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값비싼 대가 우려…중동 최대교역 막히나
이명박 정부 지나친 대미의존이 ‘사태’ 부추겨
미국요청 수용 독자제재 나설땐 큰피해 예상
고위관리 “어떤 파장 일으킬지…잠 못잘지경”
한겨례
▶ 정부가 이란 제재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동빙고동의 주한 이란대사관 앞에서 경비를 서던 경찰들이 취재진이 이란대사관의 모습을 취재하려 하자 손으로 막아서며 제지하고 있다.
[미, 이란제재 동참 압박 파장] 정부 ‘이란제재’ 딜레마
“지금으로선 이란 제재 문제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감을 못 잡겠다. 잠을 못 잘 지경이다.”
한 경제부처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미국의 이란 제재에 따른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이미 가시화하고 있는데다, 미국 요청대로 ‘독자제재안’까지 만들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동맹에만 치중하다, 결국 가장 중시했던 ‘경제’에 큰 상처를 입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정부는 동맹과 경제를 동시에 생각하는 신중한 행보를 벌여야 하지만, 이미 천안함 사태 대응 과정 등에서 미국의 외교 지원을 크게 받은 터라, 미국의 요구를 떨쳐버리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원유 10% 수입…막히면 경제에 치명적 미국은 이란과 경제관계가 전무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전체 원유의 약 10%를 수입하고, 한해 교역규모가 100억달러에 이르는 중동지역 최대 교역상대다. 특히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유·천연가스 세계 2위 보유국인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할 경우의 파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시장연구실장은 “만약 이란산 원유 도입에 차질이 생길 만큼 상황이 악화한다면 한국 내 유가는 물론 전세계 유가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며 “현재 회복되고 있는 세계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대이란 수출 규모 자체는 전체 수출의 1%로 미미하지만, 관련된 중소기업이 2000여개나 된다는 점도 최근 가뜩이나 ‘친서민’을 강조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수출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금융 거래선이 중단되면 2~3개월을 버티기 힘들다. 이란 쪽 수주물량이 많았던 건설·플랜트·조선 분야의 피해도 계속 불어날 수 있다. 정부는 미국의 제재로 이미 막혀버린 대이란 결제 통로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에서 제3의 길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도 기다리고 있지만, 미국의 제재 취지와 실무적인 여건을 고려하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독자제재안을 만들 경우 이란이 어떤 대응을 해올지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일본은 유엔 제재에 따른 후속 조처 수준의 제재안을 발표했는데도, 이란 쪽에서 원유 공급을 끊을 수 있다는 ‘보복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강하게 하면 이란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약하게 하면 미국이 반발할 것”이라며 곤혹스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 과도한 미국 의존이 입지 좁혀 이란 제재 문제를 앞에 놓고 곤혹스러워하는 건 일본 등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 이후 줄곧 ‘미국 몰입 외교’를 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한국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각종 대형 정상외교 행사의 한국 유치, 전시작전통제권 연기, 천안함 사태 대응 과정 등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외교적 지원을 크게 받았다는 사정도 입지 약화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직 고위 관리는 이란 제재와 관련한 미국 정부의 한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두고 “미국이 드디어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미국 쪽은 앞으로도 이명박 정부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요구를 수없이 쏟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도 이런 ‘청구서’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참여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과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최근 발표한 글에서 “안보는 산소이고 경제는 피와 같다. 한반도 주변의 산소 부족은 번영의 기회를 제약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외교’의 적은 다름 아닌 동북아에서 한국 외교의 입지를 약화시킨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기조와 한-미 동맹 만능주의라는 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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