어요. 그래서 '한'이라는 독특한 정서도 생겼고요. 그런 점은 흑인이나 히스패닉 인종들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제강점기를 부끄러운 과거로 여기고 외국인들에게 절대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런 점은 좀 아쉽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기업이란 이미지를 숨기는 S기업의 해외 마케팅도 그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 중 하나라고 한다.
"S기업은 국제무대에서 한국 기업으로 잘 인식돼 있지 않아요.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마케팅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는 점 때문이죠. 강조하는 건 그저 제품의 기능적인 부분이 전부예요."
모든 문화는 한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물량공세를 하듯 한꺼번에 전하려는 건 과유불급이다. 태권도,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한국 문화를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앞으로 한국 문화는 가능성도 있고 시장성도 크다고 생각해요. 인간과 공간의 조화로움을 꾀한 풍수지리라든지, 완벽하진 않지만 최초의 민주주의 사상이 담긴 춘추관과 「조선왕조실록」, 마을 공동체 개념인 품앗이, 두레 등 세계인이 부러워할 만한 한국 전통문화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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