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전쟁사(戰爭史)라는 말이 있습니다. 뺏고 빼앗기고 방어하고 피 흘리면서, 인류는 발전해 왔다고요.
중국이나 인도, 페르시아 등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역사를 봐도,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친 유럽 역사를 봐도 전쟁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한 켠에서는 숱한 전쟁이 이어지고 있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전쟁 없는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전쟁은 우리 인간의 본성에 들어 있는 듯하다고요!
이렇듯, 전쟁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목숨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가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국제분쟁전문가 김재명 기자인데요.
세계 여러 분쟁지역을 취재하면서 보고 느낀, 전쟁의 참담한 모습…그 갈등과 폭력의 현장 속에서의 고민들… 국제정치학 박사이자 분쟁전문 기자인 김재명 씨 모시고 7월 27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지뢰 하나 심는데 1달러, 제거는 몇 배가 들어
▶ 전쟁터를 찾아 다니려면 체력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말 가슴이 아팠거나 속상하신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이스라엘에 40년 동안 점령을 당한 팔레스타인을 여러 군데 다니면서, 억압 받는 현지 사람들의 좌절, 분노를 이해할 수 있는 현장들을 여럿 봤어요. 팔레스타인 북부에 제닌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의 한 동네를 가니까 완전히 이스라엘의 중장비, 불도저에 의해서 한 마을이 초토화가 되어 있었어요.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이스라엘군 탱크가 그 마을의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과 교전을 벌이다가 길거리에 심어놓은 대전차 지뢰를 탱크가 건드리는 바람에 이스라엘 병사 5명이 죽었다고 해요. 그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을 깔아뭉개서 그라운드 제로를 만들어버렸어요.
우리는 일제시대 때 선조들이 당했던 여러 고통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진기를 들이대는 게 미안할 때도 있어요. 그때 일본 사진기자하고 같이 갔는데 냉정하게 사진을 찍더라고요. 그 일본인한테 ‘당신은 낮에 보니까 상당히 쿨하더라. 내가 개인적으로 성향이 다른 건가? 좋게 말하면 감정이 풍부하고 나쁘게 말하면 정서가 불안한 스타일인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은 굉장히 냉정하고 차분한 스타일인 것 같다’고 했더니, 자기도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화도 내고 슬픈 일을 보면 눈물도 흘린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그럼 낮에 어땠냐고 물으니까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찍는다’고 말해요. 그래서 우리 둘이 역사적으로 억압당했던 민족과 아닌 민족간의 차이가 아닐까 애매한 결론을 낸 적이 있어요.
▶ 독일의 나치에게 학살을 당했던 경험이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왜 그런 일을 하는 걸까요?
팔레스타인의 지식인들이든 거리의 사람들이든 흔히 하는 말들이 이스라엘이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 무엇인가?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교훈을 배운다는 거죠. 나치의 학살로 600만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을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거기서 배운 것은 나치로부터 나쁜 것만 배우고 교훈을 배우지 않았다는 거예요. 나쁜 것이라는 것은 문화와 언어와 정서, 종교가 다른 타 민족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을 배웠다는 거죠. 민족끼리 공존하며 작은 지역에서 어울려 사는 조화로운 다민족 사회를 이루는 지혜를 배운 것이 아니라, 내 민족만 살겠다고 타민족을 누르는 민족이기주의를 나치한테 배운 겁니다.팔레스타인 지식인은 나름대로 정리된 말을 하고 보통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대로 이야기를 하지만, 제가 나름대로 정리한 바로는 나치는 이스라엘에게 교훈을 주지 못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치의 만행으로부터 교훈을 받지 않았다는 거죠.
이스라엘에도 평화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역사적으로 한 뿌리다, 지금은 말도 다르고 정서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지만 한쪽은 억압자, 다른 한쪽은 피억업자로 언제까지 해결 없는 싸움을 할 것인가? 이럴 게 아니라 서로 평화와 공존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스라엘의 평화주의자들이 합니다.그래서 이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평화주의자들, 팔레스타인에도 총을 잡고 싸우겠다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쪽에 인정해 줄 것은 인정해 주면서 우리도 같이 공존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둘이 같이 공동으로 평화모임도 갖고 평화적인 시위를 하곤 하죠. 그런데 그럴 때 지나가는 사람들 중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수의 평화주의자들을 향해서 침을 뱉습니다. 배신자라고 그러고요. 상황이 좋을 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유혈 전쟁이 잠잠할 때는 거부반응이 적지만 한쪽에서 자살폭탄테러 등이 일어날 때는 소수의 평화주의자들이 설 자리가 아무래도 좁겠죠.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한국도 ‘피의 억압’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안중근, 윤봉길 같은 의사들이 나왔어요. 팔레스타인의 큰 저항세력의 줄기가 하마스와 파타인데 그쪽 사람들이 주장하는 저항의 명분이나 논리가 그 반대편 이스라엘에서 보면 테러의 논리죠. 그런데 사회과학적으로 테러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을 때,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사람들이 다 존경하는 선각자이자 훌륭한 지도자였죠. 그래서 우리는 안중근 의사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영어로 하면 코리안 테러리스트겠죠. 따라서 테러리스트의 개념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겁니다. A국의 테러리스트는 B국의 자유전사이고 애국자다, 이런 부분을 이스라엘 사람들도 지식인들은 인정을 합니다.왜냐하면 이스라엘 건국의 지도자들도 과거에 영국 사령부에 대해서 테러도 많이 하고 테러를 전술적인 개념으로 썼으니까요.제가 안타까운 것은 언론이 외신부나 국제부라는 이름으로 방송이나 신문에서,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생각 없이 쓰는 테러의 개념을 그대로 써서 ‘이라크 테러분자들이 미군을 공격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라크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반미 저항세력, 레지스탕스라는 개념으로 써야지 저항세력을 무조건 테러리스트라고 도매급으로 넘기는 것은 우리가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도 피억압의 역사적인 경험이 있으니까요.
