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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공과 제학공

한라의메아리-----/오늘나의하루

by 자청비 2019. 11. 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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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산48-1 <녹양중학교 건너편 산중턱에 제학공 묘에 헛묘와 함께 추모비가 세워져 있음>


판도공 문충공 추모비

판도판서版圖判書 문충공文忠公의 휘諱는 승례承禮요, 자字는 문중文中이요 시諡는 문충文忠이시니 영평균鈴平君 위척諱陟의 다섯째로 성(成)은 윤(尹)이요 관(貫)은 파평(坡平)이다. 시조(始祖)의 휘諱는 신달莘達이요 시諡는 소양(昭襄)이시니 고려통합삼한벽상공신高麗統合三韓壁上功臣으로 관官은 태사(太師)이시니다. 오세(五世)에 이르러 휘(諱)는 관(瓘)이요 시(諡)는 문숙(文肅)이시니 여진(女眞)을 정벌(征伐)하여 두만강(豆滿江)건너 칠백리를 拓地(탁지)하고 선춘령(先春嶺)에 고려정계비(高麗定界碑)를 세우니 그 위업(偉業)이 청사에 빛나고 관(官)이 수태보문하시중(守太保門下侍中)이시니 공公의 9대조이시다.

공(公)의 천성이 온후침정(溫厚沈靜)하고 자유호학(自幼好學)하여 지대재고志大才高하셨다. 자라서는 麗朝에 벼슬하여 좌왕치국佐王治國하니 관(官)이 봉익대부판도판서奉翊大夫版圖判書이시다. 公께서 추효이제推孝而悌하고 추제이목推悌而睦하며 무편정대無偏正大하시니 조야朝野가 막불경탄莫不敬憚하였다. 여몰麗沒에 이조李朝의 뉴소累召에도 불응不應하시고 은거향사隱居鄕舍하여 길야은吉冶隱 서장령徐掌令 등等 여러 충신忠臣과 함께 청고淸高한 생활과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여생餘生을 보내셨으니 그 숭고崇高한 인품人品과 덕망德望을 세인世人이 경모敬慕하였다.

공公은 역도逆徒 신돈辛旽 등等을 제거除去하여 고려사직高麗社稷을 지키려다가 적거謫居한 忠簡公 휘 承順의 제弟로 그 형兄님과 함께 일을 도모圖謀하셨으니 공公의 충의忠義는 이로써 더욱 빛났다. 광묘조光廟朝에 이르러 순충보조공신純忠輔祚功臣과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셨다. 묘墓는 장단군장북면작목리長湍郡長北面作木里 문현공文顯公 휘諱 보珤의 묘좌측墓左側 갑좌동원甲坐同原이다.

배配는 경안택주慶安宅主 창녕성씨昌寧成氏요, 후배后配는 정경택주貞慶宅主 안동권씨安東權氏이시다. 생사남生四男하시니 장남長男의 휘諱는 규珪니 대제학大提學이요 이남二南의 휘諱는 진료晋老니 인수부윤仁壽府尹이요 삼남三男의 휘諱는 전琠이니 祭酒요 사남四南의 휘諱는 번璠이니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요 시諡는 정정貞靖이시니 세조대왕비世祖大王妃 정희왕후貞熹王侯를 탄생하셨다. 희噫라 忠縣麗朝하고 명진천추名振千秋하신 공公의 묘墓를 수호守護함은 인륜人倫의 정도正道요 후손後孫의 도리道理어늘 국토國土가 양단兩斷되어 봉심奉審할 수가 없으며 또한 유문구적遺文舊蹟이 모두 병화兵火에 소실燒失되어 역관진말歷官顚末과 가의사행嘉懿事行을 선양宣揚치 못하니 그 단장斷腸의 한限을 不可勝記로다.

이에 공公의 충절忠節을 길이 자손만대子孫萬代에 전하고자 보첩譜牒 명록名錄 등等 문헌文獻에서 사적事蹟을 대략大略 추려 비碑를 세우니 부디 선조先祖의 유덕遺德과 충의忠義를 銘心명심하여 永久히 그 추모追慕의 정성精誠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



 

 

 

 


제학공 尹 珪 파평윤씨 15세손

제학공묘봉심공적비 뒷면 내용

곳을 찾아 해매시기를 그 몇차례라 하였던가 마침 달밤 우물가에서 물긷는 노파를 만나 묘소 위치를 캐어 물으며 주저하던 노파에게 후한 보상과 신상의 안전을 약속한 뒤에야 자세히 알아낼 수 있었다. 다음날 그 곳에서 땅에 묻힌 方形護石墓(방형호석묘)와 文官石(문관석) 한쌍 그리고 비문도 읽어볼 수 있는 花冠表石(화관표석)까지 발견하였으니 이곳이 提學公께서 묻히신 묘임이 분명하다. 이 일이 天佑神助와 조상의 陰德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하겠는가. 아아 어찌 參議公께서 이 기쁨을 억누를 수 있었으랴, 提學公 후손들에게 이 소식을 널리 전하고 다시 없는 이 기쁨을 서로 나누면서 앞일을 의논하니 너나없이 내놓은 財物을 모아 封墳을 다시 쌓아 莎草(사초)도 하고 階砌石(계체석)까지 늘어앉히며 땅에 묻혔던 碑石과 文官石을 다시 세우니 墓所의 규모도 훌륭하다. 또 다시 田畓을 마련하여 해마다 墓祀(묘사)를 올려 追慕할 수 있게 하였으며 이 토지의 관리를 驪州門中이 主管하여 다시는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하기에 정성을 다하셨다. 參議公께서 바치신 거룩한 정성이 없었던들 提學公 墓所는 영원히 失傳되고 말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提學公 後孫들이시어, 잃었던 先祖墓를 찾기 위하여 바치신 큰 功德을 영원히 잊지말고 가슴깊이 새겨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번 失墓하면 다시 찾기 어려운 일이므로 묘소 앞뜰에 香내음 讀祝소리 퍼져 흐르게 하고 守護 또한 영원토록 변함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서로 다짐하면서 提學公事蹟과 尋墓略記(심묘약기) 등의 문헌에 의거하여 이 글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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