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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액제 카드에 숨어있는 비밀

또다른공간-------/생활속의과학

by 자청비 2008. 3. 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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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수학이야기](1)정액제 카드에 숨어있는 비밀
 
[경향신문] 
 

지난해 연재되었던 역사 수학 이야기와 예술 속 수학 이야기에 이어서, 이제부터 생활수학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수학은 생활과 떨어져서 고상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든 쉽든 우리 주변에 수학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 연재를 통해서 수학은 우리의 친구이고 수학을 잘 활용하면 우리의 생활이 좀더 풍요로워지고 좀더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면서, 생활 속 수학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우리 주변에는 전화카드, 철도카드, 고속도로 카드 등 일정한 금액을 내고 구입해서 사용하는 카드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 고속도로 카드를 보자. 고속도로 카드는 고속도로를 통행할 때 통행료를 내는 카드이다. 이 고속도로 카드는 판매 금액이 3만원이지만 2%인 600원을 할증해서 3만600원어치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1999년까지는 할증하는 것이 아니라 할인해 주었다. 당시에 3만원짜리를 구입하면 3%를 할인해 주었지만, 계산의 편리를 위해 10%로 생각하자. 예를 들어, 3만원 짜리 카드를 10% 할인해 준다면 3만원을 냈을 때 10%인 3000원을 거스름돈으로 돌려받고 그 카드로 3만원어치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10%를 할증한다면 이때는 3만원으로 3만3000원어치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할인제에서 할증제로 바꿀 당시, 공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주장했다.

⑴ 소비자 입장에서는 10%를 할인받다가 10%를 더 이용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⑵ 사용자 측에서는 거스름돈을 준비하고 이를 내주는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이다. 거스름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므로 사용자 측에서는 상당히 편리하고, 어쩌면 근무하는 사람의 수를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주장, 즉 소비자에게는 전혀 손해가 없는 제도일까? 먼저, 여러분이 생각해 보고 다음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10%를 할인해 주는 경우, 소비자는 2만7000원으로 3만원어치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면 소비자의 1원은 (원)의 가치가 있게 된다. 그러나 10%를 할증해 주게 되면 3만원으로 3만3000원을 이용하게 되므로, 소비자의 1원은 (원)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할증제는 할인제보다 1원당 0.011원의 손해를 주는 셈이 된다. 아주 적은 돈인 것 같지만, 한 달에 한 번씩 3만원의 고속도로 카드를 구입하는 개인의 경우에 새 제도 때문에 1년에 (원)을 더 지불하게 되는 셈이고, 국가적으로 보면 그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인이 할증으로 변하면서 생긴 소비자의 손실인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 종종 생긴다. 예를 들어, 원가가 10만원인 물건에 10% 이익을 붙여서 정가를 정했다고 하자. 그런데 물건이 잘 팔리지 않아서 정가의 10%를 할인했다. 그러면 손해일까, 이익일까? 아니면 본전일까?

 

10%의 이익을 붙이면 정가는 11만원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10%를 할인하면 (원)이 되므로 물건을 팔 때마다 1000원씩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순서를 바꿔서 10만원짜리 물건을 10% 할인해서 팔다가 다시 10%를 더 올렸다고 해 보자. 이 경우에는 (원)이 되므로 역시 물건을 팔 때마다 1000원씩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같은 퍼센트로 할인하고 할증하면 본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얼마의 10%인가’와 같이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우리가 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많이 있으며, 위의 예에서와 같이 얄팍한 속임수에 속지 않고 우리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도 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된다. 인간은 숫자를 들먹이며 주장하는 사람에게 약한 법이다. 그런 주장에 무조건 수긍할 것이 아니라 간단히 계산해 보도록 하자.

 

위의 예와는 약간 다르지만, 이중할인율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중할인이란 ‘20% 할인 가격을 다시 30% 할인해준다’는 것과 같은 것인데, 미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장사 수단이다. 얼핏 생각하면 50%가 할인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예를 들어 1만원짜리가 20% 할인되면 8000원이 되는데, 여기서 다시 30%가 할인되면 5600원이 된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44%가 할인되는 것인데, 50%가 할인되는 것처럼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잘 생각해보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 강문봉 교수 | 수학과 문화 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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