◇ 강간도 조직적인 전술로 이용될 수 있어
▶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조직적인 강간이 이루어졌다고 하던데요.
조직적인 강간전술입니다. 어떤 한 마을의 사람들을 쫓아내서 인종청소를 하자면 총으로 다 쏴 죽일 수는 없으니까, 마을의 집에 들어가서 부녀자들을 성폭행 하는 거죠. 그러면 보스니아의 경우에는 서로 간에, 교전상대국 간에, 상대 집단 간에, 그러니까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인 무슬림계가 서로 성폭행범죄를 저질렀는데 더 많이 저지른 쪽은 세르비아 쪽이죠.세르비아 쪽에서 무슬림 여성들을 강간하고 임신시키고 그럴 경우에, 종교를 따질 것도 없이 여자가 성폭행을 당할 경우에는 수치심을 느끼잖아요. 또 그 집안에서는 가문의 불명예로 여기고 따라서 그 동네를 떠나게 되죠. 그런 소문들이 퍼지게 되고.이것이 정확하게 테러죠.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끼게 해서 스스로 저항을 멈추고 도망치도록 하는 것이 테러 아니겠어요? 그래서 보스니아에서는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성폭행 전술의 피해자가 되었죠.
보스니아 내전은 1990년대 전반기에 3년 8개월 동안 벌어진 유혈투쟁인데, 그런 똑같은 양상이 1999년에 코소보에 가니까 똑같은 벌어졌어요. 코소보 인구의 90%가 알바니아계 사람들 즉 무슬림이고, 10%가 세르비아계에요. 그런데 10%가 90%를 지배하는 겁니다. 종주국이 전 유고연방의 정치 중심인 벨그라드인데 세르비아계가 장악을 하고 있는 거죠. 코소보 인구가 한 200만 명 정도 되는데, 그 중의 90%인 알바니아인 무슬림들이 자치를 요구하니까 그걸 저지하는 과정에서 유혈투쟁이 벌어지고 결국 1만 명이 죽었어요.저는 나토의 공습이 78일 동안 있고 나서 나토군이 들어갈 때 나토군 탱크와 함께 코소보에 들어가서 보니까 현장이 그렇더라고요. 여성들이 강간이나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등은 숨기잖아요. 그걸 유엔에서 NGO 여성단체들이 사람들의 심리치료나 카운슬링을 하면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들을 전해 들었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극악한 범죄들 가운데 여성들만이 당할 수 있는 범죄가 성폭력 범죄 아니겠어요. 그런 것들이 하나의 전술로서 이용되는 거죠.
▶ 그러면 강간이나 성폭행으로 인해서 생기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요?
보스니아 내전 같은 경우에는 많은 여성들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요. 그런 경우에는 본인이 키우기도 하고 입양도 보내요. 어차피 태어난 목숨이니까요. 제가 본 다큐멘터리에 나온 여성 한 분은 아이를 키우더라고요. 그 과정을 증언하는데 마음이 아팠어요.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여성은 피해자이고 폭력을 가하는 군인은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데, 전쟁의 큰 틀에서 보면 그런 가해자인 병사도 희생자입니다. 요즘 현대 전쟁은 얼굴을 서로 보고 하는 전쟁이 아니잖아요. 전쟁에 동원되는 병사는 적개심에 불타서 혹은 내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직업적으로 혹은 의무감으로 전선에 배치된 젊은이일 뿐입니다.그런 젊은이들이 큰 전쟁을 한 번 치르고 나면 정신질환도 앓게 됩니다.
◇ 납치, 마약, 손목절단... 세심한 치유과정 필요해…
▶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내전도 직접 취재하셨는데, 소년병을 만나보신 적도 있으신가요?
