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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다

세상보기---------/조리혹은부조리

by 자청비 2017. 1. 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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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시대의 거울..혐오 신조어보다 '진짜 헬조선'이 더 문제다


세계일보 2017.01.10

특정 연령대나 성별을 싸잡아 비난하는 신조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특히 타인을 차별·비난하는 혐오 신조어가 최근 3년 사이 6배 가량 늘었는데요. 보통 언어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신조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이같은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혐오 신조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일상적인 표현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신조어가 혐오 용어의 온상기는 하지만, 우리말 표현의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타인을 지나치게 공격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단어는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살기 어려운 한국 사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단어인 '헬조선', 여성혐오 현상을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의 '여혐혐', 조기퇴직을 한 뒤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세대를 말하는 '반퇴세대'… 최근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 신조어다.

언어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신조어는 현재 한국 사회에 어떤 갈등이 불거지고 구성원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염동열 새누리당 의원이 국립국어원에서 받은 '2015년 신어조사' 결과를 보면, 먼저 갈수록 살기 팍팍해지는 세태를 표현한 낱말들이 눈에 띈다.

이제 '헬조선'은 20~30대 청년층 사이에서 '대한민국'보다 더 흔하게 불린다. 비슷한 말로 '지옥불 반도'가 있다. 청년들이 자괴감과 열등감을 표현할 때는 '센송'이라는 말을 쓴다. '조선인'의 일본식 발음인 '조센징'과 '죄송'이 결합한 단어다.

회사를 조기에 퇴직한 뒤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세대를 뜻하는 '반퇴세대'도 등장했다. 평균 수명은 늘고 은퇴 시기는 앞당겨져 재취업이나 창업을 해야 하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반퇴자산'은 반퇴 시대를 사는 데 필요한 자산이다.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기간은 빙하의 깊은 균열에 빗대 '퇴직 크레바스'라고 부른다.

'쉼포족'은 휴식을 포기할 정도로 바쁘고 고달픈 삶을 사는 현대인을 가리킨다.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으로 휴가철에도 마음 놓고 쉴 수 없는 직장인들은 회사로 '출근 휴가'를 가기도 한다.

◆신조어를 보면 그 사회에서 어떤 갈등이 불거지는지 알 수 있어

청년층의 고달픈 현실을 반영한 낱말도 대거 생겨났다. 취업을 위한 영어 공부에 과다한 교육비를 지출해 가난해진 '잉글리시 푸어'가 양산됐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더 어려운 인문계 출신들은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며 인문학이 아닌 '잉문학'을 공부했다고 자조한다. 취업시장에서는 최약자인 지방대 출신 여자 인문대생인 '지여인'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다.

갈수록 불붙는 여성혐오·남성혐오 논쟁은 급기야 여혐(여성혐오) 현상을 싫어한다는 뜻의 '여혐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상대 여성에게 이것저것 시시콜콜 설명하면서 잘난 체하는 남성은 '맨스플레인'(맨+익스플레인)이라는 비아냥을, 다른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여성은 '걸크러시'로 흠모를 각각 받는다. 일부 여자 연예인은 여성팬을 몰고 다니는 '여덕(여자덕후)몰이'를 한다.

외로운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솔리타리우스'는 1인 가족이 대세인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인간형이다. 혼자서 식사하는 '혼밥남'에 더해 음식을 직접 해서 먹는 '해먹남', 그 과정을 방송으로 보여주는 '해먹방'도 등장했다.

근거 없이 멋대로 추측·판단하는 사람은 '궁예질'을 한다고 비판받는다. 관심법을 쓴다고 주장한 후고구려 건국자 궁예에 빗댄 말이다. 벌레를 뜻하는 '충'에 빗대 혐오감을 드러내는 신조어도 양산되고 있다. 매사 진지한 '진지충', 알 만한 얘기를 지루하고 장황하게 하는 '설명충'도 환영받지 못한다. 남에게 피해나 혐오감을 주는 커플은 바퀴벌레에 비유해 '커퀴'라고 부른다.

다소 과격하지만 '∼충'과 함께 접두어 '개∼'도 다양한 낱말을 만든다. 아주 큰 이익은 '개이득', 재미가 없으면 '개노잼', 해결 방법이 없으면 '개노답'이 각각 쓰인다. 못된 성인 남자는 '개저씨'를 벗어나지 못한다. '개∼' 대신 '핵∼'을 집어넣어도 뜻은 거의 같다. 

◆"혐오 신조어 비판만 해선 안돼"


신조어를 만드는 방식을 보면 △낄끼빠빠(낄 때는 끼고 빠질 때는 빠져야 함)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기) △세젤귀(세상에서 제일 귀여움) △얼빠몸빠(얼굴에 빠지고 몸매에 빠짐)처럼 줄인 말이 여전히 인기다. '케바케'(케이스바이케이스·경우에 따라 다름)의 변형인 '사바사'는 '사람바이사람'을 줄인 말로, 사람에 따라 생각이나 행동이 다를 수 있음을 뜻한다.

여러 언어가 혼합된 신어도 있다. 외모나 능력 따위가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낫닝겐'은 영어 'not'과 인간이라는 뜻의 일본어 '닝겐'을 합친 말이다. 인간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말이다. '딥빡'(매우 성이 나서 화가 남)도 고유어 '박'(머리통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변형인 '빡' 앞에 영어 'deep'을 붙여 뜻을 강조했다.

국립국어원은 해마다 매체에 새롭게 등장해 빈번하게 사용되는 낱말을 조사한다. 최근 개통한 개방형 국어사전 '우리말샘'도 조사에 활용된다. 2015년에 수집된 신어는 277개였다. 장기간 쓰이면 검토를 거쳐 표준어로 등록되기도 하지만, 얼마 못 가 자취를 감추는 신어가 더 많다.

국립국어원은 한때 신어 조사 결과를 일반 국민에게 발표했지만 앞으로는 연구용으로만 활용하기로 했다. 정제되지 않은 낱말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다. 국립국어원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하·차별하는 신어가 생겨나기도 한다면서도 세태를 반영한 자생적인 말일뿐 표준어로 인정하거나 사용을 권장하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현주의 일상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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