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29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낮춰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비관적인 전망을 낸 이유는 세계 경제 침체의 골이 애초 예상보다 훨씬 깊다는 데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0.5%에 그치는 사실상의 제로 성장에 머물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0.5%의 성장률 전망치는 이 기구가 지난해 11월24일 내다본 2.2%에서 1.7%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 경제권의 소비가 크게 줄어들고, 이는 전세계 교역규모의 축소로 이어져 한국 같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한테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주게 된다는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아시아 4개국의 올해 평균 성장률을 -3.9%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대만과 싱가포르의 성장률은 -4%대, 한국과 홍콩은 -2~-3%선 성장을 예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 후퇴를 겪는 미국·유로권·일본보다 경기침체의 골이 더 깊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은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감소를 뜻한다. 즉 투자와 민간소비, 수출은 물론 고용도 줄어들어 국민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된다.
정부는 일부 외국의 대형투자회사들과 신용평가기관에 이어 공신력 있는 국제통화기금까지 마이너스 성장 전망을 내놓자 크게 당황하고 있다. 당장 올해 3% 성장을 목표로 마련한 재정운용 계획을 고쳐야 할 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지하 별관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경제상황의 불확실성이 계속 커지고 있는 만큼 성장률 전망치 등 수치에 집착하지 말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사전에 치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선제적 정책대응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공일 대통령 경제특보는 “예전에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던 사람들도 최근 비관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국제통화기금의 권고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다. 기금은 그동안 세계 각국에 공격적인 재정지출 확대를 촉구하며 “이대로 가면 세계 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이번 보고서에서도 “전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의 폭넓은 여러 조처들에도 불구하고, 금융부문의 경색이 극심해 실물경제를 끌어내리고 있다”며 “안정적인 경제회복은 은행부문의 구조조정과 신용경색이 완화할 때까지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랑샤는 “우리는 지금 사실상 세계경제가 (성장을) 멈출 수 있다고 전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세계경제의 축인 미국과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5개국)은 각각 -1.6%, -2.0%의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은 -2.6%로 성장 후퇴 폭이 더 크고, 중국도 중국 정부가 목표로 삼는 8%에 못미치는 6.7%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날 “세계 경기 후퇴가 올해 실업률의 극단적인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며, “최대 5천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