그 소년병도 희생양이죠. 처음에는 평범한 소년이었다가 반군에 7,8살에 납치되어서 군사훈련도 받고 여자어린아이는 허드렛일도 하고 밤에는 성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요. 전쟁을 할 때는 마약을 먹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하는 겁니다. 거기는 마약이 흔하더라고요.반군들 쪽에 취재를 갔을 때도 반군이나 아이들도 마약을 조금씩 갖고 있어요. 반군들은 전략적으로 아이들을 이용해요. 납치된 아이들을 세뇌시켜서 자기 살던 마을을 공격하도록 만들어요. 그러면 그런 아이를 본 부모나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서 그 아이가 마을로 갈 수 없도록 만드는 거죠.
▶ 그 아이들은 자신이 그런 끔찍한 일들을 하는지 모르는 건가요?
알지요. 알지만 당시에는 그 끔찍한 일을 저질러요. 나중에는 그 기억이 강한 내성으로 머릿속에 남게 되죠. 세심한 치유과정이 필요합니다.
▶ 전쟁이 끝나도 고향으로 못 돌아간다면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가나요?
제가 시에라리온에 갔을 때는 전 반란군 출신의 소년병들이 고아원 같은 곳에 모여 있었어요. 그 아이들을 보살피는 이탈리아 출신의 신부님이 아프리카 선교만 30년을 하셨는데, 그분 말씀이 아이들은 아이들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전쟁의 상처를 금방 잊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체계적인 카운슬링을 통해서 나름대로 정서를 어루만져주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제가 갔을 때도 한쪽 구석에 머리를 수그리고 앉아있는 몇 명의 아이들을 봤어요. 신부님 말씀이 저런 아이들이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하시더군요.
▶ 손목은 왜 절단하는 겁니까?
반군들이 정부를 지지하도록 투표한 손을 자르겠다는 거죠. 손이 없으면 투표도 못할 것이다, 굉장히 무지막지한 발상이죠. 제가 가서 놀란 것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손목을 잘린 사람들이 정확한 집계로서는 3천 명인데,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내전기간 동안에 손목을 자르나? 누가 이런 전술을 심었나 했더니, 원래는 시에라리온도 피해자였던 거예요. 벨기에가 2차 세계대전 전에 콩고를 지배했는데, 1960년에 독립을 했거든요. 콩고나 벨기에 이런 조그만 나라가 아프리카 식민지를 많이 갖고 있었어요. 그 작은 나라가 거대한 식민지를 유지, 관리하려니까 공포전술을 편 거예요. 벨기에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콩고무장 세력들을 잡으면 손목을 잘랐답니다. 성기도 자르고요. 그러니까 식민지적인 유산인 거죠.
◇ 전쟁은 집단 이기의 충돌에서 빚어져
▶ 전쟁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아까도 잠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전쟁지역을 많이 다니면 인간에 대한 환멸 같은 걸 느끼실 것 같아요.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현대전쟁의 이해, 국제질서의 이해, 국제분쟁 내전 따라잡기 등을 강의해요. 주로 유혈투쟁과 전쟁, 국제분쟁, 내전 등의 용어가 많이 나오는 과목들을 강의 하면서 제가 질문을 던져요. 우리 인간이 왜 전쟁을 하는가, 교재나 참고서를 보지 말고 생각해 보자. 인간이 악해서 전쟁을 하는가, 무자비해서 전쟁을 하는가, 인간의 품성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이럴 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의 본성이 전쟁을 하기에 적합한 공격적인 심성이기 때문에 인간의 탐욕 때문에 전쟁을 하지 않느냐, 이런 얘기들을 학생들이 하죠. 수업에 자주 빠지고 학기말 시험에 전쟁을 왜 하느냐고 쓰라고 하면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 장황하게 씁니다. 그것은 전쟁의 극히 일부 요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쟁의 연구자들, 국제정치학자들의 일반적인 결론이죠. 그 결론을 잠시 옮긴다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공격적인 본성은 아주 소수의 이유일 따름입니다.
전쟁을 하는 것은 결국, 특히 현대전쟁에서는 국가, 민족 이런 큰 정치적인 집단과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해서 빚어지는 것입니다.따라서 특정 개인 즉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처럼 정치 지도자의 공격적인 성향이 전쟁의 원인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게 전쟁의 전부는 아닙니다. 독일이라는 국가가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당시 그 뒤의 상황, 일본 제국주의라는 이름 아래 일어난 일본의 침략적인 구조, 그것이 전쟁을 일으킨 주요원인이지, 일본 개개인이 모두 전쟁광이라거나 나치가 다 전쟁광이라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맞을 수 있지만 정확한 진단은 아닙니다.
▶ 생명의 위협을 느끼신 적은 없으셨어요?
