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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영양실조

건강생활---------/건강한100세

by 자청비 2009. 12. 1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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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적인 식단이 낳는 ‘배부른 영양실조’ 


시사저널 [1051호] 

 

 
30대 이상 직장인은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 중에서 상당량을 소주에서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보고서(제3기. 2006년 7월)에 따르면, 30대 이상 남성에게 2위의 에너지원은 소주이다. 30대 이상 여성에게는 백미에 이어 라면이 주요 에너지원으로 보고되었다. 최대 에너지원은 백미(흰 쌀밥)이다. 이 밖에 돼지고기와 삼겹살이 30대 이상 직장인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조사되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형적인 식단이 빚어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과거보다 많은 영양소를 섭취하지만 일부 영양소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형적인 식단은 한 사람이 하루에 섭취하는 3대 영양소 구성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단백질·지방·탄수화물의 구성비가 15.4 대 20.3 대 64.3으로 나타났다. 영양소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은 것은 1969년 국민영양조사가 실시된 이후 처음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영양소는 나트륨이다. 1998년 4천mg 정도이던 1일 나트륨 섭취량은 2005년 5천mg을 넘었다. 특히 30~40대 남성 직장인의 나트륨 섭취량은 6천mg으로 다른 연령대보다 많다. 권장량의 4배가 넘는 셈이다. 소금으로 계산하면 15.3g에 해당한다. 

 

기형적인 식단은 영양실조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보다 잘 먹는 시대에 영양실조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30~40대 10명 중 한 명은 영양 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 이른바 ‘배부른 영양실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이런 상태는 나이가 많을수록 늘어난다. 65세 이상 노인 중 14.7%가 영양 부족으로 나타났다. 다른 영양소에 비해 지방과 나트륨 섭취량이 유난히 많은 배경은 서양과 한국 식단이 혼합된 우리 밥상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양식 식생활이 급속히 퍼지면서 한국인의 육류 소비량은 크게 늘었다. 동시에 김치, 국, 찌개, 간장, 된장 등 전통적인 한국 식단도 고수했다. 특히 30대 이상 직장인의 지방과 나트륨 섭취량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많은 이유로는 회식 문화가 꼽힌다. 고기, 술, 찌개는 회식 자리에 늘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지방과 나트륨을 과잉 섭취할 수밖에 없다. 

 

지방·나트륨 과잉 섭취하고 칼슘·철분은 부족해

기형적인 영양 공급으로 인해 비만과 성인병이 증가한다는 경고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꼼꼼히 따져보면,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육류를 유별나게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다. 채소와 육류 섭취 비율은 8 대 2 정도이다. 외국에 비해 채소 섭취 비율이 오히려 높다. 그럼에도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소 섭취를 늘리라는 권고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려온다. 이런 권고가 나오는 배경에는 채소를 골고루 먹지 않는 ‘채소 편식’이 있다. 한국인이 섭취하는 채소의 상당 부분은 배추와 무이다. 매 끼니마다 김치를 먹는다. 그러나 무청, 콩나물, 시금치, 오이, 고추, 당근, 호박, 버섯 등 다른 채소는 1주일에 1~2회 정도 섭취한다. 과일도 자주 먹는 것 같지만, 한 달에 2~3회 섭취하는 사람이 5명 중 한 명꼴로 가장 많다.

 

김미경 국립암센터 기초과학연구부 박사는 “지방과 나트륨 이외에도 칼슘과 철분이 부족하다. 반면, 술은 과잉 공급되고 있다. 이런 영양 불균형은 30~40대를 비롯한 전 연령층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고칼로리에 영양이 불균형을 이룬 식단은 콜레스테롤, 비만, 고지혈증 등 성인병의 원인이다. 요즘에는 50대 이상은 성인병을 당연시할 정도로 만연되어 있다. 비교적 젊은 30~40대는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음식 재료를 구입할 때도 이것저것 따진다. 그럼에도 영양 불균형이 유독 30~40대에서 많은 이유는 식습관 때문이다. 영양 균형을 맞춘 식단이라도 현재의 식습관으로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에 곧잘 등장하는 ‘삼겹살에 소주’는 맛있고 배부르게도 하지만 영양 불균형을 초래한다.


