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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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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7. 11. 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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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진통제는 예술이였다

자화상으로 본 미술과 고통의 방정식

《고통. 두렵다. 피하고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면…. 고통을 운명으로 짊어진 두 화가가 있다. 네덜란드의 빈센트 반 고흐와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 보통 사람들이 겪지 못한 심리적, 신체적 고통에 평생 시달렸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른 채 이들이 그린 자화상을 보면 그 고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21일 한자리에 모인 문국진(법의학) 고려대 명예교수, 권준수(정신과) 서울대 교수,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두 화가의 자화상에서 극심한 고통과 그 이면에 숨겨진 남다른 창조성까지 찾아냈다. 의학과 미술 전문가가 짚어 준 관람 포인트를 따라가 보자.》

○ 얼굴의 세부 구성요소에 주목하라

절친한 선배 화가인 폴 고갱과 크게 다툰 고흐. 괴로움을 참지 못해 스스로 자신의 귓불을 자르고 말았다. 고흐는 귀에 붕대를 감은 채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을 그렸다. 하지만 언뜻 보면 자화상의 표정이 그다지 괴로워 보이진 않는다.

문국진=“눈이 가운데로 몰려 있고 동공이 축소됐다. 안면 근육도 긴장돼 있다. 고갱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

전체적인 느낌이 아니라 얼굴의 세세한 부분을 관찰한 법의학자의 눈에는 자화상 속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인 것이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칼로. 오른쪽 다리가 나뭇가지처럼 마른 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18세 때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는 사고로 척추와 갈비뼈, 골반이 부러지고 자궁을 다치는 처참한 부상을 당해 평생 30번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척추 대신 쇠파이프가 박혔고, 못이 온몸을 찌르는데도 멀리서 본 자화상 속 칼로의 얼굴은 어째 무표정한 것 같다. 문 교수는 특이하게도 눈썹에서 고통을 읽어 냈다.

문=“치과 치료를 받는 환자는 입을 벌리고 있으니 아프단 말을 잘 못한다. 이때 노련한 의사는 눈썹을 보고 환자의 고통을 짐작한다. 아파서 이마를 찌푸리면 눈썹 사이에 있는 눈썹주름근이 수축하면서 눈썹의 안쪽 부분이 밑으로 당겨진다. 칼로의 자화상은 이를 표현하듯 눈썹이 일자로 붙어 있다. ”

○ 몰입하면 세로토닌 분비, 고통을 줄여 준다

이명옥=“고흐는 조울증을 앓았지만 화가로 활동한 약 10년 동안 자그마치 900여 점에 이르는 그림과 1700여 점이나 되는 스케치를 남겼다. ”

고흐가 그토록 그림에 몰입한 이유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해서였을 거라는 설명이 정신의학적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권준수=“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집중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베타엔도르핀, 세로토닌 같은 물질이 통증을 줄여 주기 때문이다. ”

칼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다. 그림에 몰입하면서 모진 신체적 고통을 조금이나마 잊으려 했을 것이다. 생존 본능이 미술로 나타난 셈이다.

문=“의학에서는 환자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면 자신의 괴로움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고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을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하는 ‘병적학’이라는 분야가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

○ 고통은 창조성의 원천이다

정신의학자들은 고흐의 뇌 중 특히 이마엽(전두엽) 영역을 주목한다. 뇌의 가장 앞부분인 이곳에서 남다른 창조성이 생겨났을 거라고 추측한다.

권=“은행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돈이라고 많이 대답한다. 그런데 창조성이 높은 사람은 감옥처럼 엉뚱한 걸 떠올린다. 은행을 턴 도둑이 잡히면 감옥에 가니 말이다. 직접적인 관계보다 좀 더 먼 연관관계까지 한 번에 생각하는 것이다. ”

이를 ‘분산적 사고’라고 부른다. 언뜻 보면 관계없을 것 같은 요소들을 조합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정신의학에서 분산적 사고는 몰입과 함께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권=“정신질환자의 20% 정도가 일반인보다 창조성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겪은 화가들은 분산적 사고력이 발전하고 그림에 몰입하게 됐을 것이다. ”

만약 고흐가 조울증 치료를 규칙적으로 잘 받았다면 창조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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