몇 번 있었는데 제가 전선에서 대포와 미사일이 오가는 대치국면에서 위험을 느낀 것은 아니고, 분쟁지역이라는 것이 지뢰밭을 걸어가듯 도처에 위험요소들이 상존해 있죠. 이라크 같은 경우는 차량폭탄 테러라는 불특정다수를 노린 위험도 있고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이스라엘군 검문소의 초병들, 군기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일부 군사들이 함부로 총을 쏘기도 하고요. 매우 분개했던 게 물론 위협사격이기는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총격으로 위협을 당한 적이 2번 있었어요.지중해 해변을 보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는 세계최대의 감옥입니다. 이스라엘이 둘러싸서 130만 명의 인구가 오밀조밀하게 살고 있는 지역인데, 거기를 이스라엘군이 반납하기 전에 그 곳에서 총격 위협을 당했습니다. 2002년, 2004년 두 번을 겪은 일이에요.가자지구 중부에 ‘칸 유니스’라는 난민 수용소가 있어요. 팔레스타인 저항세력과 이스라엘군은 항상 총격전을 벌이는데 이스라엘군이 시야를 좋게 한다고 그쪽 주변의 건물들을 불도저로 다 뭉개버렸어요. 집을 잃은 아녀자들과 함께 가서 사진을 찍으면 한 100m 정도 떨어진 이스라엘군 초소에서 총을 쏴요. 그러면 우린 놀라서 현장을 떠나야 합니다.그게 2002년도에도 있었는데 2004년도에 KBS팀과 그곳에 갔을 때, 내가 2년 전에 이런 일을 겪었다는 말을 하는 순간 총격이 또 있었어요. 그래서 KBS팀에서 방영할 때 그 총소리를 상황을 설명하면서 방영했어요. 그런 것은 아무리 이스라엘군이 나름대로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총질해서는 안 되겠죠.
▶ 가족들의 반대는 없으셨나요?
저는 죽음이라는 것은 운이 없으면 길거리 가다가 공사 중인 건물 낙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우리에게는 좋은 말이 있잖아요. “인명은 제천이다.” 처음에는 보험도 들고 했죠. 혹시나 내가 불상사를 당하면 남은 가족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하고 보험도 들었는데 거듭되니까 인명은 제천이더라고요.
▶ 든든한 보호막인 신문사를 그만두고 왜 분쟁전문 기자가 되셨어요?
제가 중앙일보에 다닐 때 주로 한국현대사, 특히 8.15 이후 3년 동안의 해방 기간에 민족통일을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흔히 현대사 연구자들이 말하는 중간파라고 말하는 사람들, 좌우남북협상파, 통일파죠.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니까 어차피 한국도 분쟁지역 중의 하나잖아요. 남북이 서로 170만 명의 군대가 마주하고 있고. 그렇다면 분단극복을 위해서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서 거울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제 관심 분야를 남북통일이라는 현대사적인 관심에서 요즘의 분단극복으로 넓힌 셈이죠.
▶ 생활은 되시나요?
나름대로 원고도 열심히 쓰고 강의도 하고 인쇄도 조금 있고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습니다.
◇ 평화는 기원이 아닌 몸으로 얻어내는 것
▶ “전쟁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목숨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가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전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역사적인 여러 경험들을 보면 힘은 약하지만 강국을 이긴 여러 사례들이 있죠. 우선 20세기에 알제리아가 프랑스로부터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서 8년 동안, 1954년부터 1962년까지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알제리아가 독립을 했잖아요.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프랑스 사람들도 죽었죠.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양심으로 알제리아를 더 이상 식민지로 둬서는 안 된다는 말을 했고, 여론의 압력으로 알제리아가 이겼죠. 또 베트남 등 이런 사례들을 보면 힘을 가진 강국이 항상 힘으로 결판을 낼 수는 없는 정치적인 압력이 작용합니다. 제 책 제목이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인데 여기서 평화라는 것은 로마의 평화입니다. 로마의 평화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로마 시대의 기원 200년 동안 전쟁이 별로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체제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것을 로마의 평화라고 이야기하지만, 가만히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로마의 평화라고 하는 것은 로마 사람들의 평화이지 로마에 복속된 소수민족들, 노예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평화라고 했겠는가 하는 말이죠.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미국의 평화, 또는 19세기의 영국의 평화를 말하는데 식민지였던 사람들, 인도나 파키스탄 사람들은 영국의 평화의 수혜자인가? 그건 결코 아니겠지요. 그래서 평화를 말할 때 강국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 또 다른 측면은 평화는 기원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쟁취해야죠.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평화가 오기를 기도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몸으로 얻어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어디 가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중동을 한 번 더 가려고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올 여름에는 책상에 바짝 앉아서 책을 쓰는 것으로 하고 겨울철 추울 때, 겨울 방학이 되면 다시 한번 다녀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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