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계급·계층 투표’ 뚜렷
ㆍ수도권 1164개 읍·면·동 ‘정치사회 지도’ 분석
ㆍ아파트 많은 동네, 투표율 높고 한나라 지지
ㆍ세입자 많은 동네, 투표율 낮고 민주당 지지
<경향신문>
내 집을 가진 사람과 아파트가 많은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높고, 그렇지 않은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낮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또 주택소유자와 아파트가 많은 동네일수록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셋방 사는 사람이 많고 아파트 비율이 낮은 동네일수록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에 투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돈 없는 서민들이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고 한나라당에 표를 준다는 일각의 통념과 달리 유권자들이 철저한 계급·계층 투표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씨는 다음주 출간할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후마니타스)에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1164개 읍·면·동별 주택 소유 실태와 투표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얻어냈다.
책에 따르면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의 투표율 상위 20% 동네에서는 집을 소유한 사람 비율이 67%, 아파트 거주자 비율이 76%인 반면 투표율 하위 20% 동네들은 집을 소유한 사람이 37%, 아파트 거주자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투표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낮은 지역에서는 당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투표율 상위 20% 지역에서 각각 한나라당 64%, 민주당·열린우리당 27%, 하위 20%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56%, 민주당·열린우리당 33%의 득표율을 보였다. 즉 집 소유,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은 동네에서 투표율이 높았고, 이 동네가 한나라당에 투표한 흐름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2004년 총선으로, 서울을 전체 수도권으로 확대해도 비슷한 흐름이 나왔다.
민주당·열린우리당은 무주택자 비율이 높은 동네에서 득표율은 높았지만, 한나라당에 비해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많이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한편 민주노동당 득표율은 주택 소유와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뚜렷한 지지 기반이 없는 것으로 해석됐다.
학력과 종교도 투표 행태와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투표율 상위 20% 동네 주민의 대졸 이상 비율은 65%, 투표율 하위 20% 동네는 43%였다. 종교 인구도 투표율 상위 20% 동네의 경우 59%였지만, 하위 20% 동네는 52%였다. 이런 투표 경향은 수도권 1164개 동네를 투표율 순서에 따라 20%씩 다섯 구간으로 나눴을 때 예외없이 단계적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통계와 역대 선거 투표 자료 등을 분석한 손씨는 “사람들이 부동산·학력 등에 따라 계층 투표를 해왔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민주당 등 야당은 한나라당을 따라갈 수 없는 뉴타운 같은 정책보다 자기 지지층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을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강남이라도 대치1동·역삼1동 ‘표심’ 극명
ㆍ집가진 사람들 ‘집값 상승’ 위해 여당에 투표
ㆍ이사 잦은 빈곤층, 야당 지지해도 선거 무관심
ㆍ한나라 ‘뉴타운 수혜’… 민주 정책방향 바꿔야
대치1동과 역삼1동. 두 동네는 이른바 ‘강남’에 속해 있다. 그러면 둘 다 부자 동네일까. 그렇지 않다. 손낙구씨가 쓴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1동은 거주자의 88%(다주택자 16% 포함)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97%가 아파트에 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강남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강남구의 역삼1동은 무주택자가 80%에 이르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6%밖에 되지 않는다. 혼자 사는 가구 비율도 대치1동은 3%이지만, 고시원과 원룸이 많은 역삼1동의 1인가구는 55%에 이른다. 두 동네는 부동산 자산 보유 측면에서 빈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셈이다.
그것이 선거정치에 갖는 의미는 분명해 보인다. 대치1동의 2004년 총선 투표율은 72%, 그 가운데 한나라당 지지가 64%였다. 반면 역삼1동에서는 유권자의 49%가 투표에 참여했고, 이 중 한나라당 지지는 41%에 불과했다. 당시 역삼1동의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은 43%로 한나라당을 앞섰고, 민주노동당 득표율도 13%에 달했다. 역삼1동만 그런 것이 아니다. 논현1동, 대치4동, 일원1동, 수서동 등이 아파트와 부동산 보유의 측면에서 본 ‘강남 속의 강북’이라 할 만하다. 투표 행태까지 역삼1동과 비슷하다. 이는 강남을 한 덩어리로 보았을 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이는 서울 전체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잠실7동 등 10개 동네를 보면 평균 84%가 집을 가진 사람이고, 아파트 거주자가 98%다. 반면 투표율이 가장 낮은 논현1동 등 10개 동네는 집을 가진 사람이 26%, 아파트 거주자가 5%에 불과하다.
1인가구와 (반)지하 거주자는 투표율 상위 10개 동네에서 각각 5%, 1%에 불과하지만, 투표율 하위 10개 동네에서는 43%, 17%로 높다. 투표율 상위 10개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는 2004년 총선에서 57%,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76%에 달했지만 투표율 하위 10개 지역은 한나라당 지지가 각각 32%, 58%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투표율 상위 10곳과 하위 10곳의 선거권자는 각각 28만명, 29만명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 투표자수는 19만명 대 13만명으로 6만명의 차이가 났다. 투표율이 낮은 동네가 높은 동네에 비해 6만표 만큼 민의가 덜 반영된 셈이다.
