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린 그의 미성(美聲)을 다시 들을 수 없다니….”
20세기 최고의 ‘황금빛 목소리’를 지닌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6일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해 7월 췌장암 수술을 받았으며 지난달 고열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하는 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의 죽음에 전 세계 클래식 팬들이 슬픔에 빠졌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는 검은색 조기가 내걸렸고, 런던 로열오페라는 “그는 지구상의 일상을 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 흔치 않은 예술가였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파바로티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꼽혀 왔다. 그러나 금빛 찬란한 광채를 가진 그의 미성은 역사상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것이었다. 도밍고는 이날 “나는 신이 내린 그의 영광의 목소리를 늘 찬탄했다. 그것은 테너의 최저음에서 최고음까지 아우르는 매우 특별한 음색이었다”고 애도했다. 스페인에 머무르고 있는 호세 카레라스도 “내가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에 있는 파바로티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손수 빵과 토마토 요리를 해 주었다”며 친구를 잃은 슬픔을 표현했다.
1935년 10월 12일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서 태어난 파바로티는 26세인 1961년 레조 에밀리아의 오페라하우스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포 역할로 데뷔했다. 당시 전 세계에 불어닥친 로큰롤 열풍으로 썰렁해진 오페라극장에 파바로티는 혜성처럼 나타난 스타였다.
1972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친 도니체티 ‘연대의 딸’ 공연에서 그는 ‘하이C’(3옥타브 도)의 고음을 내는 아리아를 여러 차례 완벽히 소화해 찬사를 받았다. 특히 1988년 독일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사랑의 묘약’ 공연에서는 무려 1시간 7분 동안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163회의 앙코르 요청을 받아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파바로티가 클래식 음악 팬들이 아닌, 전 세계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90년 로마 월드컵 전야제에서 주빈 메타가 지휘한 ‘3대 테너 콘서트’에 참여하면서였다. 당시 그가 부른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는 그의 대표곡이 됐다. 이후 그는 전 세계를 돌며 팝가수들과 함께 대규모 야외 공연을 열기도 했다.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 씨는 “20세기 성악가 중 엔리코 카루소의 위대함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대중적인 인기에서 파바로티를 따라갈 성악가는 없었다”고 말했다.
파바로티는 1977년 이화여대에서 독창회를 한 것을 비롯해 1993, 2000, 2001년 내한공연을 했다. 파바로티는 2003년 12월에 35세 연하의 개인비서인 니콜레타 만토바니 씨와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61년 결혼한 부인 아두아 베로니 씨와는 2000년 이혼했다. 그는 베로니 씨와의 사이에 장성한 세 딸을 두고 있으며, 만토바니 씨에게서 얻은 딸 알리체 양은 현재 네 살이다.
지난해 7월 뉴욕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을 당시 파바로티는 고별 순회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부른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결국 그의 마지막 노래가 됐다.
<동아닷컴>
O Sole Mio, Nessun Dorma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중 "여자의 마음"
공주는 잠못이루고 -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Donizetti <사랑의 묘약>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끝나버린 커튼 콜… 하늘로 간 ‘신의 목소리’
탁월한 성량으로 청중 매료시켜
“상업주의에 휩쓸려” 비판 받기도
‘세기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는 이탈리아 북부의 모데나에서 빵 굽는 아버지와 담배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그는 정규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대신 9살 때부터 마을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했고, 소년 시절에는 엔리코 카루소와 티토 스키파 등 아버지가 모았던 음반 속의 가수들이 그의 ‘성악 선생님’이었다. 축구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 한때 프로 선수가 되기를 진지하게 꿈꾸기도 했다.
19세에 고향에서 개인레슨을 받으면서 테너로서의 재능을 깨우쳤지만, 처음 6년간은 연주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골 마을에서 독창회를 갖는 것이 고작이었다. 파바로티는 생계를 위해 초등학교 시간제 교사나 보험 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정식 무대에 설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테너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26세)에 파바로티는 푸치니의 ‘라 보엠’ 가운데 로돌포 역으로 오페라무대에 데뷔했다. 4년 뒤 그는 소프라노 존 서덜랜드의 공연에 출연하면서 세계 진출 기회를 잡았다. 이듬해인 1965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과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잇따라 데뷔했다.
1972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열린 도니제티의 오페라 ‘연대의 딸’ 무대에서는 거침 없이 ‘하이 C(세번째 옥타브의 도)’ 음을 9차례나 쏟아냈다. 청중의 박수에 화답하기 위해 무려 17차례의 커튼 콜을 받으면서 당시 이 오페라 극장의 기록을 깼다.
