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산연구소 다산포럼 797호>
완장의 나라 |
고 세 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
M이라는 미국의 정치학자가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MIT 학부(수학)를 마그나 쿰 라우데(차석)로 마치고 하버드에서 물리학석사를 한 다음 독일로 건너가 관념철학과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다시 하버드로 돌아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정착한 분야는 수학모델 그중에서도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미국의 외교정책을 전망하는 일이었다. 가히 천재급 학자인 데다 인품도 포근하고 겸손해서 대학원 시절 그의 마르크스주의 학부강의를 청강하며 다방면으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귀국 후 들은 소문에 의하면 그가 대학을 완전히 떠나 시카고 증권거래소의 브로커가 됐다는 것이다. 정치, 인공지능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인가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합리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것보다 재앙을 더 가져오는 것은 없다.” 케인스의 이 말은 인간 삶에 내재된 근본적 불확실성에 온갖 방법론적 기교와 과도한 도식론(formalism)을 차용하여 확실성의 외양을 덧씌우려는 시도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월가가 수백 명의 수학자를 동원하여 만들었다는 수많은 파생상품에 사람들이 저마다 올인했다가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았던 일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정치의 사유화, 완장의 정치 실제로 한국정치의 공적 지분은 OECD국가들에 비해 형편없이 작다. 가령 국민총생산 대비 정부예산과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모두 그 나라들 평균의 절반도 안 되며, 인구 천 명당 공무원 수도 OECD평균의 1/3을 밑돈다. 정치의 공적 책무는 홀대받고 공적 정치는 타기의 대상일망정, 총선을 앞둔 최근의 공천과정이 보여주듯이, 운동선수, 교수, 언론인, 판검사, 연예인 등 웬만한 유명인이면 누구나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리하여 보통사람도 낯 뜨거울 수준의 후흑한(厚黑漢)들이 정계에 두루 포진해 있다한들 놀랄 일이 아니거니와, 한국정치의 몰골이 그래서 선연하다. |
글쓴이 /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 저서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한길사, 2012) 〈영국정치와 국가복지〉 (집문당, 2011) 〈복지국가의 이해:이론과 사례〉(고려대 출판, 2000) 〈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 (후마니타스, 2009) 〈국가와 복지〉 (아연출판사, 2003) 〈영국노동당사〉 (나남, 1999) · 역서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2015) 〈존 메이너드 케인스〉 (2009) 〈페이비언 사회주의〉 (2006) |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어떤 소설 (0) | 2016.05.17 |
---|---|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 놓고 진통 (0) | 2016.04.12 |
계속되는 백년전쟁 (0) | 2015.05.29 |
'복고열풍'…한국인 왜 뒤돌아보는가 (0) | 2015.02.27 |
'시간 빈곤' 대한민국 (0) | 2015.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