이러한 경향은 수도권 전체 1186개(실제 분석은 자료가 있는 1164개) 동네로 확대해도 똑같이 적용된다. 손씨는 이렇게 정리했다. “아파트가 많고 주택 소유자가 많은 부자 동네는 열심히 투표를 하고 대개 한나라당을 찍는다. 아파트가 적고, 무주택자가 많은 가난한 동네는 투표를 잘 안 하지만 하게 되면 민주당을 찍는다.”
부동산 보유 여부가 이런 투표 행태로 이어지는 데는 이사를 얼마나 자주 다니느냐가 중요 변수이다. 셋방 사는 사람들이 집 주인보다 이사를 더 자주 다닐 것임은 짐작 가능하다. 손씨가 인용한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절반 이상이, 셋방 사는 가구의 80%가 최소 5년에 한 번 씩 이사를 다닌다. 전 국민의 30%, 셋방 가구의 52%는 2년에 한 번씩 집을 옮긴다. 수도권은 더 심해서 2년이 지나면 셋방 가구의 절반을 포함해 동네 사람 3분의 1이 바뀌고, 5년이 지나면 셋방 가구의 82%를 포함해 동네 사람의 3분의 2가 바뀐다. 여기엔 뉴타운 재개발이 한몫한다. 단기간 내에 재개발로 상당수 주택이 아파트로 교체된 성동구에 지역구를 두었던 최재천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불과 4년 만에 동네가 모두 아파트로 바뀌는 바람에 선거 조직 자체가 들어갈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최 의원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2004년 성동구의 아파트 비율은 57%였지만, 그가 낙선한 2008년에는 아파트가 70%를 넘은 상태였다.
손씨는 “셋방 사는 사람들은 2년도 채 살지 못하고 떠나니까 내 동네라는 관념이 생길 수 없고, 따라서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지역에서 벌어지는 선거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하지만 아파트와 자기 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동네는 아파트 값을 올려줄 것이라고 믿는 후보를 찍기 위해 열심히 투표장에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최근 몇년간의 선거를 두고 ‘강남지역은 계급 투표(한나라당 지지)를 하는 반면, 강북지역은 계급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이미지 수준의 분석은 틀린 것이 된다. 2008년 총선 결과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의 연장이라는 측면 못지않게 서울의 동네별 인구, 주택 구성이 바뀌어버린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뉴타운 재개발의 수혜자는 한나라당이었으며, 지금 같은 수도권 재개발이 계속 추진된다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발붙이기 어렵다는 얘기가 가능하다.
▲어떻게 조사했나
2005년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부터 ‘타지주택 소유 여부’와 ‘거주 층’ 문항이 추가돼 자기 집을 전세 놓고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 통계가 잡히게 됐다. 손낙구씨는 이 자료를 행자부의 다주택 소유 자료, 선관위의 투표 자료와 대비하며 동네별 주택 소유 여부와 거처 종류를 나누고 투표율과 정당별 득표율을 견주어 비교했다.
“셋방 떠도는 이들 삶 속에 진보 해법 있다”
ㆍ‘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저자 손낙구씨
손낙구씨(47·사진)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를 구상한 것은 서민들의 실제 생활을 반영하지 못하는 진보 정치·운동의 현실과 한계 때문이었다. 손씨는 “반지하 전세·월세방을 떠돌며 사는 이들의 삶을 들여봐야 한국 사회와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진보 정치·운동의 대안과 해법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목한 게 읍·면·동 단위의 동네다. 미시 분석을 하자 통념과 다른 사실이 나왔다. 손씨는 “지금까지 서민들이 부유층 지지 정당인 한나라당을 찍으면서 계급 배반 투표를 한다는 분석과 시각이 많았는데, 주된 경향은 아니었다”면서 “부유층은 열심히 계층 투표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투표를 안 하거나 야당을 찍는 식의 투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손씨는 전국의 3573개 동네 가운데 수도권의 1164개 동네를 분석했다. 손씨는 “수도권에 셋방 사는 사람들 중 80%가 2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집주인을 포함한 수도권 주민 가운데 3분의 2가 5년에 한 번씩 이사한다”면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기에 ‘내 동네’라고 여기지 못한다.
동네정치, 지방정치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손씨는 “이 책이 정치에 국한된 책은 아니다. 어느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며 “우유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영업에 꼭 필요하겠다’면서 책이 나오면 빨리 달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1631쪽의 방대한 분량. 손씨는 “한편으로 속시원하고, 한편으로 허전하다”면서 “읍·면·동별 통계를 내느라 고생한 통계청 공무원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는 “수도권 이외 지역도 곧 분석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한국 사회를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동산 계급사회>(2008)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손씨는 노동운동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활동가다. 1999년부터 2004년 초까지 민주노총 대변인을 지냈고, 심상정 전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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