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올여름 헝가리를 비롯한 남동유럽엔 섭씨 45도를 웃도는 ‘살인 폭염’이 닥쳤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 가뭄에 시달렸다. 우리나라 역시 장마가 끝난 뒤에 게릴라성 호우가 덮쳐 장마 때보다 더 많은 비를 쏟아 붓는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지구촌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북극 알래스카와 히말라야의 산악지대 등 기후변화의 최전선을 찾아 그 실상을 취재했다.
<조선닷컴>
“아, 시원해. 이제 살 것 같아!” 지난 7월 하순, 알래스카 앵커리지 근교의 와실라(Wasilla) 호수. 수영복 차림의 아이들 10여 명이 물장구를 치느라 바쁘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은 잔디밭에 누워 뜨거운 태양을 즐기고 있다. 배로 30분만 가면 거대한 빙하를 볼 수 있는 앵커리지에서 한여름 우리나라 해변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호수 관리직원 트레비스 하인즈만(20)씨는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이젠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고 말했다.
알래스카는 ‘지구온난화의 표본’ ‘지구의 카나리아’로 불린다. 탄광 갱도 속의 카나리아처럼, 지구온난화와 이로 인한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알래스카의 기온은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대 래리 D. 힌즈만 교수는 “지난 100년간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이 섭씨 0.75도 올라갔지만, 알래스카는 이보다 최소 두 배 이상 빠르게 기온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알래스카 도심에선 ‘에어컨’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앵커리지, 페어뱅크스 같은 도시의 호텔엔 에어컨이 없는 곳이 없다. 에어컨을 들여놓는 가정집도 점차 늘고 있다. 페어뱅크스시에 있는 웨지우드 리조트(Wedgewood Resort) 호텔 관계자는 “알래스카가 1년 내내 서늘할 것이라 상상하고 온 관광객들은 에어컨을 보고 놀란다”고 말했다.
더 기가 막힌 건, 에스키모 마을에 ‘냉장고’가 필수품이 됐다는 점. 땅이 얼어 있어서 에스키모들에게 ‘자연 냉장고’ 역할을 했던 동토(凍土: 땅속이 섭씨 0도 미만으로 2년 이상 얼어 있는 땅)가 녹고 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시슈마레프(Shishmaref) 마을엔 5년 전, 냉장고가 처음 등장했다. “우리가 냉장고를 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해변가에 땅을 파고 그곳에 묻으면 1년 내내 싱싱한 물개를 먹을 수 있었는데….” 집 바깥쪽에 놓여진 냉장고를 남편과 함께 정리하고 있던 루시 이니구아(57)씨가 큰 소리로 불평을 했다. 현재 600여 명이 거주하는 시슈마레프 마을엔 대부분 냉장고가 갖춰져 있었다.
◆무너지고 구멍 뚫리는 땅
기온 상승으로 알래스카의 지반이 힘을 잃으면서 집이나 건물, 도로 같은 시설들이 무너지거나 훼손되는 현상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페어뱅크스의 주요 고속도로인 스티지 하이웨이는 만든 지 1년이 안 된 새 도로이지만, 얼핏 봐도 물에 젖었다가 마른 종이처럼 울퉁불퉁하다. 도로 아래 동토가 녹으며 지반이 가라앉는 바람에 차를 타고 달리면 엉덩이가 들썩들썩할 정도였다. 배달업을 하는 짐 모리스(30)씨는 “페어뱅크스 근처에 멀쩡하던 도로가 구불구불하게 변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속도를 줄여 살살 달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을 짓는 데도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이곳 주민들은 “동토인지 아닌지 지반 조사를 하는 데만 2000달러가 든다”고 말했다. 은행에서는 지반조사서를 가져오지 않으면 대출도 꺼릴 정도다. 알래스카의 기후변화를 35년간 연구해온 페어뱅크스 대학 존 켈리 교수는 “알래스카의 땅속이 지난 100년간 섭씨 3도가 상승하면서 지금은 섭씨 0도 가까이 올라간 상태”라며 “이 때문에 집을 지을 때는 ‘녹는 땅’인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알래스카에서 기우뚱한 집은 새로운 ‘관광 코스’로 떠올랐다. 페어뱅크스 한 주택가에 있는 1940년대에 지어진 단층 주택은 한쪽이 10도 가량 기우는 바람에 집의 아래쪽 부분이 5m 넘게 땅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지붕 중간은 ‘V’자 모양으로 움푹 꺼져 있었다. 3년 전까지 이 집에 살던 외국인 학생들은 땅이 꺼지기 시작하자 집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비극의 에스키모 마을
베링해를 사이에 두고 시베리아와 마주보고 있는 시슈마레프 마을 주민들은 200여 년간 터잡고 살아온 고향을 이제 곧 등져야 할 처지다. 미국 정부가 작년 12월, 마을 주민 600명을 육지인 틴 크릭(Tin Creek)으로 이주(移住)시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7월 18일 기자가 찾은 시슈마레프 마을은 폐허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집들이 있었던 자리에는 나무로 된 벽 등 흔적만 남아 있고 가재 도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집 한 채는 아예 모래사장에 지붕을 처박고 고꾸라져 있다. 남아 있는 집들도 언덕 끝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 큰 파도가 육지를 덮치는 일이 잦아지면서 땅이 휩쓸려 나간 탓이다. 이곳 주민 토니 웨이우아나(70)씨는 “지난 10년간 북쪽 해변의 폭이 1년에 1m씩 줄어들었다. 땅이 녹는데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면서 큰 파도가 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슈마레프 서쪽 해안가에선 커다란 돌로 방파제를 쌓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주가 끝나는 2009년까지 태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정부는 방파제 건설에만 지금까지 총 24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주를 완전히 끝내기까지 1억8000만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 시슈마레프와 비슷한 처지에 처한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마을은 총 186개에 이르고 있다.
알래스카의 지반 붕괴로 집이 무너지고 있다.
헬리콥터를 타고 알래스카 빙하를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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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의 케스케이드, 베리, 콕스 빙하(왼쪽부터) .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는 알래스카 남부 추가치(Chugach)산맥에서 20여개의 빙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이 빙하들은 최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급속히 줄어들어 해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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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북쪽으로 64㎞ 떨어진 와실라(Wasilla) 호숫가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알래스카의 여름은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기 때문에 이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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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폭풍으로 지반이 파도에 쓸려가면서 무너진 알래스카 시슈마레프 마을의 가옥. 베링해와 접하고 600여명의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은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해 마을전체를 안전한 지대로 옮기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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