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 12시 50분 만 20년동안 나와 내 가족의 꿈과 사랑, 기쁨과 슬픔을 실어나르던 애마와 마침내 작별을 고했다. 20년지기를 떠나보내는데 어찌 감정이 없겠는가. 비록 말못하는 한낱 기계에 불과하지만 나와 내 가족의 두 발이 되면서 사랑과 갈등, 기쁨과 슬픔을 모두 실어나르던 애마였다. 어떤 사람들은 3~5년에 한번씩 바꿔줘야 한다며 쉽게 갈아타곤 하지만 나는 그럴 능력도 안될 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원체 성격이 내 손에 들어온 물건들은 소용이 다 될 때까지 아끼며 소중하게 쓰는지라 애마는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20년동안 큰 사고없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지켜주고 벗이 되어준데 대해 고맙게 여길 뿐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97년 2월쯤이었다. 각지지 않은 둥그스런 외모와 번쩍번쩍 빛나는 외양이 마음에 쏙 들었다. 세일즈맨에게 간단한 설명과 인수서에 서명을 하고 키를 건네 받았다. 마침내 나의 신형 애마가 생긴 것이다. 차를 운행한 이후 세번째 차였지만 출고차는 처음이었다. 문을 열었다. 새 차 특유의 냄새에 코에 확 와닿았다. 시트에 앉아 키를 꽂고 부드럽게 돌렸다. 딸깍하고 넘어가더니 부릉하면서 시동이 걸린다. 창문을 살짝 열어주고 서서히 출발했다.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너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20년동안 큰 사고 한번없이 우리 가족의 꿈을 실어 날랐다. 그리고 너를 만날때 6살쯤이었던 아들녀석이 다 늙어버린 너와 함께 도서관을 오가며 1년여를 보내기도 했다. 아들은 다행히 약학대학 편입시험에 합격해 제주를 떠나게 되었다. 한동안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애마를 이용하려고 며칠전 시동을 걸었으나 걸리지 않았다. 그 이전부터 몇 차례 운행하면서 이상한 조짐을 느끼긴 했다. 아마 배터리가 문제인 듯 했지만 굳이 정비공장에 맡기지 않고 주차장에 세워뒀던 터였다. 아들이 제주를 떠나게 된 때부터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시동조차 걸리지 않는 애마는 산소호흡기를 통해 간신히 연명하는 뇌사 상태의 환자인 셈이다. 더 이상 연명치료 없이 편안히 보내는 일만 남았다. 지인을 통해 장의사를 불렀다. 애마를 보내면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뒀다. 보내는 시간은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애마를 세웠덨던 자리가 휑뎅그레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곧바로 사무실로 뛰어가 일상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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