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로쓰기 운동
1. 들머리
이 글은 1985년, ‘우리말 바로쓰기 모임’을 처음 만들 때 밝힌, “우리말이 나아갈 길” 가운데서 “글을 깨끗이 쓰는 일”과 “죽어 가는 겨레말을 찾아 쓰는 일”, “일본, 중국, 미국 따위 한자말 나라 이름과 한자말 사람 이름을 쓰는 일” 따위를 어떻게 보아야 좋을지 판가름하는 데 도움이 될 이야기만 간추리고 풀이를 덧붙인 것이다.
2. 우리말을 살리는 길
우리말을 살리는 길은 우리말과 우리 글을 바로 알고 바로 쓰는 것이다. 우리말이 날로 때묻고 비뚤어지고 뒤틀려 죽어 가는 것은, 우리말과 우리 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겉멋에 얼이 빠져 남의말(외국어)과 남의 말투를 섞어 쓰기 때문이다.
한문 글자 종살이 때 들어온 한자말, 새로 만든 한자말, 왜놈들이 심어 놓은 왜말과 조선왜말(닙뽕 한자말), 또 나라를 되찾은 뒤 들어온 서양말이 뒤섞이고, 거기에다가 왜말투와 서양말투가 우리말 안방을 차지하니 우리말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글자마저 한글과 한문 글자와 로마 글자를 아울러 쓰니, 우리 말글살이는 마지막 고비에 몰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리말을 살리려면, 먼저 우리말이 무엇인지 뜻매김을 하고, 그 뜻매김에 따라 오늘날 쓰고 있는 모든 낱말을 쓸 말과 버릴 말로 갈라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밀려오는 남의말을 한 곳에 모아, 막을 것은 막고 거를 것은 걸러서 쓸모가 있는 말만 골라 들온말(외래어)로 명토박고(지정하고), 닙뽕말투와 서양말투를 닮아서 날로 제 모습을 잃어 가는 우리 말투를 바로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자살이(문자 생활)는 반드시 우리 글자, 한글로 해야 한다.
우리말을 살리는 일은 우리가 애쓴다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우리말이고 어떻게 쓰는 것이 바른 글인지 널리 알리고 꾸준히 깨우칠 뿐만 아니라, 올바른 우리말과 우리 글의 참된 모양새를 여러 가지 본보기 글로 써서 보여줄 때, 곧바로 모든 사람이 따르지는 않겠지만 우리 말글은 시나브로 되살아 날 것이다. 우리 스스로 깨끗한 글을 써야 하는 까닭이다. 이 일은 어떤 한 사람이 “제멋(개성)이나 재미(취미)”로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말을 살리려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3. 우리말의 뜻매김
흔히, 한자말은 우리말이라 하고 서양말을 가리켜 들온말(외래어)이라 하는데 이는 우리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우리말의 뜻매김(정의)이 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우리말의 뜻매김이다.
우리말이란, 겨레 삶 속에서 땀처럼 배어 나와 뭇입(대중)이 얽어 만든 겨레말(배달말)과, 다른 나라와 서로 오가며 사람과 물건을 따라 들어온 다른 나라말 가운데서 쓸모가 있어서 받아들인 들온말(외래어), 이 두 가지를 아울러 일컫는다. 곧, 겨레말과 들온말이 모두 우리말이다. 이렇게 우리말의 뜻을 똑똑히 밝혀 놓아야 비로소 우리말을 살리는 길이 열린다.
4. 들온말 쓰기
우리가 나날살이(일상 생활)에서 쓰는 말에는, 예부터 이제까지 대충 예순 몇 나라에서 들어온 말이 섞여 있는데, 딴 나라에서 들어온 여러 가지 말 가운데서 우리 삶 속에 뿌리내린 들온말은 우리말이므로 쓸데가 있다면 얼마든지 써야 하고 또 많을수록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남의말과 들온말을 갈래 지은 적이 없기 때문에, 한자말, 조선왜말, 닙뽕말 그리고 손익은이(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서양말까지, 남의말인지 들온말인지 알지 못한 채 마구 뒤섞어 쓴다.
