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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난다…‘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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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0. 12. 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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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때 떠난다…룰라 브라질 대통령 오늘 ‘아름다운 퇴장’


[서울신문]

 

 '민주주의의 롤모델' '엘리트를 넘어선 노동자 대통령' 남미독립의 아버지 시몬 볼리바르도, 아르헨티나 빈민의 어머니로 불렸던 '에비타' 에바 페론도 그만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진심을 보여준 정치인과, 정치인의 진심을 믿고 따른 국민. 8년간 그가 이끈 브라질에는 우파와 좌파의 경계도, 노동자와 부유층의 대립도 없었다. 모두를 위한 정치,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포부는 비웃음을 샀지만 그가 만들어낸 브라질의 오늘은 민주주의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레임덕'이라는 용어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31일(현지시간) 퇴임을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전세계의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브라질 여론조사기관 센수스가 룰라 대통령의 퇴임을 사흘 앞둔 29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 룰라 대통령의 개인 지지율은 87%를 기록했다.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83.4%로, 2003년 정부 출범 이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룰라 대통령은 국영 라디오의 주례 담화 '대통령과의 커피 한잔'의 고별방송에서 "지난 8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지해 준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밝히고 눈물을 흘렸다.

 

2003년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브라질은 300억 달러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라는 빚더미를 안고 있었다. "엘리트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선반공 출신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외침은 공허했고, 오히려 그의 노동자 성향이 브라질 사회의 대립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우세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구두닦이, 금속공장 노동자를 전전하던 강성 노동운동가의 대통령 당선은 노동자 계급이 일으킨 '깜짝 반란'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꿨다. 룰라 정부는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물류시설 확충, 에너지 개발 확대 등을 담은 경제성장촉진(PAC) 프로그램을 실시해 8년간 연평균 7.5%의 실질성장률을 기록했다. '빈곤 퇴치 프로그램'은 2900만명을 '먹을 고민'에서 구출했고, 중산층은 3000만명 이상 늘었다. 국제사회에서는 경제와 정치 모두에서 미국 중심의 구도에 맞서 '할 말은 하는' 지도자로 평가되며 G7 시대를 다자외교 시대로 바꾼 주역으로 평가된다.

 

룰라 대통령의 성공에는 '실용' '포용' '상생' '스킨십' '협상' 등 다섯 가지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그의 정책엔 좌도, 우도 없었다. '강한 추진력'을 제외한 모든 신념을, 실질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과감히 버렸다.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노동운동 현장에서 40년 가까이 대립하던 대기업과 기존 정치 세력의 힘을 적극 활용했다. 10여개의 정당을 규합해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기업인들도 적극 영입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면서 브라질 경제를 지배하는 농축산 기업들에 대해서도 지원책을 펼쳐 상생을 모색했다.

 

8년간 이어진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는 '심장에서 우러나는 정치'를 내세운 스킨십의 결과다. 8년간 670일가량을 수도가 아닌 지방에서 보내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고, 현장에서는 경호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국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노동운동가 출신 특유의 협상력이 중요한 무기로 쓰였다고 평가한다. 모든 정치 활동을 협상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정당 간 대립, 기업인과 노동자의 대립, 국제사회의 역학 구도에서 룰라는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온건하게 목소리를 내며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90%에 가까운 국민의 성원 속에 시민으로 돌아가는 룰라 대통령의 향후 행보도 관심거리다. 그는 대선 재출마(3선) 가능성에 대해 "신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선물을 주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직 복귀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로이터통신 등 일부 외신들은 그가 브라질 국내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의 요직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룰라가 일궈낸 브라질은 이제 그의 정치적 양녀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로 이어진다. 호세프 신임 대통령은 'PAC의 어머니'로 불릴 정도로 룰라 대통령의 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취임 이전이지만 그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70%에 육박하는 이유다.

 

■ 룰라 약력

▲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코주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 ▲1952년 상파울루주 산토스에서 초등학교 입학 ▲1958년 초등학교 중퇴/구두닦이 시작 ▲1960년 금속공장 취업 ▲1966년 노동조합 가입 ▲1975년 철강노조 위원장 당선 ▲1980년 노동자당 결성 ▲1986년 연방 하원의원 진출 ▲1989~1998년 세차례 대선 출마, 낙선 ▲2002년 대선 승리, 34대 대통령 취임 ▲2006년 재선 성공 ▲2009년 2016년 올림픽 유치

 

 

 

퇴임하는 '월드스타' 룰라
지지율 90% 육박..카리스마 넘치는 '서민의 벗'

퇴임후 활동도 관심..'룰라 연구소' 활동 주목

 

연합뉴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인기가 결국 하늘을 찔렀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룰라는 87%라는 놀라운 지지율을 기록하며 8년 임기를 화려하게 마쳤다.


룰라는 1945년 10월 27일 북동부 페르남부코 주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인 1952년 가족과 함께 상파울루 주 산토스 시로 이주한 뒤 거리에서 땅콩과 오렌지 등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돕는 등 힘들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룰라는 글도 간신히 깨우쳤다.

