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연행자들 “검찰이 처분 거래”
기소유예 조건으로 '법률 체험' 이수 권고
"양심 자유 침해" 반발…권한남용 주장도
[한겨레]
검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거리시위를 벌이다 연행된 시민들을 기소유예 처분하는 조건으로 '법률 체험 프로그램' 이수를 권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들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검찰의 무리한 요구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 조사를 받은 서아무개(29)씨는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해줄 테니 대신 법률 체험을 이수하라는 제안을 했다"며 "당시 조사관이 '아무나 해주는 건 아니고 반성하는 기미가 있는 사람한테만 해주는 것이니 이수를 하라'고 말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을 인정하고 법률 체험을 이수하면 양심에 어긋날 것 같아 제안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서씨는 지난 6월 25일 서울 경복궁역 앞 인도에서 벌어진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기자회견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최아무개(26)씨도 최근 검사로부터 같은 제안을 받았다. 최씨는 "지난 9일 조사를 받을 때 법률 체험에 참석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제안을 받았다"며 "참석하지 않으면 다시 기소하겠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이수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씨는 법률 체험을 이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24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최씨는 "이미 (검찰이) 내가 죄가 없다는 판단을 해놓고도 스스로 죄를 인정하게 하도록 미끼를 던진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최씨는 지난 6월1일 삼청동 일대 도로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사람을 빼내려다 함께 연행됐다.
법무부가 운영하고 있는 법률 체험은 집시법과 관련해 교통방해나 경제 손실에 미치는 영향 등과 함께 기초 법질서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이다. 최근 촛불 연행자 20여 명이 검찰로부터 법률 체험 참여 권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종웅 변호사는 "처벌 수위를 조건으로 내걸어 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권한을 검사가 임의로 남용하는 것은 문제"라며 "위법적인 것은 아니지만 피의자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에게 법률 체험 프로그램을 이수하라고 강요한 것은 촛불을 들었던 게 잘못됐다는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과 똑같다"며 "양심의 자유를 왜곡하고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촛불연행자모임카페 누리꾼 운영자 노멀라이저(25)씨는 "죄가 없다면 불기소 결정을 해야지 왜 시민들을 상대로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검찰이 법원에서 (기소가) 기각될 것 같으니까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 국민수 2차장은 "법률 체험 프로그램은 법무부에서 몇 달 전 만든 것인데 피의자들이 처벌을 받기 전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며 "강요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6월에도 경찰이 집회에 참여한 일부 청소년에게 훈방을 조건으로 '집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강요해 논란이 일었다.
☞ 기소유예란?
'죄를 범한 혐의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검사의 처분' 이다. 죄가 있다고 인정하지만 처벌은 하지 않는 최소의 형량이다. 이러한 기소유예를 인정하는 입법주의를 '기소편의주의'라고 한다. '기소편의주의'는 형사정책 면에서 합목적적인 사건처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기소독점주의'와 결부돼 정치적으로 남용할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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