이 일이 우리말을 죽이는 병집이고, 우리말이 나아갈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딴 나라말은 마땅히 남의말과 들온말로 갈래 지어, 남의말은 버리고 들온말만 쓰도록 해야 한다. 쓸모가 있는 남의말을 쓸데가 있는 사람이 배워서 써야 할 자리에 쓰는 것이야 뭐라 할 까닭이 없지만, 이렇게 익힌 남의말을 우리말 속에 섞어 쓰면 안 된다.
어쨌거나, 남의말과 들온말을 갈래지어 주는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우리라도 해야 하는데, 이 일 또한 쉽지 않다. 갈라내야 할 말도 많거니와 우리말을 살리겠다고 모인 사람들마저 저마다 생각이 달라서 섣불리 손댈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묶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할 일은 해야 한다. 언젠가는 나라에서 이 일을 하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거니와, 또 그 날이 올 때,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미리 마련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 터를 닦는 것인데, 왜말에서 들어온 “고구마, 구두, 가마니”, 한자말에서 들어온 “도둑, 김치, 시금치, 가게, 과녁”, 만주말에서 들어온 “사둔”, 몽골말에서 들어온 “보라, 야호, 송골매, 조랑말”, 포르투갈 말에서 들어온 “담배” 따위 누구나 겨레말이라고 생각할 만큼 녹아 버린 말과, 새말을 만들기 어려운 “텔레비전, 라디오, 버스, 택시” 따위 서양말에서 들어온 말처럼, 다들 뜻을 알고 널리 쓰는 말은 들온말로 살려 쓰고, 나머지는 비록 입에 익은 말이라도 겨레말이 있다면 남의말로 갈라내어 쓰지 않는 쪽으로 힘을 기울이는 일이다. 시간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 간다면 못 할 일도 아니다.
5. 한자말 쓰기
잘라 말해서 한자말은 우리말이 아니다. “가마니, 냄비”가 닙뽕에서 들어와 우리말이 되었다고 모든 닙뽕말이 우리말이 아니듯이, 아무리 많은 한자말이 들온말로 자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한자말을 모두 우리말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쓰는 한자말은 중궈 옛말(중국 고문)과 중궈말(현대 중국말), 조선왜말(닙뽕한자말 “센따꾸”를 “세탁”이라 하는 것 따위)과 우리 나라에서 만든 한자말 따위인데, 이런 한자말은 언제 어디에서 누가 만들었건 따질 것 없이 모두 몰아낸다는 생각으로 말글살이를 해야 한다. “동양 고전”이나 우리 옛 책이 한문으로 씌어 있는 것과 한자말을 우리말로 받아들여 쓰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다.
우리가 쓰는 낱말 열 개 가운데 일고여덟이 한자말이라고 한다. 어느 “말모이책(국어 사전)”에 기대어 하는 말인데, 닙뽕말 사전을 베낀 이 책에 실린 올림말(표제어)을 보면 “편지”라는 뜻으로 쓰는 한자말이 백아흔여덟 가지이고,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도 예순세 가지나 된다. 이 밖에도, 뜻이 같은 한자말이 보통 대여섯 가지씩 실려 있으니 한자말이 많아 보일 수밖에 없다.
또, 한자말을 버리면 말글살이를 할 수 없다고도 하지만, 우리말로 말글살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은 한자말에 인이 박였기 때문이고 우리말을 모르니까 하는 소리다. 우리 한아비(조상)들이 몇 천 년 동안 우리말로 말살이를 해 왔는데, 이제 우리라고 못할 까닭이 없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으니 엄두를 못 낼 뿐이다.
나날말(생활 용어) 가운데는 한자말과 뜻이 같은 겨레말이 많다. 모든 한자말을 갈음할 겨레말이 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겠다는 생각만 있으면 우리말로도 얼마든지 내 뜻과 생각과 느낌을 나타낼 수 있다. 겨레말이 있다면 굳이 한자말을 쓸 까닭이 없고, 한자말을 쓰지 않고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 나름대로 꾸준히 우리말로 깨끗한 글을 써서 본보기로 보여 주어야 마땅하다.