 

1956년 상파울루 시 빈민가로 이사한 뒤에도 가난의 굴레는 계속됐으며, 열한 살 소년 룰라는 땅콩팔이, 구두닦이, 세탁소 점원, 전화 교환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룰라는 열다섯 살이 된 1960년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가산업기술연수원(Senai) 선반공 자격증 과정에 들어가 3년간의 교육 과정을 마친 뒤 상파울루 시 인근 상 베르나르도 도 캄포 지역의 금속공장에 취직을 한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던 룰라는 1980년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전국적 인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브라질 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잇따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1980년 현재의 집권당인 노동자당(PT) 창당을 주도하고 전국 최다득표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데뷔한 룰라는 3번의 실패를 딛고 지난 2002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룰라의 대선 승리는 기득권층의 전유물이던 정치판을 일거에 뒤바꿔놓은 사건에 비유되면서 1880년대 노예제도 철폐와 군주제 폐지, 1930년대 국가산업화정책에 이은 '제4의 혁명'으로 일컬어진다.

 

룰라는 집권 후 '부드러운 좌파'를 표방하며 과감한 중도실용 노선으로 돌아서 국가부도 위기로 치닫던 브라질 경제를 회생시켰다. 룰라가 집권한 2003~2010년 브라질 경제는 연평균 4%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수십년간 빚더미에 짖눌려온 브라질을 채권국으로 탈바꿈시켰다. 빈곤.기아 퇴치를 내걸고 추진한 '포미 제로'(Fome Zero, 기아 제로)와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분배정책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면서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룰라는 2010년 10월 대선에서 지우마 호세프(62.여)의 승리를 이끌어내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정치실험에 성공하면서 8년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룰라가 퇴임 시점까지 높은 인기를 유지한 비결은 철저하게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친(親) 서민 행보와 강력한 카리스마, 대화를 중시하는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에 기인한다. 룰라가 노동운동 지도자와 대통령으로서 남긴 흔적은 브라질 사회에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회복된 1985년 이후의 브라질 역사를 '룰라 전'과 '룰라 후'로 나누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평가다.

 

브라질 정치권과 언론은 룰라의 퇴임이 정치적 퇴장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룰라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2014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국제기구의 수장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직 대통령 룰라의 모습은 앞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룰라 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자주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룰라는 평소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기아.빈곤 퇴치 노력을 지원하고 브라질의 성공적인 경험을 나눌 것"이라고 말해왔다. 자신이 못다 이룬 브라질 정치개혁에 대한 구상도 이 연구소에서 가다듬을 것으로 예상된다. 룰라는 지난 8월 브라질 시사 주간지 이스투에(ISTOE)와의 회견에서 "전직 대통령은 '선물로 받은 도자기'와 같다"는 말로 신중한 처신과 행보를 예고한 바 있다. 퇴임 후에도 자신에게 쏟아질 관심을 염두에 둔 말이다.

 

 

'룰라 시대' 8년 … "그것은 혁명이었다"
서민 대통령이 만든 '다른 브라질'에 세계가 주목

"박수 칠 때 떠난다"..퇴임후 행보 관심

 

연합뉴스

 

▶ 룰라 디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G20서울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11월 11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북동부 오지에서 온 이주자, 땅콩팔이.구두닦이 소년, 도시의 그늘을 전전했던 금속공장 노동자,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노동운동 지도자. 31일 퇴임하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에게 붙어 있던 수식어다. 그러나 룰라는 브라질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비중 있는 인물의 하나라는 찬사 속에 8년 임기를 마치고 있다. 퇴임을 코앞에 두고 나온 성적표는 경이롭고 화려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룰라의 개인 지지율은 87%, 룰라 정부에 대한 긍정평가는 80~83%였다. '레임덕'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지난 2003년 1월 1일 취임식에서 했던 "과거와는 다른 브라질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켜낸 룰라에게 전 국민이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룰라가 집권한 2003~2010년 사이 브라질은 말 그대로 몰라보게 달라졌고, 그것은 브라질 역사에서 하나의 '혁명'으로 받아들여졌다.

 

◇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다 = 브라질 경제는 지난 8년간 연평균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룰라 이전 정부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이다.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는 7.5~8% 성장이 기대되면서 중국이나 인도 못지않은 고성장을 구가할 것으로 보인다. 8년간 1천400만~1천5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졌고, 외환보유액은 집권 초기보다 10배 많은 3천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진 빚을 일찌감치 갚으면서 만성 채무국이었던 브라질을 채권국으로 돌려놓았다.

 

또 저소득층에 생계비를 지원하는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와 빈민들에게 식량을 무상공급하는 '포미 제로'(Fome Zero, 기아 제로),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 등 사회복지정책을 통해 2천800만명을 빈곤에서 구제했고 3천600만명을 중산층에 편입시켰다. 그 결과 중산층 비율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면서 브라질은 '중산층 국가'가 됐다.

