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80년간 과거 숨기고 산 '전설의 女가수'
18세에 '황성옛터' 부른 이애리수 생존 확인
1932년 빅타레코드에서 발매한‘황성옛터’ 음반
(왼쪽 사진)과 음반 발매 당시의 이애리수.
결혼과 함께 모습을 감춰 이미 세상을 뜬 것으로 알려졌던 ‘황성옛터’ 의 가수 이애리수 여사. 한창
활동할 당시 모습(왼쪽)과 고령이어서 휠체어에 의지해 지내고 있지만, 병원에서 “110세까지 사시
겠다”고 진단할 만큼 정정한 현재 모습.
1928년 가을, 극단 취성좌(聚星座ㆍ후에 조선연극사로 개칭)의 공연이 열리던 서울 종로의 단성사. 공연 중간 소위 '막간(幕間) 무대'에 앳된 모습의 여가수가 등장했다.
<가사>
황성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여 있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못이루어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나는 가리로다 끌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어도
아 괴로운 이 심사를 가슴 깊이 묻어놓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느린 3박자의 리듬에 단음계로 작곡된 한국 최초의 가요곡. 1932년 최초의 취입레코드 라벨에 인쇄되었던 곡명은 <황성의 적(跡)>이었다. 영천출신의 시인 왕평(王平)이 노랫말을 짓고, 개성출신의 작곡가
전수린(全壽麟)이 곡을 붙이고, 배우가수 이애리수(李愛利秀)가 애잔하게 부른 황성옛터’는 지금도 사랑받는 ‘민족가요’이다.
전수린이 1928년 고향 송도(松都)에서 고려의 옛 궁터를 보고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작곡하였다. 전수린의 첫 작품으로 신파극단 취성좌(聚聖座)의 서울 단성사(團成社) 공연 때 여배우 이애리수가 막간무대에 등장하여 이 노래를 불러 크게 유행하였다.
오바마 미대통령당선자 당선연설 (0) | 2008.11.09 |
---|---|
‘미수다 100인’이 우리에게 던진 3가지 (0) | 2008.11.03 |
“달리는게 행복해서…” (0) | 2008.09.26 |
노르웨이 여행3 (0) | 2008.09.19 |
노르웨이 여행 2 (0) | 2008.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