6. 겨레말 찾아 쓰기
겨레말은 쓰고 싶어도 없어서 못 쓴다고 한다. 하지만, 한자말을 갈음할 겨레말은 말모이책(국어 사전)에도 많이 실려 있고, 글에서는 사라졌지만 입말에 살아 있는 말도 꽤 많다. 한자말, 조선왜말, 왜말에 밀려 우리 삶 뒤쪽에 숨어 버린 겨레말을 찾아서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아주 쓰지 않는 죽은 말일지라도 할 수만 있다면 되살려 써야 한다.
“난사람, 든사람, 된사람” 같은 겨레말은 “말모이책(사전)”에 오르지 못했지만, 지금도 나이 든 시골 농투성이들이 늘 쓰는 입말이고, “말모이책, 갈말, 솜씨말” 따위는 일찍이 몇몇 앞선이(선각자)들이 만들어 쓴 새말인데, “때알이(시계)”나 “날틀(비행기)”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든사람들(지식층)이 “겨레말로 만든 말”이라는 것을 트집잡아 우리말로 대접하지 않았던 말이지만, 앞으로 새말을 만드는 밑거름으로 쓸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겨레말이나, 겨레말로 만든 새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우리말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짓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짓듯이 새말도 자꾸 만들어야 한다. 쓸데가 있는데도 새말을 만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남의말을 빌려 올 수밖에 없고, 이제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우리말은 없어서 못 쓴다는 말이 나온다.
“사회, 과학, 미술, 국회, 민주주의” 따위 조선왜말은 닙뽕사람들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여러 해 동안 애써 다듬어 만든 새말인데,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이런 말을 공짜로 받아들여 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꼭 써야 할 말이 있어도 닙뽕이나 중궈에서 만들어 줄 때까지 손놓고 기다려야 할 판이다. 공짜만 좋아하다가 우리 말글살이가 남의말 종살이로 떨어지는 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르는 셈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던 “신토불이, 원조교제, 축제, 피로회복” 따위 조선왜말이나, “안전사고, 소주밀식, 가수주의, 미화원” 같은 엉터리 한자말이나, “개그맨, 굿바이 홈런, 파이팅, 노하우” 따위 가짜 서양말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의말을 바로 뒤친(번역한) “제비족, 뜨거운 감자” 같은 말도 두 말 없이 받아들이면서 겨레말로 만든 새말이라고 쓰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 빠진 짓이다.
새말은 자꾸 만들어야 하고, 반드시 겨레말을 바탕으로 삼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새말을 잘만 부려쓰면 곧바로 우리말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마주 말하기(대화), 도시락(벤또), 둔치(고수부지), 갓길(노견), 나들목(인터체인지), 도우미(진행보조원), 손전화(핸드폰), 노래방(가라오케), 골뱅이(@)” 따위가 그 좋은 보기다. 요즘 들어 젊은 학자들 사이에선 우리말로 갈말(학술어)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차츰 높아 가고 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남의말로는 우리 학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7. 한자말 홀이름씨 쓰기
나라 이름, 땅 이름, 사람 이름 같은 홀이름씨(고유명사)는 반드시 그 나라 본바닥 소리대로 불러야 한다. 닙뽕에 “도쿄”가 있고, 중궈에 “둥징”이 있고, 베트남에 “통킹”이 있고, 한국에는 “동경”이 있는데, 이 네 군데 마을 이름을 한문글자로 쓰면 모두 “東京(동경)”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다른 마을이고 이름도 제가끔 다르지만, 한문글자로 쓰면 똑 같다. “통킹”이 “동경”이 아니듯이 “도쿄”도 “동경”이 아니다. “동경”은 우리 나라 경주의 옛 이름이다. 한문글자 이름을 쓰지 말아야 할 까닭 가운데 하나다.
“韓國(한국)”을 닙뽕사람들이 “강고꾸”라 하고 중궈사람이 “한궈”라 하는 것은 우리가 한문글자를 쓰는 탓이다. 한글로 “한국”이라 쓴다면 저네들이 그렇게 읽을 수 없다. 그리고, 서울을 닙뽕 사람들은 “게이죠(京城)”라 부르고 중궈 사람들은 “한청(漢城)”이라 하는데 그네들이야 저들의 종놈나라(식민지) 때 입에 익은 이름을 부르고 싶겠지만, 우리가 떳떳하게 “서울”이라 부르라고 했다면 진작 고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적이 없을뿐더러, “경부선(경성-부산 선)”처럼 “京城(경성)”이란 이름을 스스로 쓰고 있으니 왜놈들도 마음놓고 “게이죠”라 하고, 서울특별시에서 만든 “중국어판 한국 관광 지도”에 서울을 “漢城(한성)”이라 써 놓았으니 중궈사람들도 “한청”이라 부른다.
