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교향곡 - 드보르작
by 자청비 2009. 6. 27. 20:23
Symphony No. 9 "From the New World"
by Antonin DvorakWiener Philharmoniker.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1st movement
2ndmovement(part 1)
2ndmovement(part 2)
3rd movement
4th movement
카네기홀에서 펼쳐진 초연 대성공을 거두다
1983년 12월 16일 뉴욕 헤럴드 신문은 "미국 역사상 중요한 날"이라고 썼다. 좀 더 냉철한 기자는 "주제는 니그로의 선율, 작곡은 보헤미아인, 지휘는 헝가리인, 연주는 독일인, 홀은 스코틀랜드인, 청중과 비평가의 1/3은 미국인 …"이라고 말했다.
그날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초연돼 대성공을 거둔 것은 안톤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였다. 제2악장은 '귀로(歸路)'라는 타이틀로 아마 학창시절 학교 교정에서 해가 질 무렵이나 명절 때 간간이 들어본 적이 많을 것이다. 드보르작은 체코의 프라하 근교 출생으로 그 당시 뉴욕 내셔널 음악원의 원장이었다.
제2의 파리음악원을 목표로 설립된 내셔널 음악원은 1만5천 달러라는 연봉으로 그를 맞이했다. 이 금액은 프라하 음악원 연봉의 10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아직도 요원한 개발 도상에 있어 유럽의 흉내를 내고 있을 단계였다. 미국의 독자적인 음악의 발전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를 맞이함으로써 미국의 국민 음악 탄생을 기대하고 있었다.
남부 보헤미아에 있는 작은 별장에서 작은 새들을 많이 사육하고 있던 드보르작은 빌딩이 늘어선 뉴욕의 아름다움과 청결함에는 감탄했지만 경쟁적으로 명사를 초대하는 사교계에는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센트럴파크 동물원을 찾아가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또 그는 음악원의 학생으로 나중에 흑인 영가의 편곡가로서도 알려진 바레로부터 흑인 영가를 알게 되고 미국 남부에 전해져서 대농원으로 불려지고 있던 흑인의 노래를 듣고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1년이 되어갈 무렵 그는 한 곡의 교향곡을 작곡한다. 그 곡에는 흑인 영가풍의 주제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멜로디가 들어 있다. 그러나 완성된 당초에는 이 교향곡에 이름은 붙여져 있지 않았다.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인 자이도르에게 악보를 건네기 직전에 '신세계'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그 자신은 "신세계는 미국의 인상과 이곳으로부터의 인사라는 이외에 중요한 뜻은 없다.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선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특징을 구현한 주제를 발전시켰다"라고 말하고 있다.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자크 Antonin Leopold Dvorak(1841~1904)은 체코 프라하 인근 넬라호제베스 태생. 낭만주의 시대의 활동한 체코의 작곡가로, 관현악과 실내악에서 모국의 보헤미안적인 민속 음악적 작풍과 선율을 표현하였다. 스메타나에 의하여 확립된 체코 민족주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만든 음악가이다.
16세 때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하여 2년 후 에 졸업을 하였다. 그러나 드보르작으로서는 이 학교 교육보다는 당시 작곡가 겹 지휘자였던 카레르벤들 과의 교우에 의해 얻어진 것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는 대단한 노력형으로 생활고와 싸우면서 착실히 공부했다.
그의 초기의 작품은 고전적인 견실한 기초위에 민족적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후에 스메타나에게 인정되어 더욱 민족주의에 기울어 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스메타나의 음악을 모방하지 는 않았으며 민족적인 감정을 개성적인 입장에서 표현하였다. 드보르작은 스메타나처럼 세련미는 없지만 소박하고 생기에 차 있을 뿐더러 박력과 정열이 넘친다. 그의 음악가로서의 영감은 슈베르트에 비할 만큼 풍부하고 자연적이며 항시 발랄한 음악성이 충만되어 있다.
그의 작품중에서 가장 드보르작의 특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교향곡과 실내악이다. 특히 9 개의 교향곡은 견실한 고전적 구성으로써 체코적 감정을 노래한 근대 체코 교향곡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1890년 드보르작은 프라하 음악원에서 작곡 이론 등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1892년 51세때 뉴욕 국민음악원 원장으로 초청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때 나온 작품이 유명한 '신세계교향곡', 현악4중주곡 '아메리카' 등이다.
1895년 귀국한 그는 작곡과 교육에 전념했으며, 1901년엔 빈의 종신 상원의원으로 귀족이 되었고, 같은 해 프라하 음악원의 원장이 되는 등 독립 전 체코의 문화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으나 1904년 뇌일혈로 사망했다. 그는 이른바 귀재형의 음악가는 아니었으며 굳이 말하자면 평범 속에 위대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스메타나에 의해 확립된 체코의 민족주의 음악이 처음으로 세계적으로 발전한 것도 드보르작의 공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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