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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도 못했는데 베스트셀러,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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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0. 3. 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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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도 못했는데 베스트셀러, 누구냐 넌?"

'삼성'을 '삼성'이라 부르지 못하는…
책 제목도 저자 이름도 없는 <국민일보>의 희한한 책 소개

 

<프레시안>


<국민일보>가 5일 수수께끼 같은 책 소개 기사를 냈다. <국민일보>는 이날 15면에 "홍보도 못했는데 베스트셀러, 누구냐 넌?"이라는 기사에서 책 제목도, 저자도 없는 책 소개 기사를 냈다.

 

이 기사는 "지난 1월 29일 금요일 오후,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5주간 7만5000부나 팔렸다. 출간 이후 줄곧 인터넷 서점과 시내 대형 서점에서 종합 판매 순위 3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10만부 돌파가 멀지 않다.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판매 속도다"라는 설명으로 시작했다. 김용철 변호사가 끈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이런 언급이 전혀 없다. 단지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에 이 책도 같이 꽂아둔 사진을 내고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광고도 못하는 상황에서 출간 5주 만에 7만5000부가 팔렸을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다. 이 '이상한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는 숨은 그림찾기 식 설명을 달아둔게 전부다.

 

▲ 5일자 <국민일보> 15면 "홍보도 못했는데 베스트셀러? 누구냐. 넌" 기사에 삽입된 이미지. "이 '이상한 책'이 책꽂이에 꽂혀있다"는 설명이 달려있다. ⓒ국민일보

 

재미있는 것은 이 기사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 <삼성을 생각한다>가 각 언론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광고를 거부당하고, 각 언론 책 소개 기사에도 실리지 않았으며, 지하철 광고에서도 난항을 겪었다는 이야기라는 점. 이 책이 오프라인에서 알려지지 못하고 봉쇄된 사연을 전하면서 자신도 책 제목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국민일보>는 "출생 소식조차 전하지 못하고 묻혀버릴 뻔 했던 책을 살려낸 것은 트위터"라며 "출판계는 이 책을 '트위터 마케팅'의 첫 성공 사례로 평가한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선 여전히 존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마지막 단락에 "독자를 더 늘리려면 오프라인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 미치겠다"는 사회평론 편집자 김태균 씨의 멘트로 마무리했다.

 

 

 

 

 

<경향신문> 2월 17일 '김상봉 칼럼'에 실리지 못한 원고

 

<프레시안>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새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나면 우리는 삼성이란 재벌이 어느덧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암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삼성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코미디의 소재가 될 만한 이야기들도 꽤 많다.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은 일단 회의가 시작되면 아무리 길어져도 화장실을 가는 법이 없다 한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인데 끔찍한 일은 따로 있다. 주인이 화장실을 가지 않으니 회의에 참석한 머슴들도 화장실을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에 회의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물 비슷하게 생긴 것은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한다.

 

이 책에 엽기적인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건희는 유명 예술인들을 집에 불러 연주를 청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가 부르면 대중가수든 고전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달려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한다. 그런데 유독 나훈아 씨만은 그렇게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대중가수이니 오직 대중들 앞에서만 노래한다는 것이 이 존경스런 가수의 신념이라 한다.

 

이 재미있는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비하면 대다수 언론의 침묵은 기이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출판사에서는 몇몇 신문에 광고를 내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돈 주고 광고 내겠다는데도 선뜻 받아주는 신문사가 없어 지금까지 이 책은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종의 금지도서 아닌 금지도서가 된 셈이다.

 

70~80년대에는 금지도서가 많았다. 체제에 비판적인 책들은 어지간하면 금서로 분류되어 책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렇게 밟고 눌러도 땅거죽을 뚫고 솟아오르는 겨울 보리싹처럼 많은 금서들이 수십만 권씩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의 차이 또한 분명하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비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금서 같은 것을 지정하는 억압의 주체였다면, 지금은 삼성이 우리의 입과 귀를 막는 그런 권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말과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말기적 징후이다. 삼성이 한국 최고의 경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뇌물로 국가기구를 매수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고 나면, 이제 그 절대 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내부로는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막고 외부로는 삼성을 비판하는 개인의 입과 귀를 틀어막는 일만 남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증언하듯이 삼성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국가 기구와 주요 언론을 장악하는 과제를 완료했다. 삼성의 남은 과제는 김용철 씨처럼 어디서 출현할지 알 수 없는 비판자들이 나타나지 않게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도 삼성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유신 독재 시절처럼 모든 개개인의 말과 생각을 전면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해야 한다.

 

마치 미국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것이 금기시되듯, 한국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이 대중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삼성이 이건희의 왕국에서 그 아들 이재용의 왕국으로 순조롭게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포석인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금서 아닌 금서가 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알고 보면 삼성그룹 전체에서 이건희가 소유한 지분은 0.57퍼센트에 불과하다는데, 그는 자기 머슴들의 배설을 억압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우리 모두의 입과 귀를 가리려 한다. 그러면서 이 짝퉁 루이16세 폐하께서는 황송하옵게도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한다'는 교시까지 내리셨다 한다.

 

선거날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은 이명박 심판에 열을 올리겠지만, 그 일은 박근혜 전 대표가 누구보다 차분히 잘 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눈앞의 허상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본에 매수되지 않는 진보정당을 키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을 해체하고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한국식 자본주의를 타파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삼성제품 불매는 당연한 일이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기를 권한다.

 

/김상봉 전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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