이런 일은 우리가 줏대 없이 얼빠진 짓을 해서 불러들인 옰(당연한 결과)이지, 그네들이 “그들의 말을 따라 주체를 세워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몽골 대사관에서 저네 나라 이름은 “몽고”가 아니니 “몽골”로 불러 달라고 해서 우리는 곧바로 “몽골”로 고쳐 부른다.
닙뽕과 중궈에서도 한문글자를 쓰는 세 나라 이름만 그들의 말소리에 따라 부를 뿐, 다른 나라 이름은 모두 본디 나라 이름 소리대로 부른다. “구라파, 미국, 영국”은 중궈에서 서양말 소리를 따서 쓴(음차한) 이름이다. 유럽을 “歐羅巴(구라파)”라 쓰고 중궈에선 “어우로바”, 닙뽕에서는 “요로파”라 하는데 이는 도이칠란드 말 “오이로파”를 소리대로 쓴 것이다. “아메리카”도 한문글자로 “아미리가 국”이라 쓰고 “미” 자와 “국” 자를 모아 “메이 궈(미국)”라 하고, “잉글랜드”도 “영길리 국”이라 쓰고 “영” 자와 “국” 자를 모아 “잉 궈(영국)”라 읽는다. “메이 궈”나 “잉 궈”는 중궈에서는 제 바닥 소리대로 바르게 부르는 이름이지만 우리가 “미국”, “영국”이라 하면 터무니없는 이름이 된다.
닙뽕에서도 한 때, 이런 한자말 이름을 쓰면서 우리에게도 옮겨 주었지만, 이제는 모두 한자말 이름을 버리고 본디 이름 소리대로 “가나”로 쓴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남의 이름을 제 입맛대로 바꾸어 부르는 나라는 없다.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독일” 따위 한자말 이름은 우리만 알 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이름이다.
다시 말해서 이 따위 한자말 이름은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뿌리내린 것이 아니고, 우리말의 전통과 질서를 이어온 것”도 아니다. 한문 글자살이의 찌꺼기고 왜놈들이 억지로 심어 놓은 종살이 얼룩이다. 그것도 기껏 백 년 전에 들여와서 왜놈종살이 때 겨우 이삼십 년 남짓 쓰던 것인데, 요즘은 거의 다 본디 이름을 찾아 쓰고 겨우 네댓 나라가 남아 있다. 이제 곧바로 고쳐 하루바삐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닙뽕, 중궈란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온 국민이 닙뽕말이나 중궈말을 배워야 할 까닭도 없다. 몽골말을 알아야 “칭기즈 칸”이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프랑스 말을 몰라도 다들 “프랑스”라 한다.
또 한 가지, 우리말의 질서와 상식과 정신의 밑바탕을 뒤흔드는 것은, 우리말 속에 섞어 쓰는 남의말과 남의말을 바로 뒤친(직역한) 엉터리 말과 닙뽕말투, 서양말투를 흉내낸 남의말 말투지, 홀이름씨는 아니다. 홀이름씨는 그런 구실을 하지 않는다. 닙뽕사람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알아도 “소천순일랑”은 모른다. 중궈사람들도 “장쩌민”은 알지만 “강택민”은 모른다. 그 사람들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 이름, 땅 이름, 사람 이름 같은 홀이름씨는 좋거나 싫거나 바꾸어 부를 수 없다. 반드시 제 이름 소리대로 불러야 한다.
8. 마무리
우리말을 살리는 일은 힘도 들고 걸림돌도 많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먼데, 곳곳에서 발목을 잡으니 걸음은 더딜 수밖에 없고 마음은 답답하다. 그렇다고, 보람과 즐거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국어 순화”란 한자말 대신에 “우리말 바로쓰기”란 말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 우리말의 밝은 내일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ꔀ
<김 정섭 우리말 바로쓰기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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