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보다는 덜할지 모르지만 신문과 방송언어가 규범에서 벗어나거나 표준어가 아니면 엄청난 괄시를 받는다. '나래'는 '날개'에, '내음'은 '냄새'에, '뻘'은 '펄'에, '이쁘다'는 '예쁘다'에 차인다. '등굣길, 하굣길, 장밋빛, 날갯짓, 만둣국, 북엇국' 등은 형태가 주는 거부감 내지 이질감이 있지만 선택된다. 단지 현행 규범에 맞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신문 방송이 지향하는 언어는 쉬우면서도 전달력 있고 격조가 있는 것이다. 이 기준을 쉽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 표준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다 보니 말도 그렇게 됐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표준어는 고급한 것이다. 이 기준을 쉽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 표준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다 보니 말도 그렇게 됐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표준어는 고급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리게 됐다. 반대로 나머지는 저급한 말이라는 것을 은연중 심어주었다. 신문 방송 언어도 이 틀의 구조 속에 지배돼 왔다.
한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현재의 표준어 규정은 언어는 변한다는 언어의 역사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부시시'가 아니고 '부스스', '어리숙하다'가 아니고 '어수룩하다'라고 해야 한다. '잇따라 자꾸'라는 뜻을 가진 '연신'은 '연방의 잘못. 북한어'라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규범과 현실이 다르다. 신문과 방송은 비표준어를 꺼리게 되고 사용을 금기시하게 된다. 이외에도 현실과 거리를 둔 표준어는 여럿 있다. '수군거리다'(수근거리다) '수놈'(숫놈) '수소'(숫소) '으스대다'(으시대다) '~기에'(~길래) ….
신문과 방송이 현재의 사회를 반영한다면 그 수단인 언어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너무 지나치게 규정에 얽매여 어색함을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다. 규범이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을 장려하기보다는 규제한다. 규범을 지켜서 나오는 억지스러움 보다는 발랄한 자연스러움이 좋다. 무리한 말과 글의 현 규범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되돌아봐야 할 듯 싶다. 표준어라는 기준을 정한 것은 결국 생각을 보다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하려는데 있다. 언어는 현실이라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이러한 것들이 애초 신문방송언어가 추구하려는 것에 어울리지 않을까.
알게 모르게 규범을 벗어나 쓰는 예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고 질서를 깨뜨리지는 않는다. '보릿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 대부분 사전은 '사잇길'을 '샛길'의 잘못이라고 규정했다. 쓰지 말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사잇길'은 신문 방송에서 별다른 제지없이 쓰인다. 표준어라는 반열에 오르지도 못했으면서 넉살 좋게 산다. '먹거리'도 '먹을거리'와는 조금 다른 자리에서, 때로는 같은 자리에서 쓰인다.
순화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다듬어져 온 말들은 대부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표준어라는 테두리에서 보호를 받는데도 외면당했다. 다소 무리가 있어도 "표준어야"라는 말에는 바로 꼬리를 내리는 것이 어느 정도의 현실인데도 신문 방송 언어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뮬레이터→모의실험기' '사이드 패스→옆으로 주기' '애프터서비스→사후봉사' '조깅→건강달리기' '안테나숍→시험직영점' …. 분별없이 외래어를 선호하는 기울어진 의식 탓도 있지만 다듬은 말들이 현실과 거리가 먼 이유가 더 컸다.
이렇듯 규정에 어긋난 말들을 쓰기도 하고 현실에 따른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일부 무리해 보이는 규범에 집착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언어 규범은 당연히 존중돼어야 한다. 사전은 이를 지켜줘야 한다. 신문과 방송은 이들을 잘 활용하고 나아가 규범이 끌어안을 수 있는 범위를 더 넓혀 줘야 하지 않을까.
<이경우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말과글 200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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