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속담을 정작 중국인들은 하룻밤 자고 만리장성을 쌓는다로 사용한다고 한다. 토씨 하나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 뜻은 얼마나 다른가.
옛날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쌓던 때의 일이다. 깨소금이 쏟아지던 신혼부부가 있었는데 그만 신랑에게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징집장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신부가 꾀를 내어 신랑을 잠시 본가에 돌아가 있게 했다. 그런 다음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 놓고 어리숙해 보이는 행인을 끌어들였다. 산해진미에다 하룻밤 쾌락까지 누린 행인에게 신부는 편지 한 장을 주며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남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지라 그 행인은 그 길로 부역장으로 떠났다. 도착해서 편지를 전해 달라고 하자 관리들은 다짜고짜 그를 부역장으로 끌고 가버렸다. 실인즉 그 편지는 다름아닌 징집장이었던 것이다.
이후 순간의 쾌락을 누리고 대신 긴 고통을 감내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하룻밤을 자고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쓰이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를 지닌 중국속담이 어찌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둔갑해 쓰이고 있는가? 설령 악의적인 상징조작의 의도는 없다고 해도 그 또한 왜곡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룻밤 자도 만리장성 쌓을 줄 알았다가 하룻밤 잔 대가로 민리장성을 쌓아야 했을 때의 낭패감은 어떠했을까? 그처럼 어리석은 위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겠지만 문제는 정작 다른데 있는 듯 싶다.
멀쩡한 말도 속절없이 와전되고 마는 전달의 문제 말이다. 하물며 현대는 대량전달의 시대가 아니던가.
'중국에는 젊어서 삼국지를 보되 늙어서는 보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는 이문열 삼국지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도 사실은 '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고 해야 옳다고 한다. 잘못된 전달로 말의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져버렸다.
학교 통학버스들을 보면 앞 유리창이나 뒷편 유리창에 '학생보호차량'이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학생보호대상차량'이라고 해야 옳다. 보호차량이란 무엇인가를 보호하는 차량이기 때문에 경찰차에나 붙여야 할 것이고 통학버스에는 학생보호대상차량이라고 해야 할 법하지만 그냥 "학생을 보호합시다"라고 써 붙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형 아파트 같은 곳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글이 있다. "공동주택에서 개 사육은 법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개를 동반 산책 중 방뇨를 금합니다. -관리소장-"
이 경고문은 논리적 모순점이 있다. 공동주택에서 개 사육이 금지돼 있다면 그 공동주택의 주민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방뇨의 주체는 개 주인일끼, 아니면 개일까?
<말과 글 2004 여름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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