든든한 체구를 바탕으로 아무런 무리나 왜곡 없이 고음까지 곧바로 목소리를 올려보내는 그에게 이때부터 ‘하이 C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1988년 독일에서 열린 오페라 ‘사랑의 묘약’ 공연에서는 박수가 1시간 7분이나 쏟아졌고 165차례의 커튼 콜을 받으며 기네스 북에 오르기도 했다.
파바로티는 1990년대부터 전통적인 오페라 극장만이 아니라 대형 야외 무대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는 호평도 나왔지만 지나친 상업주의에 휩쓸렸다는 비판이 함께 따라다녔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그가 불렀던 푸치니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테마 곡으로 지정됐고,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67), 호세 카레라스(61)와 함께 무대에 선 ‘스리 테너(Three Tenors) 콘서트’는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부터 월드컵을 기념하는 대표적인 음악 행사로 자리 잡았다.
‘스리 테너 콘서트’는 다시 세계 투어와 음반 발매로 이어지며 수백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이 기록으로 다시 파바로티는 기네스 북에 올랐고,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는 ‘세계 3대 테너’(빅 3)로 불렸다.
파바로티는 대중음악가수들과 잘 어울렸다. 팝 가수 엘튼 존·스팅 등과는 UN 기금 마련을 위한 ‘파바로티와 친구들’ 활동을 펼쳤다. 1991년 런던 하이드파크 공연에는 15만명의 관객을 운집시켰고, 지난해 2월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도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기념한 ‘한반도 평화 콘서트’를 비롯해 수차례 내한 공연을 갖기도 했다.
말년에는 스캔들도 끊이지 않았다. 36년간 함께 활동했던 매니저 헤르베르트 브레슬린과 2002년 결별했고, 브레슬린은 2004년 ‘왕과 나’라는 책에서 파바로티의 악보 읽는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003년에는 35세 연하의 개인 비서 니콜레타 만토바니와 결혼식을 올렸다. 무명 시절인 1961년 결혼한 부인 아두아 베로니와는 2000년 이혼하면서 도덕적 비난을 초래했다.
평생의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도밍고가 67세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서면서 120여 개까지 배역을 늘리고 있는 데 비해, 파바로티는 상대적으로 ‘라 보엠’과 ‘사랑의 묘약’ 등 몇몇 이탈리아 오페라에 역할이 한정됐다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라 보엠’의 로돌포를 비롯해 자신의 배역에서는 당대에 필적할 만한 가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탁월한 성량과 음색을 선보였다. 도밍고는 “나는 항상 파바로티가 가진 ‘신의 목소리’를 존경한다”며 “파바로티 특유의 음색은 테너가 부를 수 있는 모든 음역을 소화한다”고 격찬했다.
◆파바로티 연보
▲1935년 10월 12일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서 출생. 부친은 오페라광이자 아마추어 테너.
▲1954년 사범학교 졸업 후 개인교습 받으며 성악가 준비.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의 스승이기도 한 에토레 캄포갈리아니 사사.
▲1961년 레지오 에밀리아의 작은 콩쿠르에서 우승. ‘라 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데뷔. 첫 부인 아두아와 결혼.
▲1962년 툴리오 세라핀이 지휘하는 ‘리골레토’에 발탁. 1963년 코벤트 가든(영국), 1965년 라 스칼라(이탈리아), 1968년 메트로폴리탄(미국)에 데뷔.
▲1966년 영국에서 오페라 ‘연대의 딸’ 중 9번 하이 C가 등장하는 아리아 ‘친구들이여, 오늘은 즐거운 날’을 120년 만에 원래 악보대로 불러 화제.
▲199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첫 ‘스리 테너 콘서트’. 이후 야외 공연장이나 경기장의 대형 리사이틀, ‘파바로티와 친구들’ 같은 콘서트에 주력.
▲2003년 비서 출신의 니콜레타 만토바니와 두번째 결혼.
▲2004년 3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토스카’ 공연 앞두고 마지막 오페라 무대라고 선언. 하지만 2005년부터 세계 고별 투어.
▲2006년 3월 브라질 투어 앞두고 장기입원하면서 일정 취소. 그해 7월 췌장암 수술.
▲2007년 9월 6일 고향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사망.
<조선닷컴>
Ave Maria
caruso
Torna a Surriento 돌아오라 쏘렌토
◆‘천상의 목소리’=높은 음역에서 멀리 뻗어 나가는 맑고 깨끗한 파바로티의 음색이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청아하게 들린다고 해서 붙어 다니는 수식어다. ‘리릭(서정적) 테너’의 대표 주자이면서도, 큰 체구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무대를 압도하는 독특한 특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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