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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들 ‘암호같은 영문약자’ 이름 짓기

세상보기---------/조리혹은부조리

by 자청비 2008. 10. 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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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K… SJM… S&TC… EX… aT… 무엇하는 회사인고?

 

한국기업들 ‘암호같은 영문약자’ 이름 짓기
코스피 상장 705곳중 99곳이 영문약자 사용
외국계 기업들 ‘한국 현지화’ 노력과 비교돼

한겨레  

“‘브로드밴드’는 뭣이며, ‘see the unseen’은 또 뭔지 좀 알려주세요.” 최근 인터넷 포털들의 지식문답 코너에는 이런 질문들이 여럿 올라왔다.

‘SK broadband - see the unseen.’ 하나로텔레콤이 지난달 22일 ‘SK브로드밴드’로 이름을 바꾼 뒤 전개하고 있는 기업 이미지 광고다. ‘광고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지적에 대해 이 회사 관계자는 “영문 슬로건에 대해 내부 지적도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보편적으로 쓰는 게 확산됐다”며 “‘못 보던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지향하며 고객에게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철학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만 유별난 건 아니다. BHK, CJ, GS, KCC, KT, LG, LS, NHN, SK, SJM, S&TC, STX… 등등. 기업 규모와 업종에 관계없이 회사 이름을 영어 약자로 바꾸는 현상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705곳 중 영어 약자를 기업명으로 채택한 회사는 14%인 99곳에 이른다. 이들 중 35곳은 아예 영어 약자로만 기업명이 이뤄져 있어 암호를 방불하게 한다. 코스닥 시장의 상장법인 1036곳 가운데 영어로 된 기업은 280곳(27%)이다.

 

이런 추세는 고객과 사업현장이 국내인 공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도로공사는 EX로, 농수산물유통공사는 aT로, 한국수자원공사는 K-Water로 기업 이미지 로고를 바꿨다. 이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과 대조된다. 마이크로소프트코리아는 2003년 회사 이름을 한국마이크로소프트로 바꿨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보다 한글이 친근하고 좋다는 판단과 현지화 전략에 따른 것이다. 한국아이비엠, 한국휴렛팩커드, 올림푸스한국 등도 한국화 시도를 확대하는 추세다. 독일계 생활용품 기업인 헨켈은 소비자들에게 회사 이름을 널리 알리고자 한글 기업명을 영문 로고 옆에 적는 방식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적용했다. 헨켈코리아 파루크 아리그 사장은 “한국의 현지화 로고는 모범 사례로 선정돼 헨켈의 다른 나라 사업장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들의 토착화 노력은 회사 이름에‘한국’을 덧붙이는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용어 전문가를 두고 컴퓨터와 정보통신 용어의 한글화 및 표준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열기’ ‘닫기’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즐겨찾기’ ‘바로가기’ 등은 이 회사 제품에 적용한 용어이지만, 이후 한국 컴퓨터 관련 제품의 표준용어로 정착했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에 글로벌 이미지는 중요하다. 제일기획의 기업이미지 전문가인 남상민 마스터는 “글로벌화의 진전과 사업영역 확대로 인해 외국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이미지 개선을 위한 영문 시아이(CI)가 필요한 것은 현실”이라며 “다만 소비자에게 저항감 없이 안착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광고계에서는 LG, SK를 성공한 사례로, NH농협과 IBK기업은행을 그렇지 못한 사례로 본다. ‘선경’이란 종전의 그룹 명칭은 섬유회사 이미지를 풍겨 주력업종인 석유화학과 이동통신을 아우르지 못했는데, SK라는 새 이름은 소속감을 높이고 바깥으론 그룹의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국내 영업을 위주로 하는 농협과 기업은행은 NH, IBK라는 영문 약어로 바꿨지만, 이 약어의 개념을 소비자가 알기 어렵다는 점이 ‘실패’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글문화연대 정책위원인 이건우 아리수미디어 대표이사는 “아이비엠, 지이, 지엠 등 세계적 기업의 영향력 때문에 영문 약자 기업명을 쓰는 게 유행이라고 보는데, 이들 기업은 이름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니다”라며, “기술로 성공한 뒤 긴 이름을 줄이려 한 데서 비롯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말글을 파괴하는데다 뭐 하는 회사인지 이름에서 알 수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이름으로 국제무대에서 자기 정체성을 알리고 변별력을 지닐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과자 이름 조차… 한글 푸대접

아이들이 쉽게 접하는 과자 이름의 절반 정도에 외국어가 사용돼 외국어 오염이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체불명 속어를 사용한 과자 이름도 많아 아이들의 모국어 교육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글날(9일)을 앞두고 8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원사로 등록된 제과업체 홈페이지에 소개된 과자 제품 449건의 이름을 분석한 결과 54.6%인 245건에 영어 등 외국어가 포함된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어·외래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한글로만 된 과자 이름은 31.2%에 불과했다.

업체들은 제품의 모양이나 맛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운맛은 '핫'으로, 우유 맛은 '밀크', 땅콩 맛은 '피넛(피너츠)' 혹은 '너트', 벌꿀 맛은 '허니' 등으로 표현했다. 또 나뭇잎 모양은 '립'으로, 막대기 모양은 '스틱', 고리 모양은 '링', 공 모양은 '볼' 등의 영어단어를 사용했다.
 
특히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지만 영어를 쓰는 사례가 많았다. 한 상품에 여러 가지 맛이 있으면 제일 먼저 나온 과자에 '오리지널', 원본보다 작은 크기로 만든 제품에는 '미니' 등으로 외국어를 남용하고 있었다.

건전한 언어습관을 해치는 정체불명의 과자이름도 눈에 띈다. '짱!셔요', '캡짱', '멜짱' 등은 최고 혹은 일등을 뜻하는 속어 '짱'이란 단어를 사용했으며, '컵앤즐', '빠베시', '꼬깜', '츄앤씽' 등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이름도 많았다.

반면 제품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재치 있게 만든 한글 과자 이름에는 '자갈치', '별따먹자', '고향집 누룽지', '감자랑 또 다른 만남', 등 정도가 눈에 띄었다.

조사대상은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원사 중 과자류를 판매하는 13개 업체 제품이며 업체가 스낵, 비스킷, 파이, 캔디, 껌, 토이제과류 등으로 분류한 제품을 분석 대상으로 했다. 음료수와 빙과류는 포함하지 않았다. 과자 이름 중에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영어 등 외국어가 사용된 제품을 분석했고 다만 크래커, 파이, 와플, 케이크, 웨하스, 초콜릿(초코) 등 외래어를 사용한 것과 체리 등 과일 이름은 제외했다.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정책위원은 "과자를 주로 접하는 나이의 아동들은 곱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많이 접하고 배워야 할 시기인데도 외국어를 남발하는 과자 이름 때문에 우리말보다 외국어를 더 친숙하게 여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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