 

지난 8년간 룰라가 이룬 성공신화의 비결은 '성장과 분배의 조화'라는 짧지만 강렬한 표현으로 요약된다. 룰라 대통령 자신도 90%에 육박하는 지지율이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킨 결과"라고 말한다. 떴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날지 못하는 닭의 날갯짓'에 비유됐던 브라질 경제에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를 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 전 국민의 지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룰라의 성공 요인으로 빈곤.기아 퇴치, 경제성장, 고용창출 등을 꼽고 있다. 룰라는 빈곤.기아 퇴치를 "노동운동가 시절부터 정치생활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 소통과 통합의 정치 = 룰라는 스스로를 '변신의 귀재'라고 말한다. 아마도 오랜 노동운동과 정치활동 과정에서 터득한 경험의 결과일 것으로 보이는 이 말은 브라질의 정치판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좌-우파의 대립보다는 양측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룰라의 변신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부터 예고됐다. 섬유업계 재벌인 조제 알렌카르를 러닝메이트로 삼는가 하면, 집권한 뒤에는 미국 보스턴 은행 출신인 엔히케 메이렐레스를 중앙은행 총재로 앉혔다. 의회 내 소수당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좌파와 중도좌파, 중도우파 10여 개 정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다. 극단적인 좌파 또는 우파 정당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정당과 정책연합 관계를 구축하면서 '소통과 통합의 정치'라는 틀을 만든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올해 주요국 정상들에 대한 평가 결과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5점)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화합의 정치는 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되면서 중도실용 노선을 낳았다. 과거 3번의 대권 도전 실패 요인이 됐던 은행 국유화, 외채 동결, 토지 개혁, 거대 언론에 대한 통제 등 급진적이고 과격한 내용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룰라의 이런 모습에 대해 좌파 진영에서는 적지않은 불만을 터뜨렸다. 룰라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한 빈농단체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이 "룰라는 분명 우리의 친구이지만 우리의 적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점진적 개혁에서 브라질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룰라의 입장은 완강했다. 룰라가 집권 8년간 고집스럽게 추구해온 이 같은 가치에 대해 지금은 진보와 보수 진영 양쪽 모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적 성과와 함께 변방에 머물던 브라질을 국제무대의 전면에 내세운 룰라의 위업에 대해 일제히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 남은 과제는 다음 정부의 몫 = 룰라 시대가 저물어가면서 브라질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룰라 정부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하고 있다. 대체적인 평가는 경제.사회 분야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보건위생 및 치안, 교육 등 민생 분야에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브라질에서는 연간 100만명의 뎅기열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교육 수준은 주요 65개국 가운데 50위권에 머물고 있다. 리우 데 자네이루를 비롯한 대도시 범죄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정치권의 부패.비리도 룰라의 성공 신화를 퇴색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집권 노동자당(PT)과 정부 인사들의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온 지난 2005년 룰라의 지지율은 30%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룰라는 지난 2006년 재선에 성공한 뒤 조세제도와 정치개혁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으나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브라질은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연방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은 중.대 선거구 제도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를 혼합하고 있다. 정당의 존립은 유효득표율 2%만 넘으면 가능하다. 정당 난립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전형적인 구조다. 이 때문에 27개에 달하는 정당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정강정책이나 이념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소속 정당을 쉽게 바꿔버리는 '철새 정치인'들이 많은가 하면, 돈을 받고 법안을 심의 통과시켜 주는 일도 잦았다.

 

브라질의 역대 대통령과 여당은 민감한 법안을 통과시킬 때는 의원들을 금품으로 매수하거나 정부나 공기업의 고위직 제공, 지역구 예산 늘려주기 등으로 거래를 해야 하는 등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룰라는 부패와 비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런 구조를 깨고 싶었던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브라질 헤알화 가치의 고평가와 이로 인한 제조업 경쟁력 약화,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복지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 등이 풀어야 할 숙제다. 룰라의 퇴임으로 이런 문제들은 이제 1월 1일 출범하는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정부의 몫으로 남겨지게 됐다.

 

◇ "박수 칠 때 떠난다" = 룰라는 지난 23일 TV와 라디오를 통한 고별 방송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시민 룰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4년 대선을 포함해 어떠한 선출직 공직에도 나설 계획이 없으며, 이제부터는 호세프의 재선을 위한 지원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헌법은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금지하고 있으나 대선을 한 차례 이상 건너뛴 뒤 출마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범국민적 지지를 받는 룰라가 2014년 대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룰라는 "신(神)은 한 사람에게 선물을 두 번 주지는 않는다"면서 또다시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오는 2014년 대선에 출마해 승리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높은 지지율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2014년에 임박해 전개될 브라질의 정치 상황이 룰라를 다시 한 번 대선 무대로 끌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지금 후임자의 성공을 기원하며 아름답게 물러나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 룰라의 뜻으로 해석된다. 룰라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서는 내년 4월 말 상파울루 시에서 문을 여는 '룰라 연구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룰라 연구소'는 룰라가 과거 노동운동가 시절 운영했던 '시민 연구소'를 확대 개편하는 것이다. 룰라의 노동운동과 집권에 큰 역할을 한 '시민 연구소'는 룰라 정부 출범으로 활동을 중단했었다. '룰라 연구소'는 중남미.아프리카 빈곤국 지원, 중남미 통합, 브라질 정치개혁 등 크게 3가지 분야에서 룰라의 퇴임 후 활동 근거지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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