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일까. 기부천사 문근영에 대한 악플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문근영의 기부소식이 알려진 이후 달리기 시작한 악플은 이전에 다른 여자 연예인에게 가해졌던 악플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단순한 악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도를 넘는 악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던 일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지난달초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했던 배우 최진실이 악플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007년에도 배우 정다빈과 가수 유니 등 여자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지거나 고통을 받는 일이 잇따라 빚어져 악플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그러나 악플러들은 전혀 물러설 줄 몰랐다. 악플로 인해 죽음에 이른 고인에 대해서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는 잔인성을 보였다. 익명성 뒤에 숨어 비겁한 가학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런데 문근영을 둘러싼 악플은 지금까지 상습적으로 악플을 다는 네티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악플들을 보면 문근영의 집안내력을 들춰내 빨간색으로 덧칠한 뒤 그녀와 관계된 혹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세력에게 빨간색칠을 하려들고 있다. 이런 악플러들의 의도는 지만원이라는 한 극우보수주의자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지씨는 "문근영을 기부천사로 만드는 것은 좌익세력의 심리전"이라고 주장했다. 지씨는 또 문근영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주인공 신윤복까지 들먹이며 "신윤복 띄우기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자를 띄워서 기존의 정통사관을 뒤집는 것이며, 사회 저항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기득권에 저항하는 민중의 저항을 아름답게 묘사하려는 것이며 국가를 뒤엎자는 정신을 불어 넣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지씨는 예전에 백범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했던 사람이다.
지금 문근영의 악플러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의 선행이 아니라 핏줄이다. 빨갱이 할애비의 손녀딸이라 불순하다는 것이다. 또 문근영이 DJ의 정치적 고향인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도 혐오의 대상이다. 전라도는 무조건 싫고 좌빨의 자식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문근영은 티내지 않기 위해 조용히 거액을 기부했다가 들통난 죄로 가족사까지 들춰지며 인터넷에서 마녀사냥을 당할 판이다.
16~17세기에 유럽사회를 광기에 휩싸이게 했던 마녀사냥은 15세기 이후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으로 분열되었던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됐다.- 당시 가톨릭과 귀족세력 등 지배계층들은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았다. 당시 유럽사회는 종교전쟁, 30년 전쟁, 악화되는 경제상황, 기근, 페스트를 비롯한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 있었다. 지배계층은 이렇게 피폐해져가는 상황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불순한 사람들인 마녀들의 불길한 행동에서 찾아냈다.
마녀사냥은 개인적·집단적으로 사회가 분열되고 개인간 관계가 파국에 이르렀을 때 나타났다. 당시 지배계층은 개인간의 분쟁을 악마적 마법의 결과로 해석하고 공동체의 희생양으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해 자백을 끌어냈다. 자백하지 않는 자에게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심문과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이같은 마녀사냥은 극적이고 교훈적인 효과 덕분에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갔고,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켰다. 이처럼 악마와 마법 그리고 마녀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신념은 가톨릭 신부를 비롯한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었다.
마녀사냥이 가톨릭 이외의 어떤 사상과 움직임도 용납할 수 없었던 중세사회에서 대다수 민중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마녀라는 이름의 희생양을 통해 대리 해소하는 동시에 사회통합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녀사냥은 지배계층들의 훌륭한 체제유지수단이 되었다. 마녀사냥의 주된 공격대상은 과부 즉 여성이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이란 원죄로 각인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쳐 광란을 연출하였던 마녀재판은 18세기에 르네상스의 진전과 더불어 점차 사라졌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과학이 신학에서 벗어나고 문화적 다양성과 이성적 세계관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불합리의 극치인 마녀재판도 존립 근거를 잃어갔던 것이다.
지금 문근영에 대한 악플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지금 이 악플은 단지 비뚤어진 일부 네티즌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레드컴플렉스에 젖어 증오와 적대감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필연적 부산물이다. 문근영에 대한 악플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반공이데올로기와 색깔론을 답습하고 맹신하면서 추종하는 자들의 폭력성과 무조건적인 종속성, 파괴성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오늘날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친미를 앞세우고 이승만을 추모하며 백범 김구를 우습게 여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교과서를 뜯어고치게 하고 전교조를 비롯한 모든 노동조합을 빨갱이로 몰아부치고 이제는 남모르게 어려운 이웃을 도와왔던 여자연예인에게까지 반공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사회적 희생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2005년 5월 진중권 대 지만원 CBS토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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