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자가 여러분들에게 필자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한글’이다. 보안칼럼에 느닷없이 등장한 이 ‘한글’, 어떤 언어보다도 아름답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인정받고 있다. 최근 소수민족이 사라져가는 자신들의 토착어를 지키기 위해 한글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을 때에는 “아니, 한글이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된다고?”하는 의문을 가질 만큼 기쁘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날은 10월 10일인데 어제가 한글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의미 없이 넘어갔던 듯 하다. 한글이 만들어진 지가 벌써 563돌이라고 한다. 한글날을 맞이해 문득 그 동안 필자가 써온 글들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컴퓨터와 관련된 주제의 글이다 보니 외래어를 많이 사용했었다. 물론 컴퓨터와 관련된 기술들이 대부분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보니 영어로 된 것이 많았고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사용한 것이다.
쉽게 의미 전달할 한글 전문용어 부족
피싱, 파밍, 트로이목마, 키로거, 다운로더, 루트킷, 스팸 등 이러한 용어들은 보안 쪽에 관심이 있는 사용자라면 익숙하게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단어들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이런 단어를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그렇다고 한글로 표현하고자 하니 딱히 적당한 단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한글로 표현하면 이해는 좀 더 쉬워질 것이다. 키로거는 키보드 입력 유출 프로그램, 스팸은 광고성 메일, 피싱은 개인정보 유출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물론 한글로 위와 같이 풀이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표현되는 방식은 각기 다 제 멋대로이다. 인터넷만 봐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IT 용어는 외래어 사용이 심하고 더욱이 표준화된 용어들이 정해져 있지 않아 언론 또는 기사에서 적절히 그들이 생각하는 적당한 표현 방식으로 사용된다.
최근의 한 예를 보자. 7.7 대란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 날 악성코드에 감염된 수 많은 컴퓨터에서 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을 수행해 일부 정부 및 금융권 사이트등의 접속이 원활치 않았다. 여기서 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에 해당하는 단어가 디디오에스 (DDoS: Distributed Denial of Service)인데 이 DDoS가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지게 된 계기가 바로 7.7 대란일 것이다. 그 만큼 언론에서 DDoS 라는 단어는 7.7 대란 = DDoS 라는 인식을 주게 되었다. 이번 사건에서 기사들에 사용된 단어들은 아래와 같은 것이 있었다.
- 분산서비스거부 : DDoS - 마스터 서버 - 좀비 PC - C&C 서버 - 트래픽 분산장비 - 쓰레드
위 단어들 중 일부는 언론에서 이미 많이 사용되어 일반인들에게 익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몇몇 단어는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어르신들은 이 단어를 이해하기가 더욱 힘들다. 또한 용어도 영어 약자의 줄임말을 사용하기도 하고 한글로 표현하기도 하며 영어 약자를 한글로 풀어 쓰기도 하는 등 글쓴이의 마음대로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측면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외래어 일색인 IT 용어에 적절한 한글 용어가 있다면 글 쓰는 그 본래의 의미에 맞게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윈도우에서 사용하는 ‘즐겨찾기’, ‘바로가기’와 같은 단어들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처럼 이러한 용어들도 적절한 의미를 내포한 우리 고유의 언어인 한글로 표현되어 외래어보다는 한글이 인터넷 공간에서 친숙하게 다가오도록 할 수는 없을까? 아쉬운 것은 이 글을 쓰면서도 도대체 필자에게는 IT 외래어들을 대체할만한 한글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외래어들이 내 머릿속에 이미 떡 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한글의 잘못된 세계화
그럼에도 우리의 문자 ‘한글’이 이미 세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것도 외래어로 넘쳐나는 사이버 공간에서 말이다. 드디어 한글이 과학적으로 인정받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던가! 하지만 아쉽게도 광고성 메일에 사용되고 있다. 광고성 메일을 발송하시는 분들이 스팸 메일 차단 필터를 비켜가거나 자국의 언어를 사용해 메일을 보도록 만들고 있다. 고맙게도 이젠 외국에서도 한글을 사용하여 광고성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또한 블로그에도 영어 댓글에 이어 한글 댓글이 외국에서 스팸성으로 뿌려지고 있다. 아래 [그림]은 한 블로그에 한글 댓글이 달린 것인데 자세히 보면 한글 어순이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림] 블로그에 달린 광고성 한글 댓글
그렇다. 컴퓨터의 온라인 번역 서비스 기술을 이용해 자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자국어 제공 서비스까지 앞으로는 더욱 교묘해진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천명에게 보내 1명이라도 본다면 일단 성공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 한글에 대한 이미지가 실추되고 국가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외국 사이트에서는 한글로 된 메일이 들어오면 전부 스팸으로 분류하여 처리하기도 한다. 그만큼 한글로 된 광고성 메일이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엉뚱하게도 아름다운 우리 한글이 이런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떨떠름 하기도 하다.
IT 외래어를 한글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 부족해…
지금 필자가 써 내려가고 있는 이 원고에 사용한 단어들을 보면 여전히 외래어가 많다. 이번 글은 한글날을 되새기며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음에도 오래전부터 써온 필자의 스타일이 한번에 바뀌기는 어려운 모양인가 보다. 1446년 세종대왕은 “나랏말씀이 중국의 말과 달라, 한자와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하여 어리석은 백성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라.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읽혀 늘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함이라.”라고 하시며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훈민정음이 나온 의미와 같이 과연 사이버공간에서도 그러한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익숙하지 않은 외래어가 난무하여 그 의미를 모두가 이해할 수 없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외국에서 먼저 나온 용어인 만큼 모두 한글화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더욱 어색한 의미 전달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외래어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한글화하여 사람마다 쉽게 읽고 늘 씀에 있어 편안하고자 하는 그 의미를 거꾸로 우리 스스로가 잊고 한글로 표현하려는 노력조차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10월 9일 광화문에는 세종대왕을 기리기 위하여 동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 분의 깊은 뜻이 후세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한글날을 기념하여 아름다운 우리말 몇 개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해 보았으면 한다.
- 시나브로 :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 노고지리 : 종달새 - 높새바람 : 북동풍 - 마파람 : 남풍, 남쪽에서는 불어오는 바람 - 하늬바람 : 서풍 - 가루비 : 가루처럼 보슬보슬 내리는 비 - 실비 : 실처럼 가늘게 길게 금을 그으면서 내리는 비 - 몽구리 : 바싹 깎은 머리 - 새벽동자 : 날이 샐 무렵에 밥을 지음 - 가시버시 : 부부를 낮추는 말. - 여우별 : 궃은 날에 잠깐 나왔다가는 숨는 별 - 돋을볕 : 처음으로 솟아오르는 햇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