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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비타

힘들고지칠때------/영화또보기♣

by 자청비 2009. 10. 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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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 - Evita

 

 

Madonna - Don't Cry For Me Argentina From the Musical "Evita"

 

감독 앨런 파커
배우 마돈나/안토니오 반데라스/조나단 프라이스
장르 드라마 / 뮤지컬 1966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시간 134 분
국가 미국 / 아르헨티나  

 

 

줄거리 

아르헨티나 시골 한 농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 마리아 두아르테(마돈나)는 박대받는 농촌생활을 벗어나 도시로 탈출한다. 그녀는 나이트 클럽의 댄서, 라디오 성우 등을 하면서 많은 남자들을 유혹해 출세를 위한 야망을 키운다. 1944년 에바가 영화배우로 첫 발을 내디딘 때, 그녀는 지진 때문에 생긴 난민 구제 모임에서 노동부 장관 후안 페론(조나단 프라이스)과 만나 사랑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할 무렵, 후안 페론의 정치력이 확장되는 것에 불안을 느낀 권력기관에서 그를 체포한다. 이 사태는 페론 석방 운동을 불러일으켜 민중혁명으로까지 이어져, 후안 페론은 대통령으로 추대된다. 에바는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낸다. 이에 에바는 부통령 후보로까지 추대되지만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 말기 진단을 선고 받는다. 마침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비탄어린 통곡 속에 장엄하게 치루어지고, 잊혀지지 않는 에비타의 신화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잡는다.


이 영화는 실제 아르헨티나의 여성지도자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영화다. 가난한 시골 소녀에서 나이트클럽 가수와 정치가의 정부를 거쳐 파시스트 정권의 지도자 후안 페론과 결혼하며 스타 정치가가 된 그녀. 그러나 '거룩한 창녀, 천한 성녀'라고도 불리는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한다. 이 영화의 감독 앨런 파커 역시 에바 페론이라는 인물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듯하다. 앨런 파커 감독은 에비타를 마치 '신데렐라'처럼 묘사하고 끝내 태생적인 한계를 넘지 못하고, 에비타를 영웅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민중지도자 체(안토니오 반데라스)를 통해 영화 내내 화려한 에비타의 삶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에바 페론(Eva Peron, 1919-1952)

1919년 아르헨티나의 대초원(팜파스)의 시골 마을 로스 톨도스(Los Toldos)에서 농장 주인과 농장의 요리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에바의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던 농장주와의 사이에서 다섯명을 낳았는데 에바는 그 중 네번째 아이였다. 설움이 많이 받던 에바 두아르테는 15세 때 옷 가방 하나만을 달랑 들고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무작정 상경한다. 그리고 그녀는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나이 25세 때 그녀보다 나이가 2배 가량 많았던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한동안 밀회를 즐기다가 곧 두 사람만의 은밀한 방을 구해 장기적인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에바는 후안 페론에게서 미래의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 출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친독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의 반정부 진영을 고무하면서 민정 이양을 요구하도록 했다. 그 결과 파렐 발카르세 정권은 민정 이양을 약속하고, 강경파였던 후안 페론을 구금한다.


후안 페론이 연금당하자 타고난 미모와 달변을 가진 에바 페론을 비롯한 페론의 추종 세력들은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페론 석방운동을 벌였고, 밤낮없이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사주하여 마침내 노조 총파업을 유도해내면서 후안 페론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해준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준 정부(情婦) 에바에게 새삼 사랑과 신뢰를 느낀 후안 페론은 죽는 날까지 함께 하기를 맹세하고 결혼한다.


페론은 1946년 2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54%의 지지를 얻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페론은 기존의 지지 세력이던 군부·교회는 물론 노동조합의 지지까지 확보하고, 노조 지도자 등 각 부문별 이익 집단의 대표들을 각료로 기용하는 등 집권 초기 강력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페론은 집권 후 페론주의를 내세우며 외국자본의 추방, 기간 산업의 국유화 등을 추진하며 자립노선을 추구했다. 또한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노동 입법 추진, 노동자 생활 수준 향상, 여성 노동자의 임금 인상 및 여성 시민적 지위 개선, 친권과 혼인에서의 남녀 평등의 헌법 보장, 이혼의 권리를 명시한 가족법 추진, 여성의 공무담임권 획득 등이었다. 그는 취임 후 5개년 계획을 수립, 공공사업·교육 개혁·사회 개혁 등을 추진했다.


에바 페론은 국가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수많은 일들을 초인적으로 처리해갔다. 수없이 많은 노동자, 빈민, 여성들을 만났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었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그들을 조직화하여 남편의 정치적 동지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의 악화는 더이상 소외계층의 근본 모순은 방치한 채 임시방편의 사회복지정책으로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그리고 이런 악조건 하에서 고군분투하던 에바 페론은 1952년 척수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쓰러지고 만다. 이때 그녀의 나이 34세였고, 후안 페론을 만난지 10년만의 일이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큰 국장으로 한달간 성대하게 치러졌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은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라고 일컬어졌다. 그녀는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 못가진 자들을 위해 초인적인 봉사와 헌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자·빈민계급을 마취시켜 아르헨티나의 독재에 봉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녀는 가진 자에게는 더할 수 없이 표독한 영부인이었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자상한 나라의 어머니였다. 많은 학자들이 그녀의 이런 모순된 삶의 동력을 그녀의 출생과 살아온 경로가 순탄치 않았고 그 와중에서 그녀 역시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가슴에 아로새긴 탓이라고 보고 있다. 어쨌든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에비타 에바 페론의 아름다운 환상에 젖어 있는 동안 아르헨티나는 새로운 개혁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을 잃어 버렸고, 뒤이어 들어선 군사 정권들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엄청난 유혈을 강요하며 개혁의 동력이 될 비판적 세력들을 궤멸시켜 버렸다.

 

Sarah Brightman

 

Olivia Newton John

 

Elaine Pa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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