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그 더 도그(Wag the dog)
<한겨레>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왜그 더 도그’(Wag the dog)라는 경제 용어가 있다. 현물시장의 위험을 보완하려고 나온 선물시장이 거꾸로 현물시장을 흔들어대는 현상을 말한다.
로버트 드니로와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1997년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10여일 앞둔 어느 날, 대통령이 백악관을 견학온 한 학생을 성추행한다. 재선이 어렵게 되자 백악관은 여론을 돌리려고 애꿎은 알바니아를 지목해 적대국으로 포장하고 국민에게 반알바니아 정서를 부추긴다. 언론은 폭격기 전진배치, 군 주둔지 이동 기사로 연일 도배된다. 예상대로 성추행 사건(몸통)은 무마되고, 국민의 관심은 거짓 전쟁(꼬리)에 쏠린다. 야당의 반격이 거세지자 이번엔 전장에 억류된 ‘전쟁 영웅’을 꾸며낸다. 여론은 다시 ‘구출 작전’으로 돌아선다.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다. 영화가 상영된 뒤, 한 전직 백악관 간부는 현실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엄 촘스키의 공저 <여론 조작>은 한 몸인 정치와 여론 조작의 실상을 보여준다. 1980년대 초 미국의 눈엣가시였던 좌파 정권의 니카라과 선거는 비교적 공정하게 치러졌지만 미국 정부와 언론에 의해 순식간에 엉터리 선거가 됐다. 친미 과테말라의 선거는 살인·폭행 등 공권력에 의한 무자비한 테러가 자행됐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일보 전진’으로 포장됐다. 1990년대 세르비아의 코소보 알바니아인 학살은 무자비한 만행으로, 같은 시기 친미 인도네시아 정부의 동티모르인 대량 학살은 지역분쟁 정도로 묘사됐다.
뭐든 마음먹은 대로 장악하는 권력이라면 어설픈 꼬리질로도 몸통(국민)을 흔들 수 있다. 요즘 무력한 몸통은 속상하다. 민심을 이리도 가벼이 다루는 권력의 사악함에. 썩은 꼬리 잘라내지도 못하는 우리의 나약함에.
반체제와 반정부
<한겨레>
“체제전복 세력에겐 정치가 침투 대상 ….” 체제전복 세력?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다른 쪽에선 “정부전복 세력에 의해 또다시 도심이 마비될 …”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체제전복 세력’ 운운한 원세훈씨가 국가정보원장이 됐으니, ‘북한의 사주를 받고 정치권에 침투해 암약해 온 간첩단 일망타진!’이란 기사가 지면을 장식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모든 게 20~30년 전으로 되돌아 간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되고, 그런 행위에는 반정부·반체제 책동이란 딱지가 붙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반대를 위한 반대’ 정도로 점잖게 꾸짖는다. 하지만, 그 뜻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경찰이나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은 이들에게 ‘체제전복’ ‘정부전복’이란 올가미를 씌울 것이다. 이제 정부 정책에 반대하려는 사람들은 반체제·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힐 각오까지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행태와 정책에 반대하는 게 반체제·반정부인가? 이 말들이 무얼 뜻하는지 한번 따져볼 일이다.
반체제란 말 그대로 기존의 정치·사회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국가 체제에 반대하거나 그 체제를 뒤엎기 위한 활동 등을 말한다. 반체제 인사로 널리 알려진 사람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다. 그는 당시 옛소련의 공산독재 체제에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미국으로 추방됐다. 공산 정권이 무너진 뒤에야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반체제 인사다.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반체제 또는 체제전복 활동은 민주공화정을 부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 정부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부정하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며,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반대자들이 ‘체제전복 세력’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자체가 바로 민주공화정을 부정하는 ‘반체제 조직’이 아닌가.
정부가 국민이 합의한 국가 체제를 훼손하거나 파괴하고 있을 때 구성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당연히 그런 정부의 행태와 정책을 견제하고, 반대하고, 저항해야 한다. 그것은 구성원들이 합의한 국가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당연히 필요하고, 국민으로서의 의무다. 국체를 부정하는 행위를 일삼는 정부에 대한 ‘반정부 활동’은 그래서 정당하다.
우리는 종종 반체제와 반정부가 혼용되는 경우를 본다. 민주공화정을 지키려는 반정부 활동이 되레 반체제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이는 ‘정부’와 ‘체제’를 동일시하는 잘못에서 비롯된다. 체제는 정부보다 상위 개념이다. 이명박 ‘정부’는 5년이란 제한된 기간에 민주공화국이란 ‘체제’ 아래서 국정을 운영하도록 위임받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자신을 곧 민주공화국이란 체제 자체로 상정한다. 그러고는 반정부를 곧 반체제로 몰아붙이려고 한다. 사회적 갈등의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다.
이명박 정부 취임 1년이 돼 간다. 지난 1년 우리 사회의 갈등이 증폭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정부가 ‘경제 살리기’란 이름 아래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반체제로 몰아붙여 탄압하려 할 게 아니라 이 정부가 일탈한 궤도에서 제자리로 되돌아 오는 게 사회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그러지 않으면 민주공화국이란 국체를 지키기 위한 반정부 활동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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