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삽질 동화'
[작가회의 릴레이 기고]이응인(시인)
모래대왕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미디어오늘>
모래대왕이라고 있었다. 대왕은 날마다 하늘에다 대고 “내 나라를 당신에게 바칠 터이니, 뭐 돈 되는 거 있으면 알려주십시오.”라고 빌었다. 하루는 대왕이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서 맑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졸졸졸 산골 도랑을 따라 흘렀다. 여러 골에서 내린 물들이 시내를 이루어 굽이굽이 흐르다 넓고 큰 강이 되고 나중에는 바다를 향해 끝없이 흘러갔다. 꿈에서 깬 대왕은 이게 분명 하늘의 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라 흐르는 강물이라, 강물. 그때 대왕의 머릿속에 번쩍 하는 게 있었다. 온 나라의 강 가운데 가장 크고 멋진 강 네 곳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네 곳의 강을 가로막고 깊이 파내어 강에다 유람선을 띄우자. 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만들자. 주말이나 휴일이면 백성들이 유람선을 탈 수 있도록 하고, 유람선에서 내려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공원을 만들자. 백성들이 편히 쉬면서 건강도 챙기고 돈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중에 온 나라의 강을 연결하여 큰 물길을 만들면 내 주머니도 두둑해지겠지.’ (참고로 그해 모래왕국에서 공부를 마친 젊은이 열 명 가운데 일곱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였다.)
모래대왕은 우선 삽질 잘 하는 부자들에게 네 곳의 강을 막아 16개의 댐을 만드는 일을 시켰다. 이들은 삽질에 있어서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우선 강변에서 농사짓는 농사꾼들을 몰아냈다. 그들이 즐겨 먹는 수박, 참외, 오이, 딸기, 싱싱한 채소들이 이 강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강을 막기 시작하자 채소 값이 폭등했지만 부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모래대왕도.
순식간에 농민들이 쫓겨나고, 순식간에 강이 막혔다. 삽질 부자들이 두더지처럼 강바닥을 파고 들자 이내 강에서 퍼낸 모래가 산더미로 쌓이고 쌓였다. 백성들이 공사 현장을 못 보도록 사방을 가림막으로 둘러쌌지만 강바닥에다 쇠말뚝을 박는 소리는 가릴 수 없었다. 쇠말뚝을 박고는 밤낮없이 시멘트를 들이붓자 순식간에 16개의 댐이 만들어졌다. 강에서 퍼낸 모래는 강둑 여기저기에 마구 퍼다 붓기 바빴다. 정말 순식간에 나무를 베어내고 산과 들을 깎아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강가에는 휴양시설이 가득가득 들어섰다. 유람선을 타는 매표소 옆에는 모래대왕의 치적을 기념하는 탑이 우뚝하게 세워졌다. 삽질을 한 부자들은 공사를 하면서 쏟아져 들어온 돈을 보관할 곳이 없어 골치를 앓았다.
이 원대한 사업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완성되어, 드디어 완공 축하연에 모래대왕이 직접 행차를 해야 할 날이 가까웠다. 궁중에선 대신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대왕이 네 곳의 강 가운데 어디로 행차해야 하느냐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문제는 대신들의 지혜로 쉽게 풀렸다. 여덟 군데나 들어서 댐이 가장 많은 남동강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남동강에서도 여덟 군데의 댐 가운데 어디로 가는가가 또 문제였다. 이 문제를 놓고 대신들은 출신 지역별로 나뉘어 사흘이 멀다 하고 다퉜다. 다들 자기 고향에 와서 완공 축하연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이 문제도 얼마 안 가 해결되었다.
모래대왕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계시를 내려 준 하느님은 속이 영 불편했다. ‘맑은 물처럼 세상을 다스려라. 강물처럼 맑은 백성들의 마음이 흐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물이 흐르고 흘러가는 이치를 깊이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의 뜻은 이러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난 하느님은 모래대왕에게 제대로 된 물맛을 보여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느님은 모래대왕의 머리 위로 물을 내리 부었다.
그해, 우기가 되자 이름값 하느라 비가 쉼 없이 내렸다. 하루만에 무논이 찰람찰람해져 온 나라의 개구리들이 울어댔다.
“물고 막아라, 개굴!”
“논둑 터진다, 개굴!”
사흘이나 계속된 빗소리가 개구리 울음을 덮었다. 고을마다 강둑이 찰람찰람해져 백성들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붉은 황톳물이 시커먼 이무기의 모습으로 변해 강으로 강으로 내달렸다. 완공 축하연을 준비하던 댐마다 축하연이고 뭐고 댐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너도나도 막았던 수문을 열어젖혔다. 남동강의 여덟 개 댐이 일제히 물을 쏟아부으니, 물은 물이 아니고 산이 되어 밀려 내려왔다.
온 나라는 물바다가 되었다. 댐을 막았던 곳에는 둑이 터지고 석 달 열흘 동안 물이 빠지질 않았다. 농사를 망친 백성들은 먹을 게 없었고, 집은 물에 잠겨 잘 곳도 없었다. 모래대왕의 축하연은 자동으로 취소되었다. 자기 고향에 와서 완공 축하연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던 대신들은 어디다 굴을 파고 들어갔는지 도무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화가 난 백성들은 눈에 불을 켜고 모래대왕을 잡으러 다녔다. 소문에는 모래대왕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서 모래를 씹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국무총리실은 시민 사찰 기관? … '쥐코' 동영상 일파만파 (0) | 2010.06.30 |
---|---|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 (0) | 2010.06.29 |
4대강 '삽질'에 목매는 저들은… (0) | 2010.06.06 |
'삽질천국' 외치면 강도 죽고 경제도 죽는다 (0) | 2010.05.29 |
'정말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다' (0) | 2010.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