김경주 대한영양사협회 회장(고려대 구로병원 영양팀장)은 “영양의 균형을 맞추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먹느냐’를 고민할 때이다. 예컨대, 같은 100cal의 밥과 칼국수라도 소화를 통해 에너지로 변화하는 과정은 다르다. 알곡 형태로 먹는 것과 가루 형태로 섭취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인은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지만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침 식사를 거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침을 거르면 오전 시간이 활기차지 않다.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아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아침을 굶은 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침을 걸렀으므로 점심과 저녁에 폭식한다. 위장 등 소화기에 부담을 준다.

 

마시거나 말아 먹지 말고 이로 씹어 먹는 식사 권장

아침을 거르지 말라는 말에 아침을 챙기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러나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시간에 제대로 차려진 밥상을 접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밥 대신 과일이나 야채를 먹는다. 빨리 먹기 위해 주스나 녹즙으로 섭취한다. 밥을 먹더라도 국이나 물에 말아 먹는다. 아침 식사는 영양분 공급뿐만 아니라 뇌를 활성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때 씹는 동작은 관자놀이를 자극해 뇌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30~40대 직장인을 포함한 일반인의 식사 습관을 지켜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음식물을 씹는 동안 또 다른 음식을 계속 입으로 가져간다. 제대로 씹지 않은 음식물은 위장으로 밀려 내려간다. 위장질환을 앓는 사람 중 상당수가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한다. 전문가들은 입 안에 있는 음식물을 30회 이상 씹은 후 목으로 넘기라고 한다. 최소 20분 이상 식사할 것을 권한다. 몇 번 씹었는지 확인하면서 식사할 수는 없지만 음식물을 꼭꼭 씹으라는 말이다. 

 

식사 시간을 오래 가지라는 말은 단순히 여유를 찾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가족이나 동료와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하는 것이 소화 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밥상머리에서는 말 한마디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식사하면 잘 체하던 사람도, 대화를 나누면서 즐겁게 식사하면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벽화 <최후의 만찬>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그림을 그리기 전 1년 동안 그는 수도원의 와인 저장고만 들락거렸다. 걸작에 맞는 최고의 와인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과학·미술·의학뿐만 아니라 요리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던 그는 식사를 단순히 먹는 일이 아니라 미술이나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의식이라고 표현했다. 이 의미는 수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통한다.

 


채소·과일만 먹고 고혈압 잡았다
영국 BBC의 ‘음식이 질환에 미치는 영향’ 실험 결과


음식은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한 실험이 최근 진행되었다. 영국 BBC는 지난 9월 5백명의 신청자 중에서 10명을 뽑아 진행한 <음식에 대한 진실(the truth about food)>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음식만으로 콜레스테롤과 고혈압 증세를 조절해서 당뇨, 심장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참가자들은 콜레스테롤과 혈압이 일반인에 비해 높았다. 이들은 동물원 우리 안에서 12일 동안 날 채소와 과일만 먹었다.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참가자들의 콜레스테롤과 고혈압이 정상 범위로 회복되었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약 23% 떨어졌고, 나트륨 농도도 현저히 감소했다. 유인원 식단을 응용한, ‘진화 식단(evo diet)’이라는 이름의 이번 실험을 주도했던 영양학자 린 가톤은 “참가자들의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을 현저하게 낮추었지만, 이 식단이 모든 사람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번 실험과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매일 5kg의 과일과 채소를 먹어야 한다. 현대인들에게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육류와 유지방을 줄이고 과일·채소·견과류 비율을 높인 식단의 효과를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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