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흔히 몸에 좋다고만 알고 있는 ‘비타민’을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잇따라 나오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병원 연구팀은 학술적 가치가 높은 기존 논문들을 분석한 결과, 비타민의 수명 연장 효과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세계적 권위를 지닌 의학저널인 <미의학협회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오히려 비타민 A, 비타민 E, 베타카로틴 등이 포함된 종합비타민제를 먹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도가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바다 건너 미국에선 종합비타민제를 과다하게 먹은 남성들은 전립선암 위험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문의들은 “‘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말처럼, 종합비타민제를 너무 믿어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은 삼가야 한다”며 “특히 물에 녹지 않는 지용성 비타민제는 되도록 피하고, 평소 먹는 음식에서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비타민’의 역습? = 비타민은 세포의 정상적인 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다. 그동안 많이 먹으면 여러 생활습관병, 암 등을 예방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건강을 다루는 일부 대중매체들도 건강한 생활을 위해선 여러 종합비타민제를 챙겨 먹을 것을 권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논문 68건과 이들 논문에서 다룬 연구조사대상 인원 23만2606명의 자료를 코펜하겐병원 연구팀이 다시 분석한 결과, 비타민의 수명 연장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비타민 A·E,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제 비타민제 등의 효과를 연구한 논문 47건(조사대상 인원 18만938명)을 분석했더니, 이들 비타민이 사망 위험을 되레 높인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들 비타민제를 모두 먹은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도가 5% 높아졌고, 비타민 A만 먹은 경우에도 사망 위험도는 16%, 베타카로틴은 7%, 비타민 E는 4%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를 두고 코펜하겐병원 연구팀은 “충격적”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미국에서는 종합비타민제를 너무 많이 먹으면 전립선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남성 29만5344명을 대상으로 5년 동안 진행한 연구에서는, 물에 녹지 않는 지용성 비타민류를 포함해 일주일에 7개 이상의 종합비타민제를 먹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전립선암 발병 위험률이 30% 높아지는 것으로 나왔다. 한국의 경우 미국처럼 전립선암 발병이 많지는 않지만, 근래 발병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연구 결과다.
염창환(관동대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대한비타민연구회장은 “비타민 A·E, 베타카로틴 등 물에 녹지 않는 비타민제를 과다하게 먹으면 간 독성, 출혈 등 여러 부작용이 있다는 것은 기존에도 알려져 있었다”며 “이들 비타민류는 비타민 C 등 수용성(물에 녹는) 비타민과는 달리 몸에 3달 가량 남아 있는다”고 설명했다. 염 교수는 “그 때문에 적은 양이라도 오래 먹으면 독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노인이나 알코올 중독,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들은 종합비타민제 복용보다는 음식으로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비타민 부작용들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적당량의 비타민이 몸에 이로운 구실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다 복용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독성을 부른다”고 설명했다.
비타민 A의 과다복용은 피부나 입술이 거칠거나 갈라지게 하고, 임신부에게는 기형아 출산 가능성을 높인다. 비타민 D를 복용하고 있는데, 식욕이 떨어진다거나, 오심, 구토 등이 나타난다면 독성을 의심해봐야 한다.
비타민 B군의 독성은 화끈거림, 가려움증, 손발 저림, 감각의 이상 등으로 다양하다. 비타민 C도 하루 1g 이상의 많은 량을 먹으면 설사나 복통 등이 흔히 나타나고, 일부에서는 신장결석이나 부정맥이 생길 수도 있다. 비타민 E의 경우 과다복용 때는 출혈의 부작용이 있어 수술을 앞둔 경우에는 제한해야 한다.
조 교수는 “과거보다 과일, 야채를 많이 먹는 현대인에게 비타민 부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음식을 통해 꼭 섭취해야 하는 비타민 종류는 A, D, B1, B2, C, 나이아신 등이다”고 말했다.
비타민은 = 몸에 적은 양으로 존재하지만 정상적인 세포 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다. 대부분은 몸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아 음식 등으로 섭취해야 한다. 물에 녹는 수용성인 C, B(1, 2, 3, 5, 6, 12), 엽산, 비오틴 등과 물에 녹지 않는 A, D, E, K 등이 있다. 비타민 C, E, 베타카로틴은 항산화 작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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