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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두얼굴, 저항과 욕망

세상보기---------/현대사회 흐름

by 자청비 2007. 8. 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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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임꺽정’ 저항과 욕망, 민중의 두얼굴 찾아내”
 

‘민중(民衆)’이란 말은 유난히 한국에서 많이 쓰여온 독특한 정치적 개념어다.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지금 거의 쓰이지 않는다. 계급적인 의미의 프롤레타리아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쓰여온 ‘민중’ 개념은 한국 현대사에서 행사한 영향력 또한 작지 않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민중’은 어떻게 생겨나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됐을까.

최정운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벽초 홍명희의 장편소설 ‘임꺽정’에서 ‘민중’의 상(像)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봤다. 최근 나온 반연간지 ‘한국사 시민강좌’에 기고한 “조선시대의 민중세계를 다룬 소설 ‘임꺽정’의 공(功)과 과(過)”라는 논문을 통해서다.

소설 ‘임꺽정’은 국문학자나 역사학자들에게 ‘민중’의 현실적인 모습을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사회과학자가 텍스트로 분석한 경우는 드물다. 특히 최교수는 ‘임꺽정’의 ‘민중’상이 보여주는 부르주아적인 모습과 반지성주의적 특성에 주목해 눈길을 끈다.

최교수는 국민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들이 ‘임꺽정’에 제대로 대표되어 있지 않은 점에 주목한다. 임꺽정은 백정 출신이지만 소를 잡는 등 경제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양반들이 하층민을 무시하는 것을 못 참을 뿐이다. 임꺽정이 이끄는 청석골 패거리들도 가난에 시달리지 않으며 풍족한 안주로 밤새 술을 마신다. 따라서 임꺽정은 “경제적 조건에 근거해 저항에 나서는 인물이 아니라 아버지, 양반, 관권 등 모든 권위에 본능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게 태어난 인물”이었다.

최교수는 “임꺽정은 단재 신채호가 ‘조선혁명선언’에서 말한 ‘민중’에 약간 비현실적인 영웅으로 피와 살을 입힌 것”이라고 말한다. “임꺽정은 ‘저항 민족주의’의 이념으로 창조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민중은 민족의 일부로, 민족을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지배계층·지식인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포괄한다. 단재보다 8살 아래였던 벽초는 실제로 단재와 교류했고, 그를 무척 흠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전반을 통해 임꺽정이 ‘저항의 영웅’이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다만 후반부에 그가 두목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욕망과 색정에 탐닉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에 대해 기존 비평가들은 해석을 회피해 왔다. 이들은 “신문에 장기간 연재한 벽초의 집중력이 한계에 이르렀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일관성 없이 흥미 위주로 썼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근대 이전 동양의 전통문학에서 의인은 끝까지 의롭고 악인은 끝까지 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교수는 “이 부분이야말로 ‘민중’상과 관련해 벽초 소설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민중’의 실제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권력욕, 나르시시즘, 성욕 등으로 임꺽정을 이끄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저항의 화신’은 ‘욕망의 화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임꺽정(민중)은 이성적 결정 외에도 부르주아로서의 욕망을 내장한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 최교수는 “임꺽정이 대변한 민중은 저항과 직접 혁명의 주체이며 끝없이 싸울 수 있는 내면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부르주아의 욕망을 모순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투쟁에서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잠정 결론짓는다. 자연스럽게 혁명가적 지식인의 삶 역시 욕망에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프티 부르주아’의 욕망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유추할 수 있다.

최교수는 영웅적 투쟁 주체로서의 민중이 욕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발견한 것이 ‘임꺽정’이 가진 공(功)이라면, 그 반지성주의는 과(過)라고 본다. 임꺽정은 글자를 통한 배움을 철저히 거부했다. 소설에서 청석골의 유일한 식자(識者)로서 임꺽정을 권력으로 유혹하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 ‘서림’은 교활하고 약삭빠르며 거짓말의 대가로 묘사된다. 최교수는 “임꺽정의 반지성주의는 경험적으로 조선 민중의 사상이라기보다는 지식인 벽초의 생각이었다”며 “지식인으로서 당시 식민지 사회의 괴로운 현실을 거부하는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이라고 분석한다.

최교수는 반지성주의에서 비롯된 폐해가 적지 않다고 본다. ‘저항민족주의적 민중주의’는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적’ ‘복지국가적’이라고 표방됐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프티 부르주아의 질투와 욕망’이 내재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지적하려는 지식인들의 개입은 언제나 ‘반지성주의’의 방해막 때문에 차단당했고, 저항민족주의로서의 민중주의가 일제시대 이후 유신독재, 민주화된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근대사를 돌이켜보면 반지성주의는 충분히 이해가능한 사상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지성에 대한 경시, 왜곡된 교육 등의 문제는 ‘임꺽정’에서 나타나듯 근대사의 반지성주의의 결과임에 분명하다”고 말한다.

 

▶ ‘민중(民衆)’

고전에서는 ‘춘추(春秋)’에 단 한 번 등장한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 ‘people’의 번역어인 ‘인민’과 구별해 몇차례 쓰였고 중국에서도 5·4 신문화운동을 전후해 쓰였다. 정치적 개념어로 정립된 것은 한국에서다. 최남선이 ‘기미독립선언’에 ‘거리에 나선 수많은 시위군중’을 뜻하는 말로 썼고, 신채호가 1923년 ‘조선혁명선언’에서 ‘핍박하는 지배층에 대항해 떨쳐 일어나 폭력으로 저항하고 아나키스트적인 직업혁명을 이끄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썼다. 소설 ‘임꺽정’에서 비로소 지식인들만의 용어를 탈피했으며, 일제 후기부터 ‘민중주의’가 뿌리내리게 됐다. 한국전쟁 후 ‘임꺽정’이 금서가 되고 그 기억도 잊혀져가던 70년대 말 ‘민중’이라는 말이 다시 나타났을 때, 그 의미는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적 주체였고 80년대까지 ‘민주화 운동세력’에 의해 강한 저항의 정치적 의미로 쓰였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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