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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어디까지 도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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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7. 6. 2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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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mbc '무한도전' 맴버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특별출연한 축구스타 티에리 앙리도 함께 포즈를 취했다.
    •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우리 곁에 찾아온 것은 2005년 4월의 일이다. 내복이나 쫄쫄이를 촌스럽게 차려 입고 나와서는,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거나 전철과 달리기를 하거나 목욕탕의 물을 죽어라고 퍼내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방송국 개편 때가 되면 으레 등장하는 오락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로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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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초기에는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무모한 도전’ 또는 ‘무리한 도전’이라는 제목도 함께 사용되었는데, 그러다보니 같은 방송국에서 이경규와 김용만이 진행했던 ‘대단한 도전’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서바이벌 게임의 코드를 내부에 도입하기는 했지만, 타 방송국에서 유재석이 진행했던 ‘천하제일 외인구단’과도 분위기가 사뭇 흡사했다. 여러 오락프로그램의 코드를 가져와서 한데 뒤섞어 놓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락프로그램에 독창성 요구할 일이 있겠는가. 기회가 닿는 대로 보고 웃고 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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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도전’이 달라진 것은 시즌 2부터이다. 스튜디오 촬영으로 전환을 하면서 ‘거꾸로 말해요 아하!’라는 게임을 시작했다. 이미 끝말잇기를 내세웠던 다른 오락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신선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시청자 앙케이트를 통한 순위놀이가 그것이다. 외계인 분장과 가장 어울리는 멤버의 순위를 매기는 것과 같은 앙케이트가 계속되면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캐릭터가 만들어졌고 현재의 라인업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성인비디오 애호가 유재석, 호통개그 박명수, 식신(食神) 정준하, 건방진 뚱보 정형돈, 단신의 꽃미남 하하, 퀵마우스 노홍철 등등 기본적인 캐릭터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와 함께 김태호 PD의 재기발랄한 자막이 시청자들을 황홀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중독성이 강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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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부터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있다. 리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쉽지 않겠지만 방송의 현장성을 중요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무한도전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우연적인 효과들을 발전시켜 나간다. 무한도전의 인기 레퍼토리인 물공 헤딩하기와 하나마나 송은 모두 방송 현장에서 일어난 우연한 장난에서 비롯한 것이다. 물공 헤딩하기는 축구스타 앙리를 웃게 만들었고, 하나마나 송은 아이들 밴드 무한도전의 게릴라 콘서트로 발전했다. 방송현장의 역동성과 우발성을 살려서 발전시켜간 것은 무한도전의 진화에 있어서 중요한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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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도전에 내재된 또다른 코드가 있다면 그것은 오락프로그램에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 초기부터 ‘어느 누구도 고정(출연)은 없다’가 모토였고, 주말 오락프로그램을 방송인들의 경쟁이 불가피한 노동시장으로 여기곤 했다. 특히 지난 6월 2일에 방영된 농촌 모내기 코너는 ‘방송은 노동’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제시한 경우이다. 폭우 때문에 준비한 코너들은 선보이지도 못하자, 현장에서 동네 이장의 추천으로 논두렁 달리기를 했다. 쓰러지고, 자빠지고, 미끄러지고. 무한도전의 용어를 빌면, 몸개그가 작렬했고 큰 웃음을 주었다. 과도하면서도 바보같아 보이는 몸동작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제대로 먹힌 경우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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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보면서 슬랩스틱 코미디 특유의 찝찝함, 바보같은 몸짓에 웃은 내가 더 바보같다는 허망함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저변에는 ‘우리는 받는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몸을 던져서 일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가로 놓여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폭우 속에서 10시간을 찍어 1시간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을 제시함으로써, 회당 출연료가 수백만원에 이르는 연예인들이 온몸으로 노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노동윤리에 대한 시청자들의 무의식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방송은 웃음을 주기 위한 노동이라는 태도는, 무한도전에 배어있는 윤리적 무의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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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도전은 다양한 방송 형식들을 차용하고 패러디함으로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성격을 발전시켜 나간다. 기존의 오락프로그램이 고정된 포맷에 게스트나 세부사항을 바꿔가는 수준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무한도전은 패러다임을 완전히 달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분토론, 스타 청문회, 게릴라 콘서트, 몰래카메라, 패션쇼, 서커스 등등 텔레비전에서 해왔던 것들 또는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모두 자신의 아이템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한도전은 방송프로그램의 역사에 대한 콜라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존의 방송 형식들을 그냥 끌어모으는 수준이 아니라, 즐겁게 변형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하고 끊임없이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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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현재 무한도전은 어느 정도까지 진화한 것일까. 한국방송사상 처음으로 오락프로그램 가운데 자체 예고를 보지 않으면 다음 번에 무엇을 할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포맷을 형성하는 데 이르렀다는 것. 패러디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 이제는 자율성을 획득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는 상식에서 벗어난 비도덕적인 방송을 하지 않는 한, 무한도전이 그 어떤 주제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놀랄 사람은 없다. 무한도전 제작팀이 욕망하는 것이 무한도전 그 자체인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방송사의 일대 사건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무한도전을 다룬 이유는 별다른 곳에 있지 않다. 다양한 문화적 기원들을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문화적 주체성과 자율성을 획득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과정이 참으로 눈부셨기 때문이다. 무인도 특집이라는 다음 방송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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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식 인하대 국문과 교수 <조선일보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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