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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자

세상보기---------/조리혹은부조리

by 자청비 2013. 8. 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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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자

 

<다산포럼/김 정 남 . 언론인>


“네 말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기 몫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한 섬 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자기 가솔을 굶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열 섬 지기 짓는 사람은 이웃에 배 곯는 자 있으면 거두어 먹여야 하느니라. 백 섬 지기 짓는 사람은 고을을 염려하고, 그보다 다른 또 어떤 몫이 있겠지. 우리 집은, 집이라도 그냥 집이 아니라 종가다. 장자로 내려온 핏줄만 가지고 종가라고 한다면, 그게 무에 그리 대단하겠느냐? 그 핏줄이 지닌 책임이 있는 게야. 장자란 누구냐? 아버지와 맞잡이가 되는 사람 아니냐? 아버지를 여의면 장자가 아버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장자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지. 그렇다면 그런 장자로만 이어져 내려 온 종가란 문중의 장자인 셈이다. 어른인 게지. 어른 노릇처럼 어려운 게 어디 있겠느냐? 제대로 할라치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어른 노릇이니라.”

 

다소 장황하지만, 이는 최명희(1947~1998)의 격조 높은 소설 『혼불』에서 아들 이기채를 타이르는 어머니 청암부인의 말이다. 저수지를 만들려면 그 혜택을 받을 사람들로부터 추렴해야 한다는 아들의 주장에 대해 어머니는 사람이란 각기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알아서 해야 할 나름의 몫이 따로 있는 것이라 깨우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단지 선거용…물 건너간 느낌.


작년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여야가 다투어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 경제민주화였다. 경제민주화란 말에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양했던 사람이 한때는 대선판을 주름잡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요란했던 경제민주화가 어느 틈에 시들해지더니, 이제는 경제민주화라는 말 자체가 간 곳이 없어져 버렸다.

 

대표적인 대선공약이었던 신규순환출자금지마저도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지난 7월 이른바 경제민주화 관련법안 몇 개가 입법된 것으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끝”을 선언했고 경제부총리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 요건을 완화하겠노라 공언하고 있다. 경제살리기,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이제부터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역주행이 시작되고 있는 느낌이다.

 

경제민주화는 단지 선거용이었을 뿐, 그에 대한 의지나 철학, 그리고 진정성이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99%의 분노가 범세계적으로 확산되어가는 추세에 놀라 대선공약으로 그 의제를 선점, 그것을 발판으로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데 성공한 것이 전부다.

 

경제가 민주화되려면 그와 함께 정치의 민주화, 국정운영의 민주화 등 사회 전반의 민주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한다. 투자하는 사람을 업고 다녀야 한다고 말하니까 경제부총리라는 사람이 기업인을 업어주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적자생존(받아적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만큼 권위주의 정치문화가 부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란 연목구어에 다름 아니다.

 

차별과 소외가 없는 세상…더불어 같이 살자


경제민주화란 법률 몇 개를 만드는 것으로 끝날 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경제 정의를 실천해 나가는 도정이어야 하며, 한 시대를 함께 살아나가는 정의로운 삶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요컨대 차별과 소외가 없는 대동 세상을 만들어 더불어 함께 행복하게 ‘같이 살자’는 것이다. ‘같이 살기’를 위해서는 청암부인의 말처럼 국가는 국가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각각 스스로의 역할과 규범이 있어야 한다.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금융지주회사의 회장이 받는 연봉이 30억 원(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id=20130624102909471)이라고 한다. 하루에 800만 원 가량을 받는 셈이다. 그 내역을 보면 실적과 관계없이 기준연봉을 6억 원, 연간성과급을 100%, 장기근속수당을 300%로 스스로 정했다는 것이다. 절대 액수로 보아 이런 연봉은 미국에서도 큰소리칠 수 있는 액수이며, 일본에서는 전무후무한 금액이라고 한다.

 

얼마 전 전 대법관 한 사람이 자신이 받고 있는 수당을 삭감(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0805103809070), 절반만 받고 있는 사실이 알려져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다. 월 1천만 원 수준의 수당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다고 삭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현직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기 전 17개월 동안 로펌에서 받은 돈이 16억 원이나 되었던 것에 비추어 보면, 그의 처신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 앞에서 나 배부르다고 배를 두드리는 것은 인간의 예의가 아니다. 특히 공공성을 띠고 있는 은행이나 공공기관의 경우, 고액의 연봉은 부끄러움인 줄 알아야 한다. 철밥통은 없어져야 하고, ‘신의 직장’은 세상의 직장으로 내려와야 한다.

 

지리산 남쪽 능선을 배경으로 마을 앞에 넓은 들, 그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는 금환낙지(金環落地)의 명당에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 오르고/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라는 시구를 따서 이름 지은 이 집에는 굴뚝이 없다. 굶는 집이 많았던 그때 연기라도 감추기 위해 굴뚝을 없앴다는 것이다. 대문 앞에는 뒤주를 놓아두었는데 거기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든 마음대로 